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대중사회와 실존에 대해 논하라 |
“아무도 남보다 위대할 것도 나을 것도 없는, 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하는 것이다.”
12일 오전 치뤄진 서강대 논술고사 문제에 제시문으로 나온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의 일부분이다. 서강대의 이번 논술 문제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에즈라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에서>, 최영미의 <지하철에서1>,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 등의 지문을 내고 ‘대중의 익명성 속에 개인의 실존이 상실되는 한국 사회의 현상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논술하라’는 문제를 제시했다.
이날 서울대와 서강대 논술고사로 주요대학의 2005학년도 정시 논술시험이 대부분 끝이 난 가운데, 올해 논술 문제들은 팍팍해진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듯 개인의 욕망이나 실존과 관련된 문제들이 출시된 경향이 많았다. 또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보다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6일 치뤄진 연세대 논술고사에는 이명한의 <백주집>,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등을 제시문으로 내고 “‘세월이 흘러감’에 대한 생각을 ‘욕망’과 연관시켜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논술하시오”란 문제가 출시됐다.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의 그림 <인간의 세 시기>도 참고자료로 함께 제시됐다. 연세대는 “고교생들이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라는 뜻에서 그림과 다양한 종류의 글을 지문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치뤄진 이화여대 논술고사에는 환상문학, 신화, 축제 등과 같은 비일상적인 의미에 대한 제시문을 내고 “현대사회 안에서 비일상성이나 비현실성이 지니는 기능을 논하라”는 문제가 출시됐다.
이밖에도 지난 10일 치뤄진 고려대 논술고사에는 장자의 <소요유> 등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와 그 관계’에 대한 제시문을 내놓고 주제에 관한 수험생의 생각을 쓰도록 했다. 같은날 한양대는 일본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욘사마 현상’에 대한 제시문을 내놓고 이 현상을 대중문화의 부정적 측면과 연관시켜 분석하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종로학원 남윤곤 평가연구실팀장은 “수험생들이 논술고사를 기피하는 경향을 반영한 듯 난이도는 대체로 평이한 수준이었다”면서도 “고전 그림, 대중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제시문으로 나온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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