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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20 10:02 수정 : 2019.04.21 11:28

[토요판] 커버스토리
위기의 로스쿨

응시자 2배 늘었지만 합격자 그대로
작년 합격률 50% 아래로 무너져
변시낭인 속출…응시제한 탓 ‘오탈자’도

합격률 떨어지면서 로스쿨 교육 변질
판례암기 치중…“인권법 수업에 한명”
신림동 학원 인강 들으며 시험 준비
“11시까지 독서실…고시반과 똑같아”

로스쿨 쪽 “일단 올해 60%까지라도”
대한변협은 “변호사 질 떨어져” 반대
오는 26일 합격자 발표 앞두고 대치

사진은 지난 2월18일 ‘로스쿨 교육과 변호사시험 합격률 정상화를 위한 전국 로스쿨 총궐기대회’에 나선 로스쿨 학생들의 모습과 서강대 로스쿨 정문 모습.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연합뉴스

▶ 오는 26일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다. 신규 변호사 수를 1500명 이상 배출하는 것을 반대하는 변호사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되면서 올해 합격률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50%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로스쿨이 ‘변시학원’으로 변질돼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스쿨의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2013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집안 사정으로 휴학을 하면서 6년 만인 올해 2월 원광대 로스쿨을 졸업한 이경수(39)씨는 ‘대학원’에서 ‘고시학원’으로 변해가는 로스쿨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다.

“1학년 때만 해도 선배들이 소개하는 학회에 동기들 절반은 가입했다. 그때만 해도 사법시험 합격자가 줄어드는 만큼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복학해보니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학회 대부분은 이미 문을 닫았더라.”

교수들의 수업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1학년 때 대법관 출신이 가르치는 토론식 수업이 인기가 높았는데 복학을 해보니 그 과목은 폐강돼 있었다. “학생들이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인데 이 같은 판례 비판이 변호사시험에 불리하다는 평가가 많아서 수강생이 급감했다고 한다. 토론을 하면 기존 판례는 기억나지 않고 내 관점만 남아서 변호사시험의 ‘정답’을 맞힐 수 없게 되니까. 변호사시험 예상문제를 푼다거나 최신 판례를 뽑아서 요지를 쭉 읽어 내려가는 ‘수험적합형’ 과목에 수강생이 몰리고 있다.”

서울지역 법대를 나와 2017년 지방국립대 로스쿨에 입학한 ㄱ(32)씨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 때와는 다른 생활을 할 줄 알았다. 고시생은 스스로 공부해서 법률가가 되는 것이라면, 로스쿨생은 이론·실무 병행교육을 통해 법률가로 키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로스쿨 생활은 사법시험 고시반과 똑같았다. “대부분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밤 11시까지 독서실에 앉아서 최신 판례를 암기한다. 새벽까지 공부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하는 게 (변호사시험 합격하는 데) 최고다.”

‘인권변호사’ 꿈을 안고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ㄱ씨는 인권법 과목을 하나도 수강하지 못했다. 해마다 낮아지는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매 학기 상대평가로 매겨지는 학점 탓에 ‘한눈’을 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권법, 국제법 등 특성화 과목을 수강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해서 변시(변호사시험) 되겠냐’고 수군거린다. 변호사가 안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시험에 도움이 안 되는 특성화 과목을 선택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로스쿨에서 특성화, 전문화는 사라졌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주최한 로스쿨 도입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호사시험 제도의 개선방안’이 열린 지난 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 등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회원들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낮추는 방식으로 신규 변호사 수를 통제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로스쿨 10년 긍정 측면도 있지만

2009년 로스쿨이 문을 연 지 만 10년이 됐다. 사법시험을 대체한 로스쿨 제도는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을 내걸었지만,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지난해 50% 밑으로 떨어지면서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올해도 법무부가 ‘입학 정원의 75%인 1500명’이라는 예년의 합격자 기준을 유지하면, 올해 변호사시험(8회) 합격률은 40% 중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지난 1월 치러진 8회 변호사시험은 오는 26일 합격자 발표가 예정돼 있다. 합격자 수는 합격자 발표 직전에 열리는 법무부 산하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로스쿨은 2009년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자에게 전문적 법률이론 및 실무 교육을 실시”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전국 25개 대학에 도입됐다. 실제로 로스쿨 설립 뒤 다양한 전공과 경력,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 교육부 법학교육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변호사시험 합격자 가운데 비법학 전공자가 49.5%에 이른다. 2008~2017년 사법시험으로 배출된 법조인 가운데 비법학 전공자 비율이 17.8%인 것과 견줘보면, 로스쿨 출신의 전공이 훨씬 다양한 셈이다.

충남대 로스쿨 3기인 박서이 변호사는 로스쿨을 다닐 때 다양한 직역에서 일한 동기들과 공부했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변호사가 됐고, 박 변호사처럼 지역에 터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이공대 출신은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가 됐고 개인정보 관련 법에 관심이 있던 컴퓨터공학과 출신은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교원자격증이 있는 동료는 교육부에 경력 채용됐다.”

역시 지방국립대 로스쿨 3기인 ㄴ(33)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그의 입학동기는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절반이 직장을 다니다 왔는데 세무사, 치과의사, 사회복지사, 교사 등 직종이 다양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지는 추세였지만, 졸업 뒤 첫 시험에서 여전히 10명 가운데 7~8명은 합격했다. 하지만 로스쿨 출신과 사법연수원 출신이 함께 배출되면서 한해 신규 변호사가 2천명 이상씩 늘어난 탓에 변호사 초봉은 떨어졌다. 2014년 변호사 실무수습을 마치고 처음 받은 월급이 350만원 정도. 그는 “로스쿨 변호사가 나오면서 법률문서를 작성하는 ‘서면 사무장’이 없어졌다. 젊은 변호사가 늘어나 의뢰인을 직접 만나 상담하고 기록하는 게 당연해졌다”고 말했다.

변시 합격률 반토막…변시낭인 속출

하지만 상황은 한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초기 로스쿨을 둘러싼 논쟁이 너무 비싼 학비나 선발의 불공정성 문제 등에 관한 것이었다면, 최근의 문제는 로스쿨의 존재 의미 자체를 흔들고 있다. 바로 변호사시험의 합격률 하락 문제다.

제1회 변호사시험에서 87.15%였던 합격률은 지난해 제7회에서는 49.35%로 추락했다. 법무부가 합격자 수를 응시인원이 아닌 로스쿨 입학정원(25개 로스쿨, 2천명)의 75%인 1500명으로 고정해왔기 때문이다. 제1회 때 1665명이었던 응시 인원이 올해는 2배인 3330명으로 늘어났지만 합격자 수는 1451명에서 1599명(2018년)으로 비슷하다. 응시 인원이 늘어난 이유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들이 다음 시험에 응시하는 사례가 늘어난 탓이다. 이른바 ‘고시낭인’(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변시낭인’(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더해 5년 내 5회로 응시를 제한한 법호사법의 규정으로 이미 지난해 기준 441명은 변호사시험을 영원히 볼 수 없는 ‘응시금지자’(일명 ‘오탈자’)가 됐다.

변호사시험은 애초에 선발시험으로 운영될 계획이 아니었다. 법무부는 2010년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방법을 심의하면서,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명명했다. 또 로스쿨 과정을 충실히 이수해 변호사의 자질과 능력을 갖춘 졸업생의 경우 무난히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입학 정원 대비 75%인 1500명 이상으로 결정하되,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의 충분한 심의를 거쳐 전년도 합격 인원, 응시 인원 증가, 법조인 수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했다. 하지만 1500명이라는 합격자 기준은 그 뒤 바뀌지 않았다. 제1회와 제2회 변호사시험에서는 합격률이 75% 이상을 유지해 ‘자격시험’이라는 애초 취지대로 이행됐지만, 제5회부터는 합격률이 50%대로 떨어졌고 사실상 선발시험으로 변질됐다. 지난해 합격률은 49.35%를 기록해 심리적 마지노선인 50%조차 무너졌다.

위기감이 로스쿨을 휘감았다. 전국 25개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지난 2월18일 청와대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는 “지금과 같은 합격률이 지속되면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합격만을 목표로 삼는 고시학원과 다를 바 없는 교육기관으로 전락하고 과거 사법시험 제도하의 폐단을 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합격 기준을 입학 정원 대비 75% 이상이 아닌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로스쿨 출신 변호사 250명도 변호사시험을 정원제가 아닌 의사나 한의사 시험처럼 자격시험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성명에 참여한 서울대 로스쿨 4기 오현정 변호사는 “변호사시험 정원제가 유지돼 후배가 선배보다 더 가혹하게 공부하는 일이 반복되면 로스쿨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스쿨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뒤에도 상당수가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없다면 로스쿨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일각에서는 ‘로스쿨 폐지론’ ‘사시 환원론’이 거론되고 있다.

변호사시험이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으로 변질되면서 평가 내용 역시 실무 능력이나 법학 실력과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 변호사는 “실제 실무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얽히고설킨 사례를 출제한다. 수험생들은 그 채점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많은 판례를 외워야 한다. 검색만 하면 최신 판례가 쏟아지는데 그 많은 판례를 외우는 게 법률가로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할까”라고 말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인강 듣고 다시 신림동 가는 학생들

변호사시험 난도 상승과 합격률 하락은 예상치 못한 속도로 로스쿨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우선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재학생들이 로스쿨의 특성화·전문화 교과목들을 외면하고 있다. ‘수험적합성’이 수강 선택의 가장 우선 기준이 됐다. 신림동 고시학원 강의, 인터넷 강의 등 사교육이 보편화되면서 ‘로스쿨을 가장한 고시학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은 사교육 비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직장을 다니다 올해 지방대 로스쿨에 입학한 ㄷ씨는 입학 뒤 동기 대다수가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의 20대라는 데 깜짝 놀랐다. 35살 이상은 로스쿨 정원 2천명 가운데 10%도 안 된다고 했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직장을 포기하고 로스쿨을 선택하는 전문직이 줄어든데다 암기형 시험에 익숙한 20대를 뽑아 합격률을 높이려는 대학원의 전략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변호사시험에 도움이 안 된다면 (기초 법인) 형법도 안 듣는다. 그럴 시간에 혼자서 인터넷 강의 보면서 시험 준비하겠다는 거다. 교수가 설명을 하면 ‘시험에도 안 나오는데 뭔 말이 많아’ 이런 식으로 불평한다.”(ㄷ씨)

전북대 로스쿨 정영선 교수는 지난달 자신이 강의하던 국제인권법 수업이 폐강될 위기를 맞았다. 수업 첫날, 수강생 1명만 강의실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명이라도 있어 폐강은 면했지만, 교수 생활 13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로스쿨 설립 초기만 해도 학생들의 요구로 인권 과목이 더 개설되기도 했다. 사형제도, 양심적 병역거부, 간통죄 등 우리 사회 쟁점들을 논의했고 수업이 끝나고도 학생들은 뜨겁게 토론했다. 인권동아리 ‘퍼블리코’는 법률지원 등 봉사활동을 하거나 전국 국제인권모의재판대회에도 출전해 4~5년간 입상했다. 이제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러한 행사들을 다 포기했다. 전국 로스쿨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국제인권모의재판대회가 지원자가 없어서 폐지된 걸 보면 전북대 로스쿨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 교수는 말한다. “로스쿨 인권교육의 붕괴는 학생들에게 ‘조그마한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 졸업시험(로스쿨에서 시행하는 자체 졸업시험)의 탈락자만 전국에서 200명을 웃도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가 지난해부터 로스쿨별 합격률을 공개하면서, 지방대 로스쿨을 중심으로 하위권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을 아예 치르지 못하도록 졸업시험에서 탈락시키는 것이다. 로스쿨 3학년 때 변호사시험과 유사한 전국 단위의 모의시험을 3차례 치르는데, 마지막인 10월 모의고사에서 일정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졸업장을 내주지 않는다. 변호사시험 응시 인원을 인위적으로 줄여서라도 합격률을 끌어올리려는 로스쿨의 속내다. 예컨대 제주대 로스쿨의 경우 입학 정원이 40명인데 올해 12명이나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들은 6학기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마쳤는데도 ‘수료자’로 남아 변호사시험장이 아닌 신림동 고시원과 학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올해 제8회 변호사시험자 접수 인원은 3617명인데 응시 인원은 3330명에 그쳤다. 그 차이(287명)가 대부분 졸업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한 미졸업자로 추정된다는 게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의 설명이다.

“합격률 올려야” 대 “변호사 질 떨어져”

로스쿨 교수와 학생 모두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등 주류 변호사단체는 변호사 수를 계속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하는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위원 15명)에도 위원으로 참여해 의견을 낸다. 이들은 변호사가 많아지면 법조인의 질이 떨어지고, 변호사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로스쿨 도입 이후 신규 변호사 수가 2012년부터 매해 2천명 안팎으로 늘어나면서 변호사 수는 지난해 기준 2만430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2년(1만2532명)에 견줘 2배로 증가한 수준이다.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뿐 아니라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들도 견해가 비슷하다. 대한변협은 19일 성명서를 내어 “법조유사 직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년 수준 이상으로 법조인 배출 수를 증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올라가 합격 점수가 다소 낮아진다고 해도 법조인의 질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로스쿨 초기 졸업생의 변호사시험 합격 기준은 현재보다 훨씬 낮았는데도 그들은 이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 기준 점수가 720.46점인데 제7회는 그보다 22.4%나 높은 881.90점이었다. 같은 점수라도 제1회 때는 합격할 수 있었던 로스쿨 졸업생이 제7회 때는 탈락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징계 변호사가 급증하는 등의 법조인의 질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과거 사법시험에서도 합격자가 2배 이상씩 급격히 늘던 시기에 법조인의 질 저하 논란이 있었지만, 그 실체는 없었다.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적정한지, 법률시장이 위기상황인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흔히 변호사 1인당 인구수를 비교하는데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일본(3630명)보다 적은 3160명이다. 하지만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소송사건 수가 일본의 1.8배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불리 우위를 밝히기 어렵다. 또 독일(494명)이나 영국(436명), 미국(248명)에 견줘서는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크게 적다고 볼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1억달러당 변호사 수를 따져보더라도, 우리나라는 0.93명(2014년)으로 미국과 독일, 영국의 7.3명, 4.2명, 5.5명에 견줘 변호사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법조유사 직역이 없어 단순 비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무엇보다 변호사 수를 법률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을 배제한 채 공급자인 변호사의 이해에 따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준 충북대 로스쿨 교수는 “왜 국민이 낮은 수임료로 법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희생하면서 변호사의 적정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가? 변호사를 제외한 어느 직역에서도 소득보전을 이유로 신규 진입 규제책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지난 5일 로스쿨 도입 10주년 기념 심포지엄)했다. 로스쿨 연합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쪽은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에서 일단 응시자 대비 60% 이상(1998명)이라도 합격할 수 있도록 수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변호사시험을 점검한다’라는 토론회에서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왼쪽부터),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 김종철 연세대 로스쿨 교수, 박종현 국민대 교수(법학), 오현정 변호사 등이 참여해 발제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법학전문대학원교수협의회와 이재정 의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주최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법무부, 합격자 수 내년에 상향 검토 예고

법무부는 오는 26일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를 열어 제8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하는 한편 내년도 변시 합격자 결정 기준을 태스크포스팀에서 재논의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2010년 12월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가 정한 ‘입학 정원의 75%(1500명) 이상’이라는 기준을 조정해 합격자 수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오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서를 법무부와 교육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핵심 내용은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변호사업계의 반발이 심해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대한변협은 22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신규 변호사 축소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은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정부와 모든 로스쿨, 대한변협, 법조유사 직역 자격사 단체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해결해나가자”고 주장했다. 국민은 배제된 채 이해관계자들의 입장만 강력하게 충돌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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