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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 출신이 본 ‘교육 특권’
초등생 땐 토플 사교육·조기유학
고교 3년 내내 과외비만 6천만원
서울대 들어가보니 흔한 가격
학교서 대치동 학원과 계약 맺어
논술수업 받거나 자소서 첨삭 특강
학교서 입시설명회 여는 대학들
일반고와 내신컷 다르다 말하기도
우릴 다르게 봐줄 거란 기대 높아
정시 늘려도 교육불평등 해소 못해
특목고·자사고 없애는 게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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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고교학점제가 본격 도입되는 2025년에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국어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수시 전형 불공정의 배경이 되고 다른 교육 특권으로 인식되는 것이 고교 서열화 문제”라며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고 일반고가 고등학교 교육의 중심이 되려면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도 교육계에서는 “고교 서열화 해소를 사실상 다음 정권에 넘긴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학부모들은 “자사고·외고·국제고와 일부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하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동안 교육 시민단체들은 영재학교·과학고·자사고·외고·국제고처럼 다양한 교육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육제도’ 안에 자리잡은 이들 학교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갖춘 소수에게만 더 큰 문이 열려 있고, 애초 취지와 달리 입시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다. 또 이들 학교를 우리나라 교육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원인으로 봤다. <한겨레>는 최근 2~5년 새 자사고·외고를 졸업한 서울대 재학생 4명을 만나 이들의 고교 입시 경험을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이들 학교가 가진 ‘제도화된 특권’적 측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 높은 비용 치르는 극소수만 누리는 자원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하는 순간부터 자사고나 외고, 특목고를 간다는 목표가 정해졌어요.”
아버지 직업이 변호사인 이윤석(가명·23)씨는 어렸을 때부터 강남 대치동에서 사교육을 받았다.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5학년 땐 조기 유학 ‘붐’에 따라 캐나다 사립학교에 열달 동안 다녀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 ‘영재 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연립방정식을 배웠고, 중학교 땐 고등학교에 가서 배우는 순열·조합까지 배웠다. 토플 학원도 다녔다.
자사고·외고 입학은 이처럼 사교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겨레>가 만난 자사고·외고 출신 학생 4명은 이르면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 사교육 등을 시작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막대한 돈을 투자해 공교육 외 사교육을 받았다. 외고 출신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최민영(가명·23)씨는 중학교 3년 내내 동네 학원에서 영어·수학을 배웠고, 고등학교에서는 과외를 받았다. “한달에 160만원인 과외를 3년 내내 받았”으니, 과외에만 6천만원 가까운 돈을 쓴 셈이다. 최씨는 “당시엔 엄청 비싼 과외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와서 친구들을 보니 서울대에서는 흔한 가격인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실제로 2017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희망 고교와 함께 매달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조사해보니, 일반고의 경우 전체의 8.7%에 불과했지만 광역 단위 자사고 희망 학생은 43%, 전국 단위 자사고 희망 학생은 40.5%를 차지했다. 외국어고와 국제고 희망 학생 가운데 매달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한 학생은 전체의 20.6%를 차지했다. 이들 학교는 진학 전뿐만 아니라 진학 후에도 일반고에 견줘 학비가 높아 경제적 비용을 많이 치른다. 2018년 기준 학교별 1인당 학부모 부담금을 비교해보면, 공립 일반고는 246만원이지만, 전국 단위 자사고는 1133만원, 광역 단위 자사고는 720만원, 외국어고는 764만원에 이른다.
■ 대입에 유리한 구조화된 ‘반칙’
자사고·외고는 중학교 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한다. 그만큼 ‘동료 효과’가 크다. “공부 잘하는 애들을 모아놓으니 다들 잘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일반고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사고·외고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선점해서 ‘그들만의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다양한 학생이 함께 공동체를 구성할 때 서로에게 긍정적 역할 모델을 하게 된다”며 “자사고·외고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분리함으로써 차별·특권 교육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이들 학교는 또 높은 학비와 교과 편성의 자율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대학 입시 경쟁에서 유리하게 운영된다. ‘상위권’ 대학들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사고·외고는 온갖 자원을 총동원해 학생들을 학종에 최적화된 상태로 만드는 데 몰입한다. 학종 전형이 과학고·외고·자사고 등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황희진(가명·21)씨가 외고에 진학했을 때 학교에선 “너희들 모두를 수시로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으니 다 함께 힘내자”고 강조했다. 학교는 영어 연구 대회, 스피치 대회, 논술 대회 등 과목별로 교내 상을 만드는 등 이것저것 교내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학교 자체 인증제다. ‘텝스 850점 이상을 받으면 3점을 준다’는 식으로, 전공어·영어·독서·봉사활동·한국사능력시험 등의 부문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점수로 인증해주는 제도다. “정형화된 시스템이라 대학에서 이것을 보고 학생의 능력을 한눈에 파악하는 게 가능한 거죠.” 교육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특정 학교 ‘인증제’로 대학에서 학생이 특정 학교 출신인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이 이른바 ‘고교 등급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때로는 학부모들의 경제력이나 사교육이 학교 활동 안으로 침투하기도 한다. 자사고 출신인 윤석씨는 “학교가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치동 학원과 계약을 맺고 ‘방과 후 수업’으로 논술이나 면접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했다. 사실상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끌고 들어온 셈이다. 외고 출신인 민영씨는 “수시 자기소개서를 낼 무렵 학교에서 대치동 학원 원장을 불러서 자소서 첨삭 특강을 하게 해줬다”고 했다. 1인당 10만~3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한 반에 3분의 2 이상이 신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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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서울 자사고 연합 설명회를 찾은 예비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강사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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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도 우리를 다르게 봐줄 거라는 믿음
자사고·외고의 이런 ‘역량’은 꼭 수시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외고 출신인 민영씨는 “내신 상위권 애들은 학종 위주인데, 2~4등급인데 수능이 잘 나오는 애들은 학교에서 정시를 밀어준다. 고3 때에는 영어 시간에 수능 특강 지문을 외우는 수업을 하는 등 수업 자체는 다 정시 대비로 이뤄졌다”고 했다. 수시보다 정시에 몰입하는 어떤 외고에서는 전체 수업 자체가 수능 문제 풀이 위주로 이뤄진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교 등급제’ 의혹이다. 대학들이 내신 성적에 대한 평가 등에서 자사고·외고 등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고교 등급제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겨레>가 만난 학생들은 대체로 고교 등급제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털어놨다. 윤석씨는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 입장에서는 대학에서 반드시 자사고 내신을 일반고와 차별적으로 바라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사고에 진학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고 말했다.
민영씨는 “대학들이 외고로 찾아와 이른바 ‘입시 전형 설명회’를 열고 일반고와 외고는 내신 ‘컷’이 다르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공공연히 했다”고 말했다. “학교 이름도 못 쓰고 (면접에) 교복도 입고 가면 안 되는데, 어떻게 우리 학교인 걸 알까 생각이 들긴 했어요. 아마 학생부에 들어가 있는 활동 이름을 보고 아는 건가 하는 추측을 했죠. 어쨌든 대학에서도 우리를 다르게 봐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 “정시 확대 아닌 특권 학교 폐지가 교육불평등 해소”
자사고나 외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서열’과 ‘차별’이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한 외고의 경우 전교 100등 안에 드는 학생들한테만 자습실을 쓰게 하고 보충수업을 해줬다고 한다. 민영씨는 “경쟁이 심해지자 학생들끼리 서로 거짓말도 많이 하고 내신에서 몇개 틀렸는지 알아내려고 공책을 훔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내신 5등급 이하는 “입시지도도 제대로 안 되고 적성 파악도 안 되고 상담도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만 투자하니까 짧고. 그래서 재수, 삼수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한 자사고에서는 학기 말에 전교생 200명 가운데 상위 10명을 강당 단상에 세우고 메달과 장학금을 줬다.
이런 분위기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자사고·외고 졸업생들은 공고한 인맥으로 묶이게 된다. 자사고 출신 김성훈(가명·24)씨는 “서울대에 왔더니 특목고 출신이 정말 많았다. 특목고 출신 모임이 따로 생기는 등 의미 있는 인적 연결망으로 발전하더라”라고 했다. 외고 출신인 희진씨는 “동문회 알림 같은 것만 봐도, 사회에 나가면 언제든 저런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만난 자사고·외고 출신 4명은 모두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에 찬성했다. 이들은 “다양성 추구, 특화 교육이라는 애초의 취지를 잃은 채 입시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민영씨는 외고 교육과정이 “200% 입시 위주”라고 단언했다. 자신을 포함해 절반 정도는 외고 입학 때부터 어문계열이 아닌 사회과학계열을 지망했다. 외국어 수업은 우선순위도 아니었다. “외고 학생들은 내신에 도움이 안 되면 제2외국어나 자기 전공어 수업을 버리고 그 시간에 수학이나 학원 문제를 풀어요.” 자사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윤석씨는 “다양성을 위한 교육이라면서 여러 심화 과목을 개설했지만, 결국 내신에 유리한 과목만 골라 듣게 됐죠. 대학에서 배워도 충분한 것들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다양성 교육이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정시를 늘리면 어떻게 될까. 민영씨는 “정시를 늘린다고 교육 불평등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특목고·자사고를 없애는 건 교육 불평등을 줄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씨는 “솔직히 입시 경쟁이 모든 것인 상황에서,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상위권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문제다. 이건 명백히 경제적 배경에 따라 나뉜다. 정시 위주로 해봤자 똑같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훈씨 역시 “모든 학교가 자사고에서 누리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한 교육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희진씨는 자각과 성찰을 이야기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는 조국 교수의 자녀와 자신이 비슷한 ‘트랙’ 위에 서 있었다는 걸 느끼는 한편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결코 내 ‘능력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특권 학교 학생들이나 상위권 대학 학생들 입장에선 스스로 열심히 했더니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자기 능력대로’를 말하는 순간, 그걸 가능하게 했던 온갖 구조적인 배경들을 다 보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유진 최원형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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