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10년치 종합감사 결과로 본 사립대 천태만상
박찬대 더민주 의원실·대학교육연구소 자료로
2008~2017 사립대 종합감사 결과 모아보니
등록금으로 마련된 교비를 ‘쌈짓돈’ 쓰는 행태
설립자 ‘전횡’, 사립유치원과 다를 바 없어
“일부 부실 대학’ 아닌 사립대 구조의 문제
지난해 공개된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은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라”는 요구에 불을 질렀다. 아이들의 교육에 써야할 돈으로 원장의 명품 핸드백을 사는 등 교비를 ‘쌈짓돈’처럼 써온 사립유치원들의 행태에 전국적인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사립유치원들은 “일부의 문제”라고 주장했지만,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과연 대학은 다른가? 이른바 ‘사학 비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사립대들은 “일부의 문제”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려 들고, 실제로 “군소 규모 대학의 일탈”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최근 고려대에 대한 교육부의 회계감사 결과는 ‘사학 비리’가 결코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지역에 있는 작은 규모의 대학이든 서울에 있는 ‘명문’ 대학이든, ‘공공성’에 대한 안팎의 통제가 없으면 썩어버리는 ‘사립’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최근 대학교육연구소(소장 박거용)와 함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2014~2017년 교육부의 사립대 종합감사 결과 등을 포함, 2008~2017년 사립대 종합감사 결과를 두루 살펴봤다. 종합감사 결과를 뜯어보면 사립대들이 지적받는 행태들은 대체로 엇비슷한데, 이것은 ‘사학 비리’가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2008~2017년 종합감사를 받은 51개 사립대의 분야별 지적사항을 보면, 예산·회계(284건) 분야가 가장 많았고 입시·학사(277건), 법인(226건), 인사(213건) 분야가 뒤를 이었다. ‘단골’ 지적 사항은 학생 등록금으로 조성된 교비를 학교법인이 ‘쌈짓돈’처럼 가져다 쓰는 행태다. 주된 분야인 예산·회계 뿐 아니라 입시·학사, 법인 운영 등의 분야에서도 폭넓게 발견된다. 이는 사립유치원과 다르지 않은 행태로, 공공기관인 대학을 사적으로 사용해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는 환경에서 비롯한다. 지난해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졌을 때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도 바로 ‘깜깜이 회계’였다. 원장이 명품백이나 성인용품을 사는 데에, 또는 노래방·유흥업소에서 유치원 교비를 써온 행태가 사립유치원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불을 질렀다.(관련기사 바로 가기)
사립대 설립자·이사장 친인척 ‘전횡’이 핵심… 내부 견제 없어 ② 이사장과 친인척이 좌우하는 사립대 친인척이 근무하는 학교법인 비율 64.9%
‘3대 세습’ 넘어 4대까지 대학·법인 사유화
총장 선출부터 회계·인사 등 전방위 장악
견제 위한 ‘개방이사’마저도 이해관계자 교육부는 2013년 건국대와 건국대 법인을 대상으로 회계감사를 실시했는데, 설립자의 큰며느리로서 이사장직을 맡고 있던 김아무개씨가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인 고급 아파트에 법인 자금 5억7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그곳에서 5년 동안 살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내지 않은 임대료가 6억3900만원에 달했다. 법인 자금 3억원을 용도조차 알 수 없는 곳에 쓰거나 1억원이 넘는 개인 여행 비용을 출장비로 처리한 일 등도 적발됐다. 검찰에 고발된 김 이사장은 201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를 확정받아 이사장직을 잃게 됐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그런데 그의 뒤를 이어 이사장직에 오른 사람은 다름아닌 맏딸 유아무개씨였다. 이른바 ‘3대 세습’이 이뤄진 것이다.
*정책보고서 ‘사립대학 개혁방안-부정비리 근절 방안을 중심으로’(박거용)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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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올해 하반기 ‘사학 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지난달 세종대에 대한 종합감사에 착수했다. 세종대 종합감사가 ‘사학 혁신’의 가늠자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세종대 정문 앞에서 “엄정한 종합감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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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전횡 막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최대 관건
업무추진비 공개 등 다른 법률 개정도 수단
‘사학 혁신’ 천명한 정부, 제대로 실행력 보일까 국립대인 부산대학교 누리집에 가보면, 매월 총장이 업무추진비를 언제 어떻게 썼는지 누구나 찾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뒀다. 지난 4월에는 750만원 정도를 썼는데, 항목별로는 ‘대학 현안 논의를 위한 주요 보직자 간담회’에서 48만원을 쓴 것이 가장 큰 지출이었다. 그러나 똑같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 상의 ‘공공기관’이지만, 사립대는 교육부 감사에서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집행을 자주 지적당하면서도 이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원문공개 대상기관’에 사립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렇다고 정작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 제대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대학교육연구소는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 50곳에 일반기업에 사외이사로 근무하고 있는 교수 관련 정보를 공개해달라 청구했지만, 이를 정상적으로 공개한 대학은 13개(26%)에 불과(관련기사 바로가기)했다. 지난해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에 분노한 여론은 사립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학부모 부담금을 유용하지 못하게 막고 회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치원 3법’ 시행과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 적용 등이 그 핵심이었다. 교육계에서는 사립대 문제 역시 사립유치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개별 대학의 부정·비리 실태에 분노와 실망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법과 제도의 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의 위력은 크고 지속적이다. 예컨대 ‘사립대 총장의 업무추진비 공개’는 상대적으로 ‘작은’ 조처 같지만, 법인 자금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설립자(이사장)이 친인척을 동원해 법인과 대학을 좌우하는 ‘전횡’을 막는 조처다. ‘사립학교법’ 개정이 그 중심에 있다. 부정·비리가 적발된 대다수 대학은 학교법인 이사회가 친인척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이사회 구성에서 각 이사 상호 간에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4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안된다”(제21조 ‘임원선임의 제한’)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5분의 1’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학교법인 이사의 친인척이 총장을 맡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비속과 그 배우자는 총장을 맡을 수 없다”(제54조 ‘임명의 제한’)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청의 승인”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이 있다. 때문에 이 단서조항을 없애고, ‘이사장’뿐 아니라 모든 ‘이사’의 친인척이 총장에 임명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밖에도 ‘임원취임승인취소’ 처분을 받은 인사의 복귀 가능 시기를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다거나, 이사회뿐 아니라 대학 구성원이 총장 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거나 하는 등의 조처들이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가능하다. 다만 과거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정쟁이 워낙 심했던 탓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국회의 사립학교법 개정을 기다리지 않고도 교육 당국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조처들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사립유치원 문제에 대해서도, ‘유치원 3법’이 국회 통과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개정해, 사립유치원들로 하여금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을 쓰도록 한 바 있다. 예컨대 ‘업무추진비 공개’의 경우,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손보면 국립대 총장처럼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도록 할 수 있다. 사립대뿐 아니라 학교법인까지 정보공개 대상 기관으로 지정하면, 학교법인 이사장도 업무추진비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이사장 친인척이나 이해관계에 놓인 자들이 개방이사가 되지 않도록 개방이사의 자격요건을 높이기 위해선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상법’은 회사 임원이나 최대주주, 관계회사 등의 이해관계인을 개방이사로 선임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학교법인 이사회 회의록 공개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5년으로 연장한다거나, 회의록을 막무가내로 ‘비공개’ 처분하는 일을 막기 위해 비공개 사유와 기간을 명시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도,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다. 다른 법률들을 손볼 수도 있다. ‘고등교육법’을 고치면, 대다수 학교에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학평의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만들 수 있다. 교육부의 감사규정을 손보면, 대학구성원 일정 비율 이상이 청구할 때엔 교육부가 해당 대학을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실시하도록 할 수 있다. 학교법인이 내부고발에 나선 교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선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을 거부하는 학교법인에게 이행명령과 이행강제금 등을 부과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공직자윤리법’을 손보면, 사립대학 총장 및 학교법인 임원으로 하여금 재산을 공개하도록 할 수 있다. 그동안 사립대학의 부정·비리를 막기 위한 수많은 대안이 논의되어 왔고, 그 가운데 많은 대안들이 교육계의 검증도 거쳐왔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주해 받은 ‘사립대학 개혁방안’ 정책연구보고서에도 이런 대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은 많다. 대학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높여서 근본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짚었다. 문제는 ‘사학 혁신’ 과제에서 현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실행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뒤 교육 분야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만 지난해 이른바 ‘사립유치원 사태’를 겪으며, ‘공공성 강화’라는 확고한 방향을 세우고 이에 어긋나는 사립유치원들의 집단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한 것 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립유치원들의 부정·비리에 대한 전국적인 분노와 공감은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확고하게 뒷받침했다. 그 중심에 있던 유은혜 부총리가 “올해 하반기에 ‘사학 혁신’을 본격 추진한다”고 천명했다. 교육부 ‘사학혁신추진단’은 그동안 활동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삼아 조만간 교육부에 권고안을 낸다. 교육부는 6월 중으로 비리사학 근절과 사학 혁신 내용의 제도개선 및 법령 개정 과제들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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