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9 22:31
수정 : 2005.01.09 22:31
무산신녀에 이어 빼놓을 수 없는 동양의 사랑의 여신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견우 직녀 신화’의 주인공 ‘직녀’다. 원래 천제(天帝: 하늘의 신)의 딸인 직녀는 용모가 아름답고 베를 잘 짰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차도 시집을 가지 않고 부모의 애를 태우다가 청년 견우와 결혼하게 됐다. 그런데 웬걸? 결혼하더니 남편에게 푹 빠져서 부모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는 것이 아닌가? 배신감을 느낀 아버지 천제는 크게 노해서 직녀의 불효를 꾸짖고는 견우와 직녀를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 살게 하고 1년에 한 번, 7월 칠석날에만 만나도록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둘 사이에는 은하수가 있었으므로 직녀는 칠석날 까치에게 부탁해 다리를 놓게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오작교다. 또 칠석날 자정 무렵에는 흔히 비가 내렸는데 이것은 견우 직녀가 이별을 슬퍼해서 흘린 눈물이라고 한다.
견우 직녀 신화는 남자가 밭을 갈고 여자가 베를 짜던 고대 농경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 신화는 별자리와도 관련이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견우성과 직녀성의 반짝이는 모습을 살펴 그해의 농사와 길쌈의 형편을 점쳤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칠석날에 여자들이 모여 길쌈을 잘 하기를 기원하는 ‘걸교’(乞巧)라고 하는 민속 행사가 전해져 내려왔다.
견우 직녀 신화는 중국의 한나라 때 좀 다르게 변형되기도 한다. 효자 동영(董永) 이야기가 그것이다. 동영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서 부잣집에서 돈을 빌리고 그 대신 종을 살기로 했다. 동영이 종살이를 하러 가는 도중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아내가 되기를 원해 둘은 부부가 됐다. 부자는 동영에게 몸값 대신 옷감 백 필을 짜 줄 것을 요구했는데 아내가 열흘 만에 그 일을 끝내 빚을 다 갚아 줬다. 그리고 아내는 자신이 천상의 직녀인데 동영의 효성에 감동해서 도와주러 온 것임을 말하고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한나라 때는 유교가 국교로 정해졌다. 유교에서는 효를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로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원래의 견우 직녀 신화에 효의 의미를 덧붙인 동영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신화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도덕성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
무산신녀와 직녀, 이들은 여신으로서 인간과의 사랑을 추구했다. 그러나 동양신화에는 이러한 사랑 이야기가 흔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하지는 않다. 아니, 많은 나라의 신화가 동양신화와 마찬가지로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는 드문 편이다. 예쁜 여신이 열렬한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담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일찍부터 문학적으로, 인간 중심적으로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쁜 여신과의 연애 이야기가 나와야 신화다운 신화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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