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1 18:41
수정 : 2019.04.12 00:18
|
헌법재판소 제공
|
【헌법재판소, 동시선발 “합헌”, 이중지원 금지 “위헌”】
‘입도선매’식 우선선발권 제동
이중지원 ‘안전장치’는 허용
자사고 선호 경향은 지속될 듯
정부 3단계 ‘고교체제 개편’ 추진
올 자사고 재지정 평가 맞물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이끌지 관심
|
헌법재판소 제공
|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일반고가 동시에 학생을 뽑도록 한 법 조항(동시 선발)은 합헌이지만, 자사고 탈락자에게 일반고 응시 기회를 주지 않는 조항(이중지원 금지)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11일 자사고가 일반고와 함께 학생을 뽑도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0조 1항은 합헌으로 결정했다. 헌재는 “동시 선발하더라도 해당 학교의 장이 입학전형 방법을 정할 수 있으므로 자사고 교육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지장이 없다”며 “이 조항은 국가가 학교 제도를 형성할 수 있는 재량 권한의 범위 안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자사고 탈락자가 일반고에 이중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일부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으로 결정했다. 헌재는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중복 지원 금지 조항 때문에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지원할 기회가 없다”며 “이런 불이익을 주는 것이 적절한 조치인지 의문”이라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의 이러한 결정은 그동안 성적 우수 학생들을 ‘입도선매’ 식으로 선점해온 자사고의 우선선발권에 제동은 걸었지만 자사고 학생들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허용하면서 헌재가 사실상 ‘특혜’를 인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고 한 ‘불공정한 고입 전형과 고교 서열화 해소’ 정책도 발목 잡힌 셈이다. 교육 시민단체들은 이제는 정부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고교 체제 개편 정책’을 더욱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사고는 그동안 ‘학생 우선선발권’ 특혜를 누려왔다. 고등학교 입학전형은 전기(8~11월)와 후기(12월)로 나뉘는데, 과학고를 비롯해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등은 전기에, 일반고는 후기에 입시를 치러왔다. 자사고 등에 지원한 학생들은 후기 일반고에 지원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 탓에 자사고 등이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을 미리 확보함으로써 ‘고교 서열화’ 현상이 강화됐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2017년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입시 시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옮겨 일반고와 동시에 실시하도록 했다. 또 자사고 등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은 1개 학교만 지원하도록 했다.
정부 정책에 자사고와 자사고 학부모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2018년 2월 자사고 이사장 등은 개정 시행령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학교법인의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로서의 학생선발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신뢰 보호의 원칙 등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냈는데, 6월 헌재는 이중지원 금지에 대한 가처분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교육당국은 지난해 2019학년도 입시에서 자사고와 일반고가 동시에 학생 선발을 하도록 하되, 자사고 지원 학생이 일반고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이중지원은 허용했다.
이번 헌법소원심판 결정도 가처분 결정과 동일하다. 이중지원 금지 조항에 대해 헌재는 ‘자사고 지원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상 자사고가 성적 우수 학생을 선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헌재가 합헌으로 본 동시선발 규정은 자사고가 누려온 특권에 일부 제동을 거는 효과는 있다. 최근 종로학원하늘교육에서 실시한 고교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51.7%까지 치솟았던 자사고 선호는 2018년 48.4%로, 2019년 40.7%로 급락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동시선발이 자사고 선호에 일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반면 이중지원 허용은 자사고 지원 학생에게 거주지에 있는 일반고에 배정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줘 자사고 지원 학생의 부담을 덜어준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번 결정으로 고교 입시에서 자사고가 누려온 특권을 애초 기대만큼 완벽하게 거둬들이지 못하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시작된 자사고 재지정 평가와 그 결과에 더욱 눈길이 쏠리게 됐다. 정부는 “경쟁 중심의 고교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삼고 3단계에 걸쳐 ‘고교 체제 개편’을 추진해왔다. 고교 입시제도에서 자사고 등의 특권을 개선하는 것이 1단계,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자사고들의 자사고 자격을 회수하는 것이 2단계의 핵심이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입시제도 개선이 의도대로 마무리되지 못해, 2단계에 해당하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이끌 가장 효과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남았다.
기존 문제를 개선하는 1~2단계를 넘어, 고교 체제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할 3단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는 3단계 고교 체제 개편에 대해 “국가교육회의와 협의”하겠다고 밝혔고, 그 시기를 “2018년 하반기 이후”로 정한 바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고교 체제 전반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논의를 올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은정 선임연구원은 “헌재가 자사고의 학생선발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지 않은 의미가 있지만, 자사고 불합격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보호하면서 일반고 학생들을 오히려 역차별했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이날 논평을 내 “정부가 자사고 등의 존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조항(91조 3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헌법소원에 참여한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은 자사고를 후기에 그대로 둔 결정에 반발했다. 전북 자사고인 상산고를 세운 홍 이사장은 헌재 결정이 사학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이날 논평을 내 “자사고 설립 취지와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이 약화될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원형 양선아 임재우 기자
circl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