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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8 20:09 수정 : 2019.10.29 18:20

연재 ㅣ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냅니다. 엄마, 아빠, 행복, 친구, 여행, 꿈. 수업시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해 물었습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냅니다. 엄마, 아빠, 행복, 친구, 여행, 꿈. 수업시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해 물었습니다. 12장의 종이 카드에 하나씩 써 내려간 것들을 하나씩 버리게 했습니다. 카드를 한장씩 버릴 때마다 학생들은 고심했고, 아우성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1책 1배움’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한 수업입니다. 주제 도서는 박수현 작가의 <열여덟, 너의 존재감>이라는 책. 먼저 칠판에 책 제목의 초성만을 놓고 학생들의 관심을 끕니다. 8개의 초성에 이렇게 다양한 답이 나올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어렵던, 나의 자전거’ ‘아이들, 나의 자존감’ 등 오답들의 행진을 멈추고,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어줍니다.

프롤로그는 책의 등장인물인 담임 선생님과 고등학교 2학년 3반 아이들의 첫 만남 장면입니다. 다소 과격한 언어가 섞여 있지만, 내용만으로 학생들은 위로받은 듯합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난 뒤, 학생들은 제목의 정답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정답은 잠시 접어둔 채 설명을 합니다.

“여기 나온 담임 선생님과 2학년 3반 학생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지는데요. 그중에서 선생님이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했던 카드놀이 활동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면지를 한장씩 나눠주고 12개의 칸이 나오도록 자르게 했습니다. 12개의 칸을 만들 때 똑같은 크기로, 버리는 것 없이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을 추가했습니다. 각각의 카드에는 하나의 답변만 쓸 수 있습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중 중요한 사람 3명(호칭), 가장 소중한 친구 1명, 아끼는 물건 1개, 갖고 싶은 물건 1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2개, 각자의 멘토 1명, 하고 싶은 일 1개, 하고 싶은 일(직업) 1개. 이렇게 하면 11장의 카드에 답을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장의 카드에는 ‘나’라고 씁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선생님이 죽기 직전의 사람을 몇분 만나봤는데,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가 소중하다고 여긴 것 하나를 제대로 지켜왔나?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가지고 갈 것이 무엇인지 12장의 카드를 잘 훑어보세요. (잠시) 한데 인생을 살아보니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분에게도 묻습니다. 가장 덜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 4개의 카드를 버려봅니다.”

웅성웅성 시끄러워집니다. 잠시 시간을 주고 모둠별로 앉아 있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둡니다. 나머지 카드 중에서 3개, 2개, 1개, 그리고 마지막 1개를 선택하게 합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명이 울면 다른 한명이 웁니다. 더 이상은 버릴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한장의 카드를 멍하니, 또는 끝내 버리지 못한 카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억지로 버리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설 <열여덟, 너의 존재감>에서 이 활동을 했던 친구들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학생 2명이 나와 이 부분을 읽어준 뒤, “특별히 버리기 어려웠던 것은? 현재 나의 마음은?”이라는 질문을 친구들에게 남겼습니다. 2학년 박산아 학생의 소감을 옮겨봅니다.

“선생님은 카드를 버리는 중간중간 이야기할 틈을 주셨습니다. ‘만약 네가 죽어서 너의 가족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면 죽을 거야?’ 우리 모둠이 던진 질문입니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의 절반은 가족의 소중함이었지만, 나머지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도 사랑했을까?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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