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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5 20:09 수정 : 2019.11.26 02:07

‘장애학생 e페스티벌’ 우수상 유혜정씨

동점으로 공동 1위 올랐지만
생일 빠른 탓 아쉽게도 2위
“모두 선생님들 덕” 공 돌려

5살 때부터 복지시설에서 생활
학교기업에서 훈련하며 취업준비
“내 힘으로 자립하는 게 목표”

유혜정 학생이 지난 9월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2019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 정보경진대회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고 김은숙 국립특수교육원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덕희학교 제공

“프레젠테이션 할 때 긴장하지 않고 연습 때처럼 제스처만 제대로 했더라면 국무총리상을 탈 가능성이 컸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도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앞으로 취업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 최초의 정서·행동·자폐성 장애아 관련 특수학교인 대구덕희학교 유혜정(20·전공과2)씨는 대회가 끝난 지 두 달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9월 초 더케이서울호텔에서 국립특수교육원 주최로 열린 ‘2019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 정보경진대회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동점으로 공동 1위를 했지만, 생일이 빨라 2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1위를 했다면 이 대회 최고상인 국무총리상도 받았을 것이다. 연습할 때는 마이크를 들고 제스처를 하면서 했는데, 대회에서는 연단에 마이크가 고정돼 있어 제스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생략했는데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효선 교사도 옆에서 한 수 거든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에 주민등록증을 복사해서 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혜정이가 2학년이어서 상대가 1학년이라면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혜정씨는 올해 초 2학년에 올라오면서부터 대회 준비를 본격화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정보기술자격(ITQ) 파워포인트와 한글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피피티(PPT)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이미 손에 익었다.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지난 5월 대구에서 첫 관문인 지역 예선이 열렸지만 상대 3명 가운데 적수는 없었다.

e페스티벌은 정보경진대회와 e스포츠로 나뉘어 있다. 정보경진대회에는 프레젠테이션과 코딩, 인터넷 검색 등 7개 부문 16개 종목이 있다. e스포츠에서는 하스스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등 11개 게임 경기가 열렸다.

대회에서 입상한 뒤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누구였는지 물었다. 부모 등 가족이나 친구가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최정옥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 덕분에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대답이 나왔다. 엄마 아빠가 안 나와 의외라고 하니, 그는 “부모님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부모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가족과 너무 어려서 떨어져 살아온 탓에 가족보다는 교사들한테 가족의 정을 더 느끼는 듯싶다.

유혜정 학생이 지난 9월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2019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 정보경진대회를 앞두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하고 있다. 대구덕희학교 제공

그는 다섯살 때부터 복지시설에서 살아왔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은 게 이유였다. 초·중학교는 일반 학교를 다녔는데 중학교 1학년 때 교사의 권유로 장애 판정을 받고 이듬해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로 전학을 했다. 지적장애 3급인데 겉으로 봐서는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조금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정도다. 어머니는 기억이 나지 않고 아빠와 언니 둘이 있는데, 작은언니하고만 가끔 카톡을 한다고 한다. 가족 얘기를 몇번 더 물었으나 꺼리는 눈치가 역력하다.

혜정씨는 지난해에 고교 과정을 졸업하고 전공 과정에 진학했다. 취업 준비 과정인데 이때부터 손발이 빠른 학생은 취업을 할 수 있다. 그는 오전에는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3시간씩 학교기업에서 일한다. 학교기업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만들고 운영하는 곳으로 세차나 세탁을 하거나, 봉투 만들기, 물건을 조립해서 납품하는 임가공 등을 한다. 월급을 받으며 훈련과 실습을 할 수 있으며 향후 더 좋은 조건의 취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혜정씨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봉투를 접든, 면봉을 만들든 거절하는 일이 없다. 한달에 50만원 정도 월급도 받는데 미래를 위해 모아두고 있다. 전 교사는 “손재주가 있는데다 일을 하는 것을 즐긴다. 또 과제를 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복지시설에서 15년을 살아온 혜정씨는 작년에 고교를 졸업하고 전공과를 진학하면서 그곳을 나와 카리타스남구보금자리로 옮겼다. 성인이 되면 거치는 의식이랄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복지시설인데, 거기서는 거의 막내다. 평일에는 아침저녁 식사가 나오지만, 주말에는 장을 보고 직접 음식을 해먹어야 한다. 불을 무서워하지만, 요리는 자립의 기초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유혜정 학생이 지난 9월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2019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 정보경진대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대구덕희학교 제공

혜정씨는 욕심이 없는 듯하다. 특수학교 전공과 학생들은 빨리 취직해 자립하는 걸 우선으로 친다. 1학년 때부터 남보다 먼저 나가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는 “더 배워서 천천히 취업하려고 한다. 선생님들이 다 좋아 헤어지기 싫다”고 한다. 피피티와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배운 것은 대학을 가거나 대기업 같은 데 취직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그럴 생각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냥 이력서에 자격증과 수상경력을 하나 더 써넣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닌 것을 보면 내심은 다른 것 같다. 글씨 쓰는 걸 좋아한다더니 캘리그라피를 주제로 피피티를 만들어 자랑도 한다. 지금은 취업에 집중할 시기라 캘리그라피를 잠시 쉬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자격증에 도전하겠다는 열의를 보였다.

혜정씨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의외로 선머슴으로 찍힐 만한 축구다. 초등학교 때 처음 남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해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기회 될 때마다 열심히 하고 있단다. 지난달 전공과에서 대구 부근 성주로 캠프를 갔는데 거기서 한 축구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다며 흥분한다. 축구공에 맞아 안경이 부러진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만둘 생각이 없다.

그의 앞날이 축구경기만큼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직 규칙도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곳도 많지 않은 현실 탓이다. 어쩌면 혜정씨는 이런 탓에 욕심을 보이지 않도록 마음속에 감췄는지도 모른다.

전효선 교사는 “취업의 기회가 너무 좁은 것도 문제거니와 편견에 싸인 사회의 시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인데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하는 것이 문제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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