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2 20:17
수정 : 2019.10.09 13:39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요즘 초등 진로교육에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쌤, 그 직업은 인공지능시대에 없어지지 않나요?”
질문에는 두 유형이 있다. 호기심에서 물어보는 것과 나와 관련 있기에 물어보는 것이다. 위 질문을 하는 아이는 후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라는 염려의 질문이다. 그 직업은 없어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확답을 듣거나, 없어질 것이니 다른 걸 생각해보라는 답을 듣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명확한 답을 못 해준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공부 열심히 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는 지금, 교사로서 고민이 뒤따른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 20년 뒤, 우리 아이들에게 쓸모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염려다. 하지만 한 가지 묘안이 있다면 ‘자존감’이다. 어떤 직업이 새로 생겨나고 사라질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자존감을 지켜나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아이들은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자존감에 몰두한다. 준비한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는 순간을 만나도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서 있는 자존감을 쥐여주고 싶다.
문제는 자존감의 속성이다. 자존감은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존감은 의미를 쫓는다. 남들이 보기에 비천해 보이는 일을 하더라도 자존감 있는 이들은 ‘의미’를 발견한다. 그런데 앞으로 수도 없이 사라지는 직업들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그간 가졌던 의미에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의미를 갖고 꿈꿔온 일들이 아무런 감정 없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오히려 더욱 효과적으로 일 처리를 해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실감을 맛본다. 또한 의미마저도 허무하다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아무 의미 없어 보임에도 그저 ‘나’이기 때문에 존재감을 느끼는 초강력 울트라 슈퍼에고가 필요한 시대가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그런 자존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그들이 마주할 자존감 상실 쓰나미에 대처할 방안이 없다.
마음이 무겁고 조급해진다. 지금껏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자존감을 안겨주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존감은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맛보지 못한 상처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모든 직업군 속에서 나의 존재는 인공지능보다 못하다는 인간의 깊은 무의식 상처를 피할 수 없다.
그 상황을 예견한 듯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이렇게 표현한다.
“와 철수 좀 봐. 완전 핵개쩌는 존재감. 부럽다.”
공부만 하면 된다는 구석기시대 유물을 버리자. 그것으론 새로운 자존감을 만들 수 없다. 공부도 인공지능이 이미 훨씬 앞선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어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직 단 하나밖에 찾지 못했다.
“무조건 널 사랑한다. 이것이 지금 네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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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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