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1 21:05
수정 : 2019.08.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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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인천 선인고 2학년 학생들이 고교학점제 실시로 `영상 제작의 이해' 수업을 선택해 수업 중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나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는 제도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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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영상제작·생명과학·베트남어…
학생들, 적성·흥미 따라 과목 선택
“국영수 넘어 다양한 수업 흥미진진”
“적성 재발견…진로 설계에도 도움”
생명과학실험 등 교사 확보 어렵자
인근 인화여고와 공동수업 개설도
교장 “과목선택 과정 통해 역량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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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인천 선인고 2학년 학생들이 고교학점제 실시로 `영상 제작의 이해' 수업을 선택해 수업 중 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나 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는 제도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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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보면서 막 뛰어오는 걸 한 컷 찍을 거야!”(감독)
“응. 은성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거지? 뛰면서 시계 잠깐 보면 되고?”(배우)
“자자, 리허설 시작합니다~ 음향 준비하고~”(조연출)
지난 20일 오후 2시30분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선인고등학교 정원 한편, 남학생 6명이 카메라를 놓고 영상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선인고의 2학년인 이들은 ‘선택 과목’ 중에서 ‘영상 제작의 이해’를 골랐다. 촬영감독을 맡은 정채민 학생은 “수업 듣기 전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아 유튜브로 촬영법을 찾아봤다”며 “실제 해보니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조별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연기를 하거나 영상을 찍어 편집도 한다. 유튜브 등에 익숙한 영상 세대인 학생들은 진지하게 수업을 즐기고 있었다.
같은 시간 학교 4층 넓은 무대가 있는 강당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극의 이해’ 수업이 한창이다. 1학년 학생들은 예술 분야(음악/미술/연극/디자인 일반)에서 한 과목을 선택해 한 주당 2시간씩(2단위)을 들어야 한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예술 교과를 필수 이수단위(총 10단위)만큼 들어야 하는데, 대부분 학교에서 음악과 미술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이 학교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음악, 미술 외에도 연극과 디자인 같은 과목을 개설하게 됐는데 인기 만점이다. 사회탐구나 과학탐구, 진로 교과도 다채롭다. 사회탐구 영역에서는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윤리와 사상, 정치와 법, 경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과학탐구 영역에서도 지구과학Ⅰ, 화학Ⅰ 외에도 융합과학, 과학사, 정보과학, 생태와 환경 등이 있다. 제2외국어도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한문 등으로 다양하다. 김지연 선인고 부장 교사는 “사실상 문이과 구분이 존재했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계열별로 학교가 정해준 과목을 들었다”며 “올해 선택형 수능으로 바뀌고 학점제를 준비하면서 1~3학년 전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은 총 77개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선인고처럼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면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권이 강화된다. 처음엔 한 학교 안에서 더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고, 나아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 학교나 마을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고교학점제는 적성이 서로 다른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과목 선택권을 주고, 학생이 진로 설계를 스스로 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덕범 선인고 교장은 “지금의 10대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10년 후인 2030년을 생각하면, 국영수 위주 수업만으로 미래 역량을 키울 수 없다”며 “학생들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평생학습 역량을 학교에서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기의 흥미, 적성, 진로를 고려해 선택해보고 개척해보는 그 과정 자체로 역량이 키워진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난 선인고 학생 대부분도 고교학점제에 대해 ‘선택할 수 있다’는 면에 만족했고,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영어 선생님이 꿈이라는 박경원 학생은 “연기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연극 수업이 있어 선택할 수 있었다”며 “선생님이 된다면 ‘영어 연극’ 쪽으로 이 경험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컴퓨터그래픽 분야에 관심 많다는 박채이군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직접 고를 수 있어 좋았다”며 “과학 중점 수업들을 통해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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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선인고 강당에서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이 ‘연극의 이해’ 수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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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교과목을 개설하려면 다양한 교사의 확보가 관건이다. 만약 학교 내에서 적당한 교사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선인고는 이웃 학교인 인화여고와 ‘공동 교육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거나 외부 강사를 초빙한다. 이날 오후 5시께 남자 고등학교인 선인고에 여고생들이 모여들었다. 생명과학실험실 1층을 가보니 ‘생명과학실험’을 선택한 인화여고 학생 4명이 선인고 학생 10여명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하윤서 인화여고 학생은 “의료 분야로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데, 인화여고에는 실험 수업이 없어 공동교육과정을 선택했다”며 “실험을 좋아하는데 세분화된 과목으로 나뉘어 있어서 좋고 입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이웃 학교인 인화여고와 함께 ‘생명과학실험’ 외에도 ‘상업경제’ ‘논리학’ ‘창업 일반’ ‘생활과 헌법’ 등 총 30여개의 공동교육 과정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강사는 선인고 소속 교사 외에도 인근 초중고 교사들로 구성됐다. 김효수 교육부 고교학사제도혁신팀 연구사는 “전국 2350개 고교 가운데 선인고와 같은 연구 선도학교가 354개에 이른다”며 “연구학교에서의 다양한 시도들을 기반으로 2025년에 일반고까지 고교학점제를 전면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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