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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20 20:21 수정 : 2019.05.21 08:53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 별량초 김현정 교감(앞줄 오른쪽 첫번째)과 교사들이 도서실에서 수업 연구 모임인 전문적학습공동체 활동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순천/김지윤 기자

혁신학교 10년 현장을 가다 ㅣ 연구하는 교사가 혁신학교의 뿌리다

전남 ‘전문적학습공동체’ 적극 지원
교사들, 매주 둘러앉아 연구 열기
선후배 교사의 사랑방 구실도 해

혁신학교의 핵심은 ‘공부하는 교사’
지역 연계해 마을교육공동체 운영
촘촘한 교육 안전망이 작은 학교의 힘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 별량초 김현정 교감(앞줄 오른쪽 첫번째)과 교사들이 도서실에서 수업 연구 모임인 전문적학습공동체 활동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순천/김지윤 기자

<한겨레>가 혁신학교 도입 10년을 맞이해 4월부터 교육공동체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가 혁신학교 교육과정의 핵심이다.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는 데 목표가 있다.

혁신학교 시리즈 여섯 번째 주제는 ‘전문적학습공동체’(전학공)이다. 전라남도교육청은 교사들의 공부 모임인 전학공을 적극 장려하며 확산시키고 있다. 교사의 본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그에 앞서 함께 연구하고 배움을 주고받으며 전문성을 배가하는 게 목표다.

교사들은 전학공을 통해 매주 1~2회 얼굴을 맞대고 수업 방식을 고민한다. 자신의 수업을 연구·기획한 뒤 공개하며 서로의 교수법을 참고하고 또 공유한다. 전학공을 잘 운영해오고 있는 무지개학교(전남형 혁신학교) 전남 순천 별량초등학교와 전남 장흥안양중학교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 별량초 교사들이 도서실에서 전문적학습공동체 모둠별 토의를 하고 있다. 순천/김지윤 기자

“자, 지금까지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를 함께 읽어봤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을 나눠보고 연기로 표현해보고 싶은 장면을 친구들과 연습해볼까요?”

지난 16일 전남 순천 별량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 이 학교 임준영 교사가 국어 교과 독서 단원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교실에는 12명의 교사도 함께했다. 임 교사의 ‘수업 나눔 안내 자료’(이하 나눔 자료)를 받은 교사들은 세 명씩 모둠을 나눠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흔히 말하는 공개수업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모든 교사가 모든 학생을 위해 수업이라는 바다에 ‘다이빙’한 느낌이었다. 일부 학교의 공개수업이 발표할 아이들을 정해놓고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이벤트라면 별량초의 수업 나눔은 달랐다. 교사가 아이의 관점에서 듣고 기록하고 생각해본다.

임 교사의 나눔 자료에는 성취기준, 단원 개관, 수업 방향과 흐름, 학생 배치표와 활동 내용 등을 비롯해 ‘2019 별량 수업 참관록’까지 두 장에 걸쳐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6교시를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자 수업을 함께 참관한 김현정 교감부터 베테랑 교사들, 지난해 발령받은 20~30대 교사들까지 학교 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매주 목요일, 별량초의 전문적학습공동체(전학공)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 별량초 교사들이 도서실에서 전문적학습공동체 모둠별 토의를 하고 있다. 순천/김지윤 기자

■ 교사들의 수평적인 연구 공동체

6교시가 끝난 뒤 오후 3시30분부터 약 80분 동안 별량초 교사들의 학습 공동체 활동이 이어졌다. 모든 교사가 원탁에 둘러앉아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임준영 선생님의 수업 참관 뒤 느낀 점, 궁금한 점, 더 깊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볼까요? 15분 동안 모둠별로 정리해보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김현정 교감이 진행 발언을 하자 모둠별로 앉은 교사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희(가명)는 공부에 자신감이 없는 편이라 고민이다. 주변 친구들이 다그치면 영희가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민수(가명)가 간추린 줄거리를 발표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철수(가명)의 새로운 면을 봤다. 경청하며 집중하는 태도가 꽤 의젓했다.”

수업을 이끈 교사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가 아닌, ‘수업자’와 ‘참관자’ 교사 각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화였다. 별량초는 7년차 혁신학교로 6년째 전학공을 꾸려왔다. 지난해부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3시30분으로 정례화해 교장, 교감,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부한다.

문철민 교사는 “전학공은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역량을 키우는 데 필수적”이라며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더 나은 교수법을 연구하고 싶을 때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어 유익하다”고 전했다. 전학공이 학습 공동체 기능뿐 아니라 사랑방 구실도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발령받은 강유진 교사도 전학공이 있어 참 든든하다고 했다. 초임 교사로서 아이를 지도하며 당황했던 순간에 대해 선배 교사들의 조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 교사들의 수업을 보며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졌다. 전학공이 교직 생활의 첫 마음을 잡아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 별량초 교사들이 도서실에서 전문적학습공동체 모둠별 토의를 하고 있다. 순천/김지윤 기자

■ 교육공동체 성장을 위한 밑거름

전학공의 개념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개인주의, 과중한 업무 등으로 고립되는 교사 문화와 장학·연수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관계 맺으며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문제를 파악한 뒤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실천 공동체를 뜻한다. 초·중·고 교원으로 구성된 학교 안 전학공과 유·초·중·고 교원 및 교육전문직원, 교육행정직원으로 이뤄진 학교 밖 전학공이 있다.

전라남도교육청은 특히 다른 시·도교육청보다 전학공 운영을 더욱 적극 지원한다. 전학공이 전남 혁신교육의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도록 ‘서포터’를 자처하고 나섰다. ‘교사 동료성’을 바탕으로 교원들의 수업 혁신 실천 의지를 장려하기 위해 올해 1822개의 전학공을 선정해 23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도교육청 차원에서 팔을 걷어붙이니 이번 전학공 지원사업 공모에 도내 학교 700여곳에서 교원 1만2000여명이 참여했다. 2018년 기준 전남 전체 교원이 1만5399명인 점을 고려하면 교사 10명 중 7명 이상이 전학공에서 활동한다. 활동 내용으로 나눠보면 △수업나눔 427팀(4250명) △수업탐구 164팀(2073명) △교과연구회 73팀(4774명) 등이다.

별량초 혁신부장인 윤자옥 교사는 “교원들이 자발성, 동료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통·협력하는 게 전학공”이라며 “이런 활동들이 교육공동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남 장흥안양중학교의 수업협의회 및 전문적학습공동체 활동 모습. 김연욱 교사 제공

■ 작은 학교의 큰 교육생태계

전교 3학급, 학생 28명. 전남 장흥안양중학교는 안양면에 있는 작은 학교다. 학생 수 감소로 한때 학교 통폐합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데 장흥안양중은 작은 학교를 장점으로 만들었다. 작은 학교 속 큰 배움 만들기에 전 교직원이 힘을 모으면서 아이들의 학력뿐 아니라 자존감, 정서 관리, 소통 역량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2014년 무지개학교로 지정된 뒤 꾸준히 전학공을 운영해오고 있다. 매주 화요일을 ‘전학공의 날’로 지정해 모든 교사들이 둘러앉아 교육과정을 논의하고 수업을 디자인한다.

장흥안양중의 전학공은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빛을 발한다. 매년 2월 새 학기 준비 기간에도 교사들의 학습 공동체는 이어진다. 최근에는 학교 특색사업과 연결해 ‘공간혁신 융합수업을 통한 민주시민성 교육과 미래 핵심역량’을 주제로 ‘상상궤도’라 이름 붙인 전학공을 만들었다.

특히 장흥안양중은 지역 시민단체를 비롯해 마을교육공동체, 공동육아 경험이 있는 지역문화 등 건강한 교육생태계 속에서 혁신학교의 뿌리를 튼튼히 해왔다. 이 학교에서 연구 업무를 맡고 있는 김연욱 교사는 “학교, 교육지원청, 교육희망연대, 전교조, 장흥지역 시민단체, 장흥마을교육공동체, 지역혁신학교 학부모 모임 등 장흥을 둘러싼 교육생태계가 전학공의 큰 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군청을 비롯해 지역 농민회와 학부모 모임, 전교조가 손을 잡고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에 연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역사회가 아이들을 ‘함께 책임진다’는 공동체적 교육 문화가 조성돼 있다는 이야기다. 전학공이 교육운동 차원을 넘어 민주적인 학교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순천/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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