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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3 06:46 수정 : 2019.10.08 18:29

【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타인과의 관계가 있어야 존재하는 인간은 즐거우면서도 괴롭습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주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 뒤에 숨겨진 아픔이나 고통도 무시할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며칠 전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어깨에는 걱정을 한가득 지고, 눈에는 눈물 한방울 흘리며 오더군요. 퇴근하려던 차에 도서관 문을 다시 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지(가명)랑 친하지는 않은데, 엄마끼리 아는 사이예요. 매일 영지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저희 엄마와 통화하고,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잠시 기다렸습니다.

“자꾸 전화하셔서 서율(가명)이는 밤에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고 묻는 거예요. 학교에서 자는 모습을 영지가 자주 봤다면서요. 사실 저 별로 자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매일같이 들으니 엄마도 저를 다그치는 거예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행복합니다. 함께 이야기하며 꼬여 있던 갈등을 풀어내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지요. 이 모든 일이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 가능한 일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영지도 서율이도 사회적 인간으로서 참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숨겨진 아픔이나 고통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친구들도 이렇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서율이는 영지가 괘씸했습니다. 자신의 말보다 친구 엄마의 말을 믿어주는 엄마에게도 서운했습니다. 이런 감정을 쏟아낼 사람이 바로 저였지요. 서율이는 지난해부터 저에게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친구였어요. 저는 서율이의 말에 의견을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듣고 공감만 해주면 충분할 정도로 성숙한 친구이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서율이의 말을 듣고 먼저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저라도 힘들고 억울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서율이와 영지가 멀어지지 않길 바랐습니다. 문제는 둘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영지의 행동이 서율이가 미워서,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율이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지도 무지하게 힘들긴 한가 보다. 착한 서율이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서율이가 서운하지 않게 전달했습니다. 서율이의 성품이 친구를 감싸 안을 수 있기에 영지 입장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서율이는 잘 이해하는 듯했습니다. 포스트잇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써서 교실 책상 위에 붙여두었습니다.

‘웬만큼 잘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그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 이야기했다.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열패감을 보상받기 위해 타인을 모멸한다는 것이다.’ 김찬호, <모멸감> 중.

며칠 뒤 서율이와 영지가 학교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둘 사이에 앉았지요. 둘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땅바닥에 각자의 이름을 쓴 뒤 하트 모양을 그렸더군요. 영지는 서율이의 내적 갈등과 고민을 모르는 상태였지만, 어쨌든 둘은 전보다 훨씬 가까워 보였습니다. 서율이가 따로 찾아와 말하더군요.

“선생님, 영지한테 미안했어요. 영지도 정말 힘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텐데요. 그리고 영지도 제 이름 옆에 하트를 그려줄 만큼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말하는 표정이 얼마나 밝던지, 저에게 보내주는 미소가 참 고마웠습니다. 더 고마운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을 텐데도 영지의 마음을 헤아릴 정도로 성장한 서율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얽히듯 꼬여 있는 갈등을 풀어내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일이 사회적 동물이라 가능한 일이니까요. 이제 서율이에게 엄마와의 갈등을 풀어내는 용기와 지혜를 전달하는 일이 남았네요.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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