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30 05:00
수정 : 2019.10.09 13:35
【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학교에서 온종일 엎드려 자는 걸로 유명한 아이가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과목 시간에만 선별적으로 자거나 양심상 한두시간은 깨어 있기 마련인데, 이 친구는 등교해서부터 하교할 때까지 아예 귀마개를 하고 곤히 푹 잤다. 그렇다고 소위 ‘노는 아이’도 아니었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보다 못한 담임 선생님이 상담을 의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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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자거나 “하고 싶은 게 없고 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꿈꾸기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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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한 얼굴로 상담실에 온 18살 성민이(가명)에게 많이 피곤하냐고 운을 뗐다. 성민이는 수업이 자신한테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낮에 이렇게 자두면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안 피곤하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로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성민이 부모님이 몹시 당황해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대학에 가서 전공하고 싶은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부터 11년간 부모님 뜻에 맞춰 공부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졸업 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돈을 벌면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지금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돈을 벌어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거라고 했다. 입시 공부에만 치중하는 학교에서 아이는 별로 할 게 없어 보였다.
성민이뿐만 아니라 진로 상담을 하러 와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돈 많이 벌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에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아이들이 너무 현실적이다 싶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학령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많은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경험이 별로 없다. 그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쳇바퀴같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사실 성민이가 좋아하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록 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은 “돈을 못 번다,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찬성하지 않았다. 아이 자신도 우길 자신이 없어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어쩌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없고 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꿈꾸기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민이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아직 찾지 못했으나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길을 찾는 중이었다. 혹자는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기 싫은 일도 견디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해야 하는 일부터 하며 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은 한번도 못 해보고 세상을 떠났다는 ‘웃픈’(웃기면서 슬프다는 뜻의 신조어) 이야기도 있다.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인생의 강조점이 달라진다. 그것은 선택이다. 그저 우리 아이들의 삶이 웃픈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선택을 응원해본다.
*글에서 소개한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하여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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