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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2 20:06 수정 : 2019.12.03 02:35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아이들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창작극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상팀 재공연을 마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커버스토리 제27회 전국어린이연극잔치 현장

‘작은 학교’들의 활약 컸던
국내 유일의 어린이 연극 잔치
엿새 동안 치열한 본선 경합

대본부터 연출까지 척척
작품에 몰입하는 경험 해보면
창의성의 외연도 넓어져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아이들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창작극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상팀 재공연을 마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무대 암전)(우당탕 들리는 소리)(무대 세팅 완료)

우준: “거기 잠깐 멈춰봐!”

하늘: “현재야, 무슨 일 있어?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이하 연극 잔치) 금상 수상작인 <2019. 마니또 프로젝트>(이하 마니또 프로젝트) 중 일부다. 이날 연극 잔치를 찾은 기자는 한 시간 분량의 창작극인 <마니또 프로젝트>를 관람했다.

무대를 휘어잡는 초등 연기자들의 카리스마, 적절한 때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 또렷한 발성,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여느 전문 배우 못지않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가 극의 반전을 암시할 때, 장면이 바뀌는 암전 때마다 무대를 세팅하는 초등 배우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감탄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아이들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창작극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상팀 재공연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 작은 학교의 연기 천재들

전교생 32명 가운데 60%의 학생이 ‘연극배우’인 학교가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서상초등학교. 면 단위의 작은 학교라 전교생이 32명인데, 그 가운데 19명이 창작극 배우다.

서상초는 경남 지역 어린이 연극 부문 1등을 차지한 뒤 전국 본선 무대에 올랐다. 서상초 연극팀은 지난 10월25일부터 31일까지 함양 학생공연장에서 열린 경남 어린이 연극 페스티벌에 참가해 최고작품상·최우수연기상·지도교사상 등을 받았다. 화려한 경력과 두둑한 뱃심으로 연극 잔치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인 금상을 받았다.

연극 잔치는 지난달 11월26일부터 12월1일까지 열렸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아이들극장’에서는 강원, 울산, 경남, 인천, 전북, 경기, 부산 등 전국 각 지역에서 1위를 한 뒤 본선에 오른 어린이 연극팀들이 경합을 벌였다.

<마니또 프로젝트>에서 각각 주연 ‘현재’와 ‘기수’ 역을 맡은 조조 학생과 박승룡 학생은 “공연을 준비하며 대사량이 많아 힘든 적도 있었다”며 “한데 함께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재치 있는 장면들을 넣을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생애 첫 주인공을 맡은 거잖아요. 방과 후 시간에 모여 매일같이 연습하는 게 힘들었어도, 직접 연극을 해본 경험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기자가 본 <마니또 프로젝트>라는 창작극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친구들 간의 사랑과 우정의 가치, 함께하는 삶의 의미 등을 대본에 고루 녹여낸 작품이었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현재’와 ‘기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싸우는 앙숙이다. 교실에서 다툼이 잦아지자 선생님의 권유로 마니또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현재는 기수의 집으로, 기수는 현재의 집으로 오가며 서로의 장점과 진솔한 마음, 상대에게 필요한 것 등을 생각해보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에는 복잡한 이면이 있고, 이를 찾아주고 배려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날 기자는 <마니또 프로젝트>를 관람하며 ‘이 공연은 정식 티케팅을 하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 기획·연출·출연까지 모두 어린이 손으로

연극 잔치는 국내 유일의 어린이 연극 경연대회다. 1992년 연우무대 정한룡 예술감독이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표현의 장을 마련하자’란 취지로 시작해 30년 가까이 이끌어왔다.

올해부터는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이사장 방지영)와 한국교육연극학회(회장 김정만)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연극 잔치가 열리는 6일 동안 종로 아이들극장에는 전국 예선을 통해 올라온 8개 지역, 8개 초등학교 연극팀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공연이 열렸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아이들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창작극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상팀 재공연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금상을 탄 서상초 못지않게 ‘작은 학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전북 군산 술산초등학교 역시 전교생 30명 가운데 18명이 연극 잔치에 참여해 <요술 모자>를 공연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은 △서울 신도초등학교 <구멍> △부산 안진초등학교 <해프닝> △강원 원주 치악초등학교 <엄마의 꼭두각시> △울산 명덕초등학교 <나비의 순간> △경기 양주 연곡초등학교 <바리데기> △경남 서상초등학교 <2019. 마니또 프로젝트> △인천 서면초등학교 <심청이의 모험> 등이다.

특히 연곡초의 <바리데기>는 한국의 전통 무속신화 소재를 활용해 삶과 죽음, 여성의 인권, 효도의 의미와 같은 메시지를 담아냈다. 연곡초 연극팀은 <바리데기>를 또래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통 설화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스토리 시어터(즉흥극과 스토리 텔링을 결합한 형태의 교육연극 방식) 형식을 채택해 이목을 끌었다.

■ 연기하며 협동 배우고 공감 능력 커져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세계의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시대다. 터치 한 번으로 0.1초 만에 웃긴 동영상이 나오는 시대니,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콘텐츠를 찾게 된다. 이미 재미있게 만들어진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연극과 같은 ‘느리고 전통적인’ 공연 예술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직접 대본을 써보고 동선을 짜면서 협동하고, 배우로 참여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연극 경험은 아이들의 창의성과 협동심을 키워준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한 박자 쉬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바로 연극이라는 이야기다.

공교육 현장에서 연극이라는 장르에 한번 몰입해보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큰 교육효과를 가져온다. 연극은 어린이들에게 잃어버린 ‘놀이’를 되돌려주고 어린이다움을 찾게 한다. 연극, 무용 등 공연 예술은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자유롭게 표현해볼 기회를 준다. 그런 기회가 많을수록 창의성의 외연은 넓어진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아이들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창작극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금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상팀 재공연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나아가 역지사지해볼 수 있는 공감 능력을 키워주고 ‘사람다움’을 일깨우는 체험의 과정이 바로 어린이 교육연극이다. 연극이라는 수업·활동 모델 자체가 역량 중심 과정이다 보니, 공교육 현장에서 시도해보는 연극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연기하는 방법과 연극의 다양한 기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일상 속 인물이나 소설 주인공, 주변에 있는 사물 등에 대해 한번쯤 멈추어 생각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감수성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사물이 되어 간접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공동체 안에서 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번 연극 잔치의 운영위원장을 맡은 김정만 한국교육연극학회 회장은 “교육연극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연극 놀이’가 가능해졌다”며 “무대장치와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상상력을 키우고, 연극 준비 자체가 협동의 과정을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구멍>이라는 미스터리 창작극으로 제27회 연극 잔치에서 최우수지도자상을 받은 서울 신도초 류지웅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정해진 연습 시간에 집중하면서 기획, 시나리오, 무대장치, 표현하기 등 전반적인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며 “함께 쓴 대본을 고치고 보완해가며 다른 의견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율하는 방법도 배운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관련 기사] “교과서에 안 나오는 ‘삶의 기술’, 연극에서 배울 수 있죠”

인터뷰 ㅣ 권태형 경남 함양 서상초 교사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 아이들극장에서 경남 함양 서상초 권태형 교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권 교사는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에서 최우수창작상을 받았다. 김지윤 기자

11월26일부터 12월1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이들극장에서 제27회 전국 어린이 연극 잔치(이하 연극 잔치)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 뒤 서울 본선 대회까지 올라온 8팀. 강원, 울산, 경남, 인천, 전북, 경기, 부산 등 지역 어린이 연극 페스티벌에서 1등을 한 팀들이 공연 예술로 한판 신나게 놀았다.

연극 잔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금상)을 받은 경남 함양 서상초등학교 권태형 지도교사를 만나 연극의 교육효과와 소감 등을 들어봤다.

■ <2019. 마니또 프로젝트>로 최우수창작상을 받았다. 대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먼저 연극에 참여하길 원하는 아이들과 모여 ‘학교생활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갈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부터 던져봤다. 아이들 대부분이 친구 관계를 꼽았다. 친구의 진심을 알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의견부터 멀어진 친구와 다시 가까워지는 방법,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고 있었다. 대사와 상황 설정 역시 우리가 사용하는 교실을 재료로 했다. 오랜 시간 협동하며 묵묵히 연기해온 아이들에게 큰 상이 돌아가 무척 기쁘다.”

■ 연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학생들은 연극에 참여하고 배역에 몰입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게 된다. 흔히 일어나는 왕따나 학교폭력, 게임 중독 등 아이들 세계의 문제를 역지사지하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왕따의 경우 피해 학생의 처지에서, 게임 중독은 양육자의 처지가 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공감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 공교육 현장에 연극 등 역량 중심 교과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교실에서 연기를 해보면 아이들이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화된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협동하고 갈등을 조율할 것인지 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연극에 배우, 스태프 등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한 가지 목표를 두고 공동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레 표현해내는 방법을 찾게 된다. 연극 등 공연 예술 교육은 창의적 활동이다.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삶의 기술을 연극에서 얻을 수 있다.

연극 잔치를 준비하면서 대본을 함께 쓰고 필요한 소품과 음악도 친구들과 같이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국어, 수학 등 학교 성적으로는 알 수 없던 아이들 각자의 숨은 재능도 발견할 수 있다. 연극에서 소외되는 친구들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는 능력도 학교라는 공동체에서는 중요한 부분이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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