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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6 19:57 수정 : 2019.08.26 20:00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중고생 43% 스트레스에 시달려
학업이 주원인…주말에도 학원
자해 또는 자살 등 극단 생각도
도움·심리상담 받는 학생 적어

대치동 학원가에 상담센터 추진
뜻밖의 암초 부딪쳐 무산 위기

서울 강남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8월10일 오후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대치동 학원 거리에서 학생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는 과거에는 ‘8학군’이라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지역이었고, 현재는 ‘교육 특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강남 개발과 함께 주요 고등학교들이 강북에서 이전해 왔고, 학원들도 가세하면서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집값도 덩달아 올랐다. 강남·서초 교육지원청의 통계를 보면, 강남구에 약 2천개의 입시와 관련된 학원·교습소가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절반이 훨씬 넘는 1300여개가 대치동에 포진해 있다. ‘사교육 1번지’라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명 학원들이 빼곡한 은마아파트 앞 도곡로는 도로명보다는 ‘학원 거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도로변 상가건물은 학원들이 꽉 들어차 있어 ‘학원건물’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좋은 대학 가려면 먼저 대치동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여러 사회·경제적 여건들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였을 터이다. 그 속에는 학생들의 눈물과 고통이 숨어 있다.

■ 과도한 사교육에 고통 커져

강남구보건소가 지난 5~7월 관내 중 2·3학년과 고 2학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남구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결과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고생 중 43.1%가 스트레스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항상 느낀다’ 또는 ‘느낀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여학생(51.0%)이 남학생(35.4%)보다 훨씬 높았고, 고교생(46.0%)이 중학생(39.5%)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교육부·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비교해볼 때, 서울시 전체 중고생의 스트레스 인지율 40.4%보다 강남구에서 약간 더 높은 수치다.

학생들의 스트레스 원인은 주로 학업 때문이었다. 스트레스 원인 중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9%로 절반이 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61.6%)이 중학생(55.0%)보다 높았고, 여학생(60.5%)이 남학생(56.9%)보다 높았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학생 가운데서는 남학생(71.4%)이 여학생(68.7%)보다 조금 높게 나왔다.

지난 1년간 사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93.7%로 통계청의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와 비교해볼 때, 전국(72.8%), 서울시(79.9%)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중 97%가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85%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한 주일 동안 학원에 가는 시간은 19.5시간으로, 주중 12.9시간, 주말 6.6시간에 이르렀다.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인 2017년 서울시 중고생의 사교육 참여 시간 7.7시간의 2.5배에 해당한다. 공부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도 주말조차 쉬지 못하는 학생들이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이 17.1%에 이르렀다. 고등학생(19.2%)이 중학생(14.5%)보다 우울감 경험 비율이 더 높았고, 성별로는 여학생(20.5%)이 남학생(13.8%)보다 높았다. 성별과 학년을 모두 고려하면, 여고생이 가장 우울감을 높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4명 중 1명꼴인 24.1%가 최근 1년간 2주 내내 슬픔·절망감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 스트레스·우울감에 극단행동 벌여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극단적인 행동을 불러온다. 죽고자 하는 의도 없이 고의로 자신의 신체에 자해를 하는 학생이 4.7%로 나타났다. 여학생이 5.1%로 남학생(4.3%)보다 약간 높았고, 중학생의 비율은 5.6%(남 5.4%, 여 5.8%)로, 고등학생(3.9%)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청소년들의 자해에 대한 실태조사는 많지 않은데, 한 연구에서는 중고생의 경우 22.8%, 여중생의 경우 20%가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처음 자해를 한 나이는 14살(25.4%), 13살(22.4%) 순으로 나타나, 자해 행동이 보통 14~15살에 처음 발생한다는 국외 연구 결과와 유사했다. 자해를 시도한 학생 중 자해 행동과 관련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담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학생의 비율도 8.7%에 달했다. 여학생은 10.1%, 남학생은 7.3%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학생의 비율도 2.5%,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학생은 1.1%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학업 및 진로 문제가 40.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다음으로 가족 갈등(24.7%), 친구 및 대인관계 문제(18.7%) 등의 순이었다.

심리상담을 원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평소 정신건강 문제로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학생은 현재 혹은 과거 심리상담 경험자를 포함해 16.2%로, 여학생(20.4%)이 남학생(12.3%)보다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높았다.

■ 상담 원하는 학생들 늘어나

강남보건소는 올해 초부터 스트레스와 우울 경험 학생들에 대한 상담과 힐링을 위해 준비에 나섰다. 학생들은 학원 등 사교육 스케줄이 많기 때문에 학원가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사업에 목표를 두고,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약 3만명에 육박하는 대치동 학원 거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마치안센터에 쉼터 및 심리상담센터 조성을 추진해왔다. 수서경찰서에 현재 비어 있는 치안센터가 철거될 때까지 무상 사용을 요청하는 한편 추경에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등 착착 준비를 마쳤다. 긍정 반응을 보였던 경찰은 최근 건물은 경찰 소유이지만 토지는 개인 소유여서 토지주의 허락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협의 중단을 알려왔다. 8월 중순부터 시작하려던 공사 추진도 중단된 상태다.

양오승 강남보건소장은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들이 무거운 대학입시 등의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하루빨리 스트레스 관리 등 종합 안전망을 구축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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