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7 20:21
수정 : 2019.10.08 18:01
【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 아름다운 것들은 그냥 날 지나쳐 가고 끔찍한 운명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울한 청소년의 심리를 잘 표현한 그림책 <빨간 나무>(숀 탠)의 내용이다. 책에서처럼 우울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파국적 사고와 절망감, 무력감을 자주 나타낸다. 민정이(가명·17)도 모든 게 끝나버렸다는 생각에 자살 충동과 우울 증상을 보였다.
중학교 때 성적이 줄곧 최상위권이었던 민정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첫 시험을 본 뒤 예상치 못한 낮은 등수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뒤부터 우울 증상이 나타났다. 민정이의 장래희망은 의사다. 그래서 첫 시험을 망치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절망했다.
사실, 시험 한번 못 쳤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험에 실패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민정이처럼 많은 아이가 마치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학교 안 아이들에게 성적은 곧 성공의 바로미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시험을 망쳤더라도 다음번 시험에서 만회하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우울 증상의 아이들에게는 한번의 실패 경험이 “다음에도 실패할 거야”라는 부정적인 자동 사고를 끊임없이 하게 만들고, 이는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끼쳐 실제로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바로 우울증의 악순환이다.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보다 과민한 반응이나 짜증, 분노 같은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청소년기의 정서적 특징과 비슷해서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우울증은 종종 신체적 증상을 동반한다. 예를 들어 두통이나 복통, 소화불량, 수면 과다나 불면증과 같은 수면 장애, 섭식 장애나 급격한 체중 변화 등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모든 일에 관심과 흥미가 떨어지고 신체화 증상을 보인다면 우울증이 아닌지 관심을 가져봐야 한다.
민정이는 상담하면서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면 세상이 끝날 만큼, 내가 의사가 되는 게 인생의 전부를 의미하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민정이는 그저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될 거라고 말해왔고, 공부 잘하는 민정이를 보며 부모님도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해왔다. 의대 말고도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민정이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절망을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파국적 사고를 할 때 “그렇지 않아!”라고 서둘러 직면시켜주기보다는 “그만큼 힘들구나”라고 공감해주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곁에서 따뜻한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찾는 빛이 되기도 한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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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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