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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5 20:09 수정 : 2019.11.26 02:07

연재ㅣ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올겨울 독서토론 동아리 ‘맑음’의 학생들은 또래 친구들의 고민을 주제별로 나눠 추천 도서를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매주 두 번 일과가 끝난 뒤 모여 ‘책 짓는’ 작업을 해왔지요.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1년 동안 책을 몇 권 읽을까요? 그들은 책을 어떻게 선택할까요?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무엇을 할까요? 꽤 오랜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해왔다고 자부했는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학교 문화에 따라 다르고, 개인별로도 차이가 커 답을 내놓기도 어렵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정한 원칙 중 하나는 ‘책으로 시작하되 책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은 뒤 기억나는 문장을 곱씹어보고 대화를 해 관계를 맺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서로가 응원하며 책과 책, 책과 사람, 책과 삶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태 써온 글을 다시 읽고, 학생들을 떠올리며 지나온 생활과 삶을 깔밋하게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질 때입니다. 세밑이 다가오면 ‘올 한해 잘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요즘 저는 학생들이 마음을 채워가며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학교도서관의 연말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학생들과 다 같이 세 번의 여행, 열 번 가까이 되는 야간 프로그램, 그리고 매주 만나는 수업을 사진으로 정리하여 ‘사진책’을 만듭니다. 함께했던 2019년의 순간들을 정리하며 사진 150여장을 책 한 권에 담아봅니다. 짤막한 글과 사진, 추억을 아로새겨 직접 책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줄 생각입니다. 사진책의 제목은 ‘책 너머 꿈틀’입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책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율동아리 ‘맑음’ 학생들이 또래 친구들의 마음속 빈 곳을 채워준 책을 유형별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가진 여러 고민의 뿌리를 찾아가며 읽고 소통했던 책들을 종류별로 묶어본다죠. 진로 때문에 고민인 친구들부터 마음이 아파 고민인, 몸이 아파, 소통이 어려워, 세상의 원리가 궁금해, 일상이 지루해, 과거와 미래가 궁금해, 돈 관리가 안 돼, 관계 때문에 고민인 친구들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자 정리하는 중입니다.

‘맑음’ 친구들은 올해 9월부터 두 달 넘게, 위에 언급한 고민 주제에 따라 5~8권 분량의 책 목록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고민별로 읽어볼 만한 책을 직접 선정해보는 것이지요. 60권 정도를 갈무리하여 소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데, 거의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2019년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가득 채운 도서들을 한 권의 책으로 온전히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새어나가는 틈을 메워 꾹꾹 눌러쓰고 있습니다.

매주 두 번 일과가 끝난 뒤 모여 오후 다섯 시부터 한 시간씩 ‘책 정리 작업’을 해왔습니다. 컴퓨터 앞에 책과 ‘책 보고서’를 쌓아두고 꼼꼼하게 정리하는 ‘맑음’ 친구들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하게 임했지요. 한 시간이 지난 뒤 학생들은 제 전자우편으로 정리한 분량을 보내는데, 어떤 날에는 60분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두 권의 책을 한 번에 정리하는 날도 있었지요.

12월이 되면 이것을 <백운고의 서재>라는 인쇄물로 묶어 친구들에게, 내년 학교에 입학할 후배들에게 나눠줄 예정입니다. 제목이 촌스럽다며 관련 회의를 다시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서 제목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한데 제목이야 뭔들 어떻겠습니까? 이 인쇄물에는 책을 어떻게 선택할지, 읽은 뒤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안내도 들어갈 모양입니다. 제가 답을 내지 못했던 내용을 ‘맑음’ 친구들이 알려준다니 좋습니다. 어떤 혜안이 담겨 있을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질지 기대해보며 학교도서관 문을 닫은 하루였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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