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건강권을 위한 안심수다회 현장 취재
사회에서 금기시된 ‘월경’ 이야기
십대 건강권 위한 수다회 열려
인류 절반인 여성 몸에서
평생 일어나는 생리 현상
동료 시민이 될 남학생도
월경 교육 함께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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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4일 서울 중랑구 초록상상에서 ‘십대 건강권을 위한 전문의와의 만남-여성 안심 수다회’가 열렸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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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건강권을 위한 전문의와의 만남’. 어느 날 기삿거리를 찾다가 한 웹자보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학교 안팎에 있는 십대들의 건강권에 관심이 많은 터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랑구에 있는 시민단체인 동북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이하 초록상상)을 찾았다. 강의 장소를 찾아가며 생각해봤다. ‘십대 건강권, 십대 여학생의 건강권…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은 순결 캔디와 학생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보여준 거짓 낙태 동영상뿐이다!’
‘십대 건강권을 위한 전문의와의 만남’은 서울시의 ‘여성 안심마을’이라는 기금을 통해 진행하는 행사다. 여성안심수다회 외에도 성평등 영화제, 여성폭력 예방 캠페이너 양성 과정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내에서 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데 목표가 있다. 일상 속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함으로써 모두가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 “엄마가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초록상상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여성 안심 행복 마을’이라는 사업을 진행해왔고, ‘여성안심수다회’(이하 안심수다회)는 올해 처음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최미연 초록상상 성평등팀 활동가는 “서울 중랑구 지역 내에서의 독자적인 여성, 환경 시민단체로서 지역 여성들과 보다 생태적이고 건강한 공동체 만들기에 목표를 두고 있다”며 “십대 여성들의 ‘월경권’을 위해 지역 곳곳 혹은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과 양육자를 대상으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안심수다회는 그동안 사회에서 터부시되어온 십대 여성의 몸과 건강권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자 기획한 행사입니다.”
이날 오후 2시가 되자 온라인으로 미리 신청한 십대 여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에 ‘엄마가 가라고 해서’ 온 학생도 있었기에, 게다가 주제가 주제인지라 낯선 공기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윤정원 전문의(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와 박차영(활동명 살구) 초록상상 성평등팀 활동가의 ‘달뜬 수다’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이내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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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건강권에 관한 발제를 마친 윤정원 전문의(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가 생리컵 등 월경용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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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 같은 거 왜 하느냐고 물어봐요”
“남자애들이 ‘생리 같은 거 왜 하냐?’고 해서 기분 나빴어요.”
윤정원 전문의의 발제와 박차영 활동가의 수다가 이어지며 안심수다회가 정말 ‘안전’하다고 느낀 십대 여학생들이 각자의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자들 피 조금 흘린 거 가지고 호들갑 떤다” “어떤 남자 어른이 생리대 코너에 있는 나에게 ‘그런 거 왜 하느냐’고 조롱했다” “생리 그거 좀 참을 수 있는 거 아니냐” 등 상상 이상의 말들이 나왔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몸에서 평생 동안 일어나는 일인 ‘월경’. 이 교육을 여학생뿐 아니라 동료 시민이 될 남학생도 함께해야 하는 이유다. 안심수다회를 찾은 10여명의 여학생 가운데 7명이 ‘학교나 집에서 몸 또는 월경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은 적 있다’고도 했다.
이날 안심수다회는 참여 학생들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도록 ‘슬라이도’라는 실시간 질문 플랫폼을 활용했다. 어쩐지 부끄러워 손들고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익명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참여 학생들은 각자 익명으로 ‘초경을 시작하면 성장이 멈추나요?’ ‘월경 주기가 자주 달라져요’ ‘월경통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학교에서 단체로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시기가 있는데, 이때 여성과 진료가 필수일 수는 없을까요?’ 등 부모나 교사, 양육자에게 묻지 못했던 여러 질문들을 쏟아냈다.
이날 참여한 5학년 이지현 학생은 “부모님에게 물어보면 ‘나중에 더 크면 알게 돼’라고 말씀하셔서 내 몸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안심수다회에서 내가 내 몸을 사랑하고 살펴보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성장기인 십대 여학생들에겐 교실도 편안한 곳이 아니다. 반에서 남학생들이 생리한다고 놀리고, ‘야동’ 보고 와서 여학생들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하는 문화가 있어, 그런 교실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몸을 검열하게 되고 싫어하게 된다.
최미연 활동가는 “십대 여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고쳐야 할 몸’으로 여기게 되는 데에는 광고와 미디어 매체가 큰 영향을 준다”며 “얼평과 몸평은 결국 타인을 혐오하고 통제하는 문화다. 이런 생각이 교실 문화로 자리잡지 않도록 교사와 보호자들이 단호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성교육, 몸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 교육과 궤를 같이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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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수다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다양한 월경용품을 접해보며 워크숍 활동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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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몸보다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이날 안심수다회는 1부에 이어 2부 월경용품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생리컵과 면 생리대, 탐폰, 생리 팬티 등 다양한 월경용품들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생리대를 뜯어 흡수체에 물을 부어보기도 하고, 면 생리대 관리하는 법, 월경 컵 접는 방법을 배워보기도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하나같았다. 5학년 서혜정 학생은 “월경용품이 이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 평소에는 한번 만져보기도 부끄러웠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젠 알았다”며 “월경은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여성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생리컵 사용법, 월경통의 원인, ‘노브라’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전문 의학지식으로 월경을 설명해준 윤정원 전문의는 “티브이에 나오는 예쁜 몸보다는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이 너무 전형적”이라며 “어떤 연령대의 소녀들은 귀여워야 하고, 말라야 하고… 이런 식으로 사회가 단순하게 여성의 몸을 보다 보니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과 제약들이 십대 여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윤 전문의는 “거울 속 모습을 보며 여학생들이 ‘나 뚱뚱한 거 같아’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미디어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며 “포토샵을 통해 살을 깎아내고 결점을 없앤 비현실적인 몸이 아닌, 우리 주변의 진짜 여성의 몸은 어떻게 생겼고 긍정해야 하는지 등을 꾸준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심수다회와 같은 동네의 이런 시·공간들이 십대 여학생들과 십대 건강권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이지요. 십대들이 ’어떻게 해야 예쁜지’가 아니라 무엇이 건강한 것인지 등 이런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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