[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 보고서 2부 요양원 비리 ①학대와 횡령
작년 노인요양에 쓴 돈 6조7천억 지난 4년간 유죄확정 39건 보니
146억 줄줄 샜지만 실형은 3명뿐…유령직원·유령수급자 속출
건보공단이 준 6조원, 관리되지 않는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노인요양에 쓴 돈은 6조6758억원이다. 국민이 매달 내는 건강보험료의 7.38%를 떼어내고 국비 등을 보태 마련한 돈이다. 올해는 건강보험료에서 떼는 비율이 8.51%로 늘어, 건보공단 지출액은 7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돈은 전국에서 노인을 돌보는 요양기관 2만1672곳(올해 3월 기준)에 지급된다. 요양원과 방문요양센터 등 요양기관들이 돌보는 노인은 56만7365명에 이른다. 노인요양 재원의 80~85%가 이렇게 건강보험료 등에서 충당되고, 나머지는 본인부담금이다. 시설 수급자는 20%, 방문요양 수급자는 15%를 부담하는데 경제형편에 따라 감경된다. 전체로는 약 8조~9조원의 돈이 움직이는 셈인데 비리가 적지 않다. <한겨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실을 통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건보공단이 수사 의뢰하고 고발한 사건 가운데 유죄가 확정된 39건의 판결문과 약식명령 결정문을 입수했다. 분석 결과, 노인들에게 쓰여야 할 돈 145억9929만원이 엉뚱한 이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게다가 그 ‘엉뚱한 이’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확정판결을 받은 63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이는 달랑 3명(4.8%)에 그쳤다. 대부분 집행유예(34명)나 벌금형(26명) 등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요양기관들이 돈을 빼돌리는 일반적인 방법은 ‘유령 직원’ 등록이다. 경기도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법인 대표 ㄴ씨는 요양보호사·간호사의 배치와 근무시간을 허위로 신고해 14억7731만원을 빼돌렸다. ㄴ씨는 2008년 11월부터 매달 20만원을 주는 대가로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8명한테 자격증을 빌렸다. 간호사 2명으로부터도 매달 30만원을 주고 자격증을 빌렸다. 고의가 명백하고 빼돌린 액수도 적지 않지만 법원은 ㄴ씨에게 역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건보공단의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요양보호 및 의료 서비스의 질을 낮출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피해를 변제했고 요양보호 및 의료 서비스 자체는 적법하게 제공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법은 ‘유령 수급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이 외박을 나가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기관은 장기요양급여의 50%만 건보공단에 청구해야 한다. 요양원에서 실제 해당 노인을 돌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오전·오후 시간대에만 보호를 제공하는 요양기관)를 운영하는 ㄷ씨 등 3명은 2015년 8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외박하거나 병원에 입원한 수급자 12명의 장기요양급여를 그대로 신청해 162만2760원을 부당하게 타냈다. 또 자신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이 주간보호센터도 이용했다고 꾸며 361만4110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_________
요양기관 비리가 처벌받지 않는 까닭 요양기관 비리 사건 형량이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는 요양기관이 수급자를 모으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거나 수급자를 소개받고 알선료를 줄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유령 직원이나 유령 수급자를 등록해 돈을 빼돌렸을 때 처벌 규정은 없다. 영업정지 등 행정조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수사기관은 형법의 사기죄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건보공단을 속여(사기) 돈을 타냈다며 죄를 묻는 것이다.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법원의 양형기준을 보면, 사기 금액이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일 경우 권고 형량은 징역 1~4년이다. 피해금을 갚는 등 감경 사유가 있으면 징역 10개월~2년6개월로 줄어든다. 피해 금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권고 형량이 징역 3~6년인데, 감경이 적용되면 1년6개월~4년으로 줄어든다. 형량 자체가 높지 않다 보니 수억원을 빼돌려도 집행유예 정도를 선고받고 다시 ‘업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나마 수사로 이어진 경우는 다행이다. 실제 직접 요양기관에 나가 조사를 하는 건보공단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장기요양기관에서 비리가 확인되더라도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1년에 5% 안팎의 요양기관에 현지조사를 나간다. 지난해에는 전체 요양기관의 3.8%, 2017년에는 4.6%를 현지조사했다. 현지조사 규모도 작지만, 이마저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권한이 적고, 제대로 된 수사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현지조사에서 요양기관의 부당 청구 등을 주도적으로 적발해내는 이들은 지원 인력으로 투입된 건보공단 직원들이다. 관련 업무를 오래 해온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보공단 직원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직원 수, 수급자 수를 속여 건보공단에 급여를 청구했는지 살펴볼 수 있을 뿐, 횡령이나 비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회계 자료에는 손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부당 청구액이 많거나 상습적인 요양기관을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고발과 수사 의뢰를 받은 수사기관이 의지를 보이는 경우도 적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죄질이 나쁠 경우에는 몇천만원 규모의 부당 청구가 나오더라도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를 합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사기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별다른 실적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수사를 더 하면 횡령 등 더 큰 비리를 적발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요양기관의 수익이나 회계 구조가 복잡해 그렇게 수사를 진행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건보공단이 부당 청구했다고 고발한 내용 정도만 확인하고 재판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해 6조원이 훌쩍 넘는 장기요양보험금이 어디서, 얼마나 새는지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처벌망을 빠져나간 비리는 그렇게 은폐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온다. 기동민 의원은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요양기관은 최대한 지원하되 심각한 부정을 저지른 요양기관 관계자들은 퇴출해 비리가 줄어드는 건전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이주빈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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