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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2 08:00 수정 : 2019.09.02 17:22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 20년이 됐다.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왼쪽부터),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가 8월28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년을 맞아 좌담회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더나은사회] 기초생활보장법 20주년 좌담회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
“기초법, 한국 복지국가의 바탕
장기적으로 공공부조 줄이고
사회수당·사회보험 등 강화해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넓은 사각지대, 낮은 보장수준 한계
기초생활 수급 신청 쉽고 단순화시켜야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일 돼선 곤란”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시혜 아닌 권리로 제도화에 의미
의료급여 부양의무 폐지 논의 필요
위기 가구 적극적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 20년이 됐다.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왼쪽부터),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가 8월28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년을 맞아 좌담회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 사회 ‘최후의 사회안전망’이라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만들어진 지 올해 20년이 됐다. 이 법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시혜의 관점에서 이뤄지던 사회복지에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법적 권리라는 개념이 생긴데다, 시민사회 진영이 법 청원부터 제정까지 주도하는 등 기초법은 우리나라 복지 역사를 새롭게 썼다. 20년이 지난 지금, 기초법은 가난으로 고통받는 빈곤층의 든든한 안전망이 되고 있을까? 이를 돌아보기 위해 <한겨레>는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서강대 교수),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을 불러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는 데 큰 걸림돌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배병준 실장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2023년 안에 이뤄내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라고 구체적인 일정을 밝혔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 사회는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이 맡았다.

―기초법은 1999년 제정되고, 2000년 10월 시행됐다. 법 제정 20년을 맞아 기초법이 어떤 역할을 했고, 한계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제도 개선을 모색해 보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먼저 기초법 제정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나?

문진영(이하 문) 1999년 기초법 제정으로 한국 사회도 사회권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령체계를 갖췄다는 의미다. 기초법이 제정된 9월7일을 사회복지의 날이라고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 복지국가의 바탕이 되는 제도다.

배병준(이하 배) 복지를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보고 제도적으로 실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의 경우 건강보험, 국민연금,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제도에 이어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공적 부조까지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복지국가 성립의 틀이 완성됐다는 의의가 있다.

김윤영(이하 김) 생활보호법에서 기초법으로 바뀐 뒤 혜택이 많이 확대됐지만 20년에 대한 평가는 당사자들인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히 혜택이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20년 동안 빈곤정책으로 역할을 해왔지만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수준 등 한계도 명확했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 폭 너무 낮다”

―기초법 도입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진영이 법의 청원부터 제정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행정부 등의 반대도 있었다. 실제 당시 분위기가 어떠했나?

참여연대가 1994년부터 지속해서 국민기본선 운동을 벌였고, 시민사회 진영이 기초법 제정추진 연대회의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고 실업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등 기존에 있는 생활보호법이 한계를 보인 것도 기초법 도입에 크게 영향을 줬다. 기초법의 핵심은 근로능력이 있어도 가난하면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면서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도였다. 특히 경제학자들이나 경제 관료, 일부 언론에서는 이 법이 시행되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이 제도에 매달려 살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자 수가 해마다 늘어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당시의 우려는 기우였다.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왼쪽부터), 이창곤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장,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년 좌담회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렇지만 법이 만들어진 직후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담긴 선정기준 등을 놓고 여러 문제 제기가 나왔다. 빈곤사회연대 출범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2001년 12월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인 최옥란 열사(뇌병변 1급 장애인)의 글이 있다. ‘기초법 수급자가 자살하는 뉴스가 계속 나오는데, 싸우는 나를 보고 더는 죽지 말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최 열사는 생계비(당시 월 26만원이었음)가 너무 적어 월세 등을 내고 나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점과 생활을 위해 노점 일이라도 하면 수급자 탈락이 되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빈곤사회연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에 출범했다.

―법 제정 당시 취지와 목표는 창대했지만 현실에서는 간극이 컸다. 기초법의 핵심 문제는 뭐라고 보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 가구의 비율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7~8%를 넘는데, 기초생활보장 수급률은 3% 수준이다. 즉 상당수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수급자 선정 때 자식이나 부모, 부인, 남편 등의 재산이나 소득 기준을 적용하는 제도)과 재산의 소득환산제도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한다고 했으니 계획대로 하면 될 것 같다. 또 시중금리보다 가혹한 환산율을 가진 재산의 소득환산제도도 손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일선 사회복지사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줘서 (기준에 조금 어긋난다고 해도)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대통령이 공약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속했지만 여전히 진행 속도가 더디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복지정책의 기준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도 인상 폭이 너무 낮다. 가구 구성도 문제인데, 너무 전통적 모델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30살 이하는 단독 가구로 인정되지 않는다.

통장 잔고 0원…‘탈북 모자’ 사망 사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서는 일정 등 복지부가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되기 시작했다. 내년에 제2차 ‘기초생활보장 3개년 계획(2021~2023년)’을 마련하는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2023년 안에 이뤄내겠다는 것이 정부의 목표다. 다만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대거 의료급여로 들어온다면 건강보험 재정은 절약되지만, 정부 예산은 조 단위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재정 부담을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빈곤층의 상당수가 노인이고, 이들은 의료 필요도가 높다. 재정 때문에 ‘여기까지만 아파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의료급여는 그대로 둔 채 생계급여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은 대통령 공약 파기라고 본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열린 좌담회 참석자들은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는 데 큰 걸림돌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조금 더 구체적인 문제를 짚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서울 관악구 은천동 탈북 모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통장 잔고 0원, 냉장고에는 물도 없었고 월세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데도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왜 정부 복지 그물망에서 배제돼 있었던 것인가?

굉장히 가슴 아픈 사건이다. 아동수당, 주거급여 부양의무자 폐지 등 관악구 신규 복지업무가 2만건 정도 됐다고 한다. 은천동 공무원들이 도저히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위기 가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했는데 아쉬운 측면이 있다.

현장은 더 심각하다. 관악구만 하더라도 올 6월 기초생활 수급 신청 때 가족관계 해체사유서에 제3자의 서명을 받도록 했다. 빈곤층에게 가난보다 더한 굴욕을 주는 것이다. 이런 임의서류가 전국에 얼마나 되는지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기초생활 수급 신청도 훨씬 단순화해야 한다. 또 복지가 필요한 사람은 늘어나는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은 그대로인 점도 문제다.

―지난 20년 동안 고령화·저출산, 1인가구 증가, 저성장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는 점진적으로 소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산조사를 하면서 일정한 소득 이하에게만 주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행정 수요가 늘어나고, 낙인 효과로 복지국가의 중심적 제도가 돼서는 안 된다. 이 제도는 시스템 안에 들어오지 못한 난민, 무국적자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되, 응급 가구에 한시적으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 대신 빈곤층에 대해서는 사회수당이나 사회보험, 사회서비스를 강화해 최저생계 수준을 맞추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아직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좀 더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턱을 낮추고 마음 편하게 혜택을 받아야 한다. 복지가 권리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가난이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 돼서는 안 된다. 가난 때문에 죽음을 결심하는 사회는 더는 안 된다.

정리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신은재 연구원 dandy@hani.co.kr

기초생활보장제도, 세 가지 열쇳말을 꼽는다면?

좌담회에 참석한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 배병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하면 떠오르는 열쇳말 세 가지를 꼽아달라고 제안했다.

먼저 1999년 당시 시민사회 진영의 연합단체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정추진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을 맡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문진영 대표는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참여연대, 김대중’을 선택했다. 문 대표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가 터지고 생활보호제도는 더는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됐고, 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새 공공부조가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참여연대가 1994년부터 국민복지기본선 운동을 했던 것이 결국 기초법 제정 연대회의로 이어져 시민사회의 승리를 이끌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도 기초법 도입에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빈곤층과 현장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김윤영 국장은 ‘권리, 최옥란,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를 꼽았다. 김 국장은 “기초법은 권리로서, 가장 가난할 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선언에서 시작했다. 최옥란 열사는 기초법의 문제와 허구성을 여성 중증 장애인인 자신의 삶을 통해 최초로 사회 고발을 했다”며 “부양의무자 완전 폐지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처음 선언했던 권리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병준 실장은 ‘문재인, 비수급 빈곤층, 송파 세 모녀’를 선택했다. 배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부양의무자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추진하고 있는데, 기초법의 획기적인 진화”라며 “또 수급자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하는 비수급 빈곤층 해소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결심과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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