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주제통합이 혁신이다
인천형 혁신학교 ‘행복배움학교’
5년차 선학중·인천서흥초
교과주제통합 교육으로
아이들 생각의 힘 키워줘
일년을 9주제로 나눠 융합교육
바이올린 등 1인 1악기 익혀
아이들 자존감도 쑥쑥
‘신뢰’가 학교 공동체 곳곳 스며
혁신학교는 2009년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학교의 전국적 확대를 국정과제로 제시하는 등 연구하는 교사,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 문턱을 낮춘 학교 울타리를 교육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서울, 경기에 이어 혁신학교 시리즈 세 번째 주자로 인천광역시를 찾았다.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 5년차를 맞이한 서흥초등학교와 선학중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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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아기돼지 ‘뚱이‘를 안고 있다. 아이들은 뚱이와 함께 생활하며 뚱이 그리기 대회, 시 쓰기 대회를 열고 생명존중 동아리를 만들었다. 심준희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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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이를 아시나요?
전교생이 돼지 한 마리를 키우는 학교가 있다. 이름은 ‘뚱이’. 배변 훈련이 잘되고 강아지와 비슷한 지능을 가진 베트남 미니돼지다.
시작은 지난해 6학년 1반 한 수업 시간이었다. “얘들아, 돼지 한 마리 키워볼래?”라는 심준희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아이들은 ‘뚱이 키우기’ 발표 자료를 43장 만들어 교무회의에 직접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는 한편, 다른 반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실천 목록도 적어냈다.
기자가 인천서흥초등학교를 찾았던 지난 25일에도 뚱이는 학교 복도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학부모의 반대나 다른 교사들의 저항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심 교사는 “뚱이를 단순 재미로 키운 게 아니다. 생태교육(과학), 토론·토의 활동(국어), 집 짓기(실과), 자율동아리 활동과 연계해 아이들에게 생명 존중의 의미와 책임의 중요성을 함께 가르친다”고 했다.
뚱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은 중간 놀이 시간에 함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뚱이 그리기 대회, 시 쓰기 대회 등 문예 활동으로도 연결해 200여편의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여름과 겨울, 뚱이 집을 수리하고 개조하며 왕겨와 짚의 효과에 대해서도 자연히 알게 됐다.
방학 중에 혼자 있을 뚱이를 위해 아이들은 ‘돌봄 모둠’을 만들었다. 번갈아가며 매일 먹을 것과 치울 것을 확인하고 보살폈다. 졸업을 앞둔 6학년들의 이런 활동이 5학년에게도 이어졌다. ‘뚱이 보살핌 동아리’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법,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법 등 공동체 역량을 키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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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 선학중학교 학생들이 도전 프로젝트 중 하나로 외발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 선학중은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 5년차를 맞이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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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 선학중학교 학생들이 1인 1악기 활동과 외발자전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선학중은 5년 전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되면서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다양한 교과 주제통합학습을 통해 2∼3학년에 걸쳐 바이올린과 전자키보드를 배운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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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하는 교사가 행복하다
‘뚱이’는 서흥초 혁신 교육의 일부일 뿐이다. 이 학교 교사들은 교수학습 연구 동아리를 만들어 학년별로 1년치 교과 과정을 재구성한다. 1년 학습 과정을 나눔과 배려, 평화와 화해, 공존과 연대 등 9주제로 나누어 30~50차시에 해당하는 학습 목표와 성취기준, 활동 내용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5월9일부터 6월2일까지 진행하는 3주제 ‘나눔과 배려’(48차시) 수업의 성취 기준은 공정의 의미와 중요성 알기(도덕), 협주곡의 특징 이해하기(음악), 비영리 기관 방문(진로) 등으로 꾸려져 있다. 교사들의 연구 노트에는 해당 과목·단원별 재구성 이유, 전이목표와 수행과제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2학기에 진행하는 노동인권 교육은 이 학교 교사들이 직접 만든 교재로 진행한다. 교사 연구 동아리 ‘우리는 엘세대’는 월 1회 정기적으로 만나 수업 연구안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한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 따라 직접 기업인과 노동자가 되어보고, 소매상과 도매상 역할을 맡아보는 경험을 한다. 축제 기간에 컵밥과 액세서리 등을 만들어 돈이 오가는 경험, 근로계약서를 써보고 이윤을 남기고 배분하는 법을 체득한다. 교과서 속 ‘기업’ ‘근로’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으로 연계해 쉽게 이해한다. 교실이 사회의 거울이 되어 비추어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다.
교실 문턱이 높은 일반학교와는 달리 행복배움학교인 서흥초는 모든 교사가 자신 있게 수업을 공개하고 열어둔다. 교사끼리 참관하며 수업 모델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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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 선학중학교 학생들이 1인 1악기 활동과 외발자전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선학중은 5년 전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되면서 폐교 위기를 극복하고 다양한 교과 주제통합학습을 통해 2∼3학년에 걸쳐 바이올린과 전자키보드를 배운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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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우리 동네 문제 발견하기’ 모둠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골목길에 가로등이 없어 위험한 점, 불법주차 문제 등을 찾아냈다. 이 학교는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 5년차를 맞이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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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알아가며 즐겁게 공부
서흥초는 원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고 맞벌이 가정이 많다. 때문에 교사들은 문화·예술·진로 수업에 공을 들인다. 서흥 꿈세움 마을교육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동네 어른과 아이들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만나게 할 예정이다.
이런 수업의 연장선으로 지난 25일 정명근 교사는 사회 교과와 연계한 ‘우리 동네 문제점 찾아내고 해결 방안 생각하기’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이 수업에서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골목과 불법주차 문제 등을 지적하며 직접 나가 동네를 살피기도 한다. 교과서 속 지식을 현실로 끌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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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인천서흥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우리 동네 문제 발견하기’ 모둠 수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골목길에 가로등이 없어 위험한 점, 불법주차 문제 등을 찾아냈다. 이 학교는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 5년차를 맞이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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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 위기에서 주제통합교육 강자로
선학중학교는 2015년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로 지정됐다. 올해로 5년째 혁신교육을 하고 있다. 혁신학교 지정 당시만 해도 학령인구가 줄어, 입학생이 70명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폐교 위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행복배움학교의 혁신 거점이 되면서 신입생 모집 권역을 확장했다. 지난해부터는 1지망 중학교가 되어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 웃음소리로 복도가 떠들썩하다.
이 학교 성기신 창의교육부장 교사는 “한때 폐교 위기를 맞았지만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는 생각으로 교직원 모두가 수업에 집중했다”며 “학교의 존재 이유도 수업이고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학중은 교과주제통합 체험학습 워크북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활동지 쓰기, 수행평가 영역, 평가 주제, 탐방 보고서 등을 직접 기록하게 했다. 예를 들어 통합 주제명이 ‘행복한 공동체, 성장하는 나를 위한 여행’이라면 국어, 수학, 기술·가정, 과학, 역사, 영어 등 다양한 과목에서 관련 단원을 뽑아낸다.
4인 1모둠을 구성해 국어에서는 여행 에세이 발표하기, 수학에서는 전철로 이동하는 방법과 최선의 경로 선택(경우의 수), 역사는 조선 시대와 관련된 문화유적지 탐방 보고서를 써내는 식이다. 50쪽짜리 워크북은 자료집과 활동지, 체험활동 보고서와 말하기 등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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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인천 선학중학교 학생들이 1인 1악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선학중은 2∼3학년에 걸쳐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을 배운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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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1악기로 자존감 키워줘
지난 24일 선학중 음악실을 찾았다.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바이올린으로 ‘비행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학교 아이들은 2학년부터 바이올린을 1인 1악기로 배우고, 3학년 때는 전자키보드를 배운다.
성기신 교사는 “아이 한 명이 한 개의 악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자존감과 연결돼 있다”며 “악보도 읽을 줄 모르던 학생들이 스스로 시간을 들여 연습한다. ‘한 곡 연주’를 완성해보면 그 성취감이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2학년 이초원·박창열 학생은 “내 몸과 손가락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악기의 매력에 빠졌다”며 “학교 축제 등에서 친구들과 같이 합주할 때 정말 뿌듯했다”고 전했다. 한 가지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선학중은 도전 과제 수행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외발자전거 수업도 진행한다. 마을 연계 방과 후 강사 등을 통해 진행한다. 고두한 교사는 “기본 교과목 외에도 협동이 필요한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너와 내가 같이 사는 법’을 알려준다”며 “우리 학교 교실에는 머뭇거리며 발표하는 학생이 없다. 모두가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는 ‘신뢰’가 행복배움학교 5년 동안 학교 공동체 곳곳에 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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