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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7 16:21 수정 : 2019.11.18 02:41

17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0 대학입학 정시 전략 설명회’ 전단지. ㅈ학원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올해 기초단체 입시설명회 62건에 사교육 연사”
2016년 교육부 “사교육 강사 지양하라” 지침에도
세금 들인 행사에 입시학원 임원급 초빙 관행 여전

‘대학배치표’ 자료집엔 재수반·면접특강 등 학원광고

17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0 대학입학 정시 전략 설명회’ 전단지. ㅈ학원 문구가 곳곳에 적혀 있다.

17일 오후 2시 서울 성산동 마포구청 대강당.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강당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흘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수험생과 학부모들이었다. 이날 마포구청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2020 대학입학 정시 전략 설명회’를 열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이 ‘(입시) 전문가’라고 소개한 연사는 다름아닌 ㅈ학원 관계자들. 강당에 들어서기 전 학원 쪽은 참석자들에게 두터운 입시 자료집 뭉치를 나눠줬다.

자료집은 곧 광고 전단이기도 했다. 수능 가채점 점수별 합격권 대학을 소개한 대학 배치표 마지막 장엔 ‘재수 조기 선행반’ 모집 광고가 실려 있었다. 구술면접 특강이라며 이틀에 34만원, 나흘에 50만원짜리 학원 수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설명회에 앞서 인삿말에 나선 학원 관계자는 “이 지역에 ㅈ학원이라는 명성 있는 학원이 있는데, (여기를 두고) 아이들이 대치동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교육기관 강사 초빙을 지양하라는 교육부의 지침에도 아랑곳없이, 기초자치단체가 여는 입시설명회에는 여전히 이들이 연사로 나서고 있다. 이런 입시설명회가 자칫 학부모들에게 사교육 참여를 종용하고 공교육 불신을 키우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도, 정작 기초단체의 경각심은 부족하고 관리·감독도 소홀해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17일 오후 마포구청 대강당 모습. ‘2020 대학입학 정시 전략 설명회’를 듣기 위해 찾아온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앉아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가 최근 자체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기초단체가 열거나 열 예정인 입시설명회에 사교육기관의 연사가 초빙된 사례는 이날 서울 마포구를 포함해 전국 10개 시·도 38개 기초단체에서 62건에 이른다. 연사들은 대부분 입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대형 사교육 업체의 임원급인데, 지자체들은 이들을 ‘입시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사걱세는 강연 주제 역시 ‘OOO(특정 지역)에서 스카이(SKY, 서울·고려·연세대) 가는 법’ 등 사실상 사교육 설명회와 다를 바 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 세금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여는 지자체 입시 설명회가 입시업체의 영업 기회로 이용되고 있다”(사걱세)는 점도 문제다. 단순히 입시 정보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의 입시 불안감을 증대시켜 사교육기관의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목적으로 지자체 설명회가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부가 2016년 6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내린 지침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당시 “일부 기초단체에서 사교육기관의 강사를 초빙해 학생, 학부모에게 사교육기관 이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사교육기관 강사 초빙을 지양하고, 대입 지도 경험이 많은 공교육기관의 교사 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표 강사를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지침을 내린 바 있다.

2016년 6월 교육부가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에 보낸 공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제공

하지만 지침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이날 마포구뿐만 아니라, 25일 서울 관악구, 27일 부산 북구, 다음날 12일 서울 강북구와 구로구가 각각 입시설명회를 열면서 ㅇ학원, ㅂ교육 등 사교육기관 관계자들을 연사로 내세울 예정이다. 더구나 사걱세의 이번 조사가 전수 조사 결과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62건보다 훨씬 많은 기초단체 입시설명회에 사교육기관 연사들이 초빙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사교육기관 출신들을 우후죽순으로 입시설명회에 불러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학부모들이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공교육기관에선 나설 만한 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다. 부산에 사는 이아무개(49)씨는 “2016년께 해운대구에서 연 입시설명회에 갔는데 그때 유명 학원 출신 입시 컨설턴트가 연사로 나왔었다”며 “수도권에 비해 입시 정보가 부족한 지역 학부모 입장에서는 기초단체 입시설명회에 이런 사람이 나온다고 하면 반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걱세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초단체들이 공교육기관 연사를 섭외하려는 일체의 노력 없이 사교육기관에 입시설명회를 위임하는 것은 공교육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앞으로 예정된 설명회에 섭외된 사교육기관 연사를 공교육기관 출신으로 전면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교육부에 ‘사교육 연사 지양’ 지침을 재차 내리고, 대교협과 지역별 진학지도협의회 쪽 연사 인력풀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중장기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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