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0 19:46
수정 : 2019.09.20 23:04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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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중 지키기 모임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양천구 서울강서양천교육지원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송정중 폐교 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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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최원형입니다. 오늘은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에 있는 송정중학교는 2010년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지역사회와 함께 숨 쉬며 발전해온 교육 터전입니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납득할 수 없는 행정으로 내년 3월에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원래 송정동이라 불린 공항동은 1960년대 김포비행장 건설 이후 이름이 지금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아이들을 주로 송정중으로 보내왔습니다. 2008년 시작된 택지개발사업에 따라 바로 옆인 마곡동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이곳 주민들이 입주한 2014년께부터 “아파트 단지 안에 새 중학교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이 집중적으로 제기됩니다. 학생 수가 늘어났으니 학교를 새로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데 당시 교육당국은 “학교를 새로 지으려면 기존의 작은 학교들을 ‘통폐합’하라”는 방침을 앞세웠습니다. “학령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으니 학교 수도 줄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당시에는 ‘학교총량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교를 줄이라는 압력이 거셌습니다. 지금도 교육부는 학교의 ‘적정 규모’를 설정하고, 이에 못 미치는 ‘소규모’ 학교들은 잠재적인 통폐합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을 폐교·이전시키는 교육청에는 인센티브도 줍니다. 아무튼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송정중, 공진중, 염강초 등 3곳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고, 이를 조건으로 삼아 교육부 심사에서 마곡2중(가칭) 신설에 필요한 200억원가량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송정중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이런 일들이 추진됐다는 것입니다. 송정중 폐교는 2016년 교육부 심사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송정중 구성원들은 올해 5월에야 공식적으로 ‘폐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곡2중 신설 공사는 이미 1월에 시작해 진행 중이었죠. 마곡2중 신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다른 학교들의 폐교는 그것을 완수하기 위한 ‘희생양’으로만 여겼던 교육당국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교육청 담당자는 2017년 “현재 지역주민의 반대가 조금 심해서 일단 부대조건(통폐합)은 개교 시점에 완성을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밀실행정’에 분노한 송정중 구성원들은 “폐교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최근 전국에서 1만3천여명이 교육청에 ‘폐교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전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강한 저항이 일어난 배경에는, 송정중이 ‘혁신교육’의 가치를 충실하게 구현해온 ‘혁신학교’라는 사실이 있습니다. 폐교를 반대하는 송정중 학생, 학부모, 교사, 그리고 공항동 주민들은 “송정중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일궈온 ‘혁신학교’이기 때문에 지킬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학생 하나하나를 보듬고 지역사회와도 함께 숨 쉬어온 교육과 문화를 버릴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이들이 학교를 단지 물질적인 건물이나 장소 정도로 생각했다면, 또 교육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수단이나 관문쯤으로 생각했다면, 송정중은 무력하게 문을 닫았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은 행정예고대로 송정중을 폐교할 것인지, 아니면 교육부에서 받은 투자금을 토해내는 등 모든 것을 뒤집고 송정중을 유지할 것인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혁신교육’을 강조해온 조희연 교육감은 과연 ‘혁신학교’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사실상 경제 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진행되는 학교 통폐합 정책은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학교란 존재의 ‘적정성’을 따질 수 있는 걸까요? 폐교 위기의 한 학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꽤나 무겁습니다.
최원형 사회정책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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