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23 20:18 수정 : 2019.12.24 02:35

‘책갈피’에 담긴 청소년들의 사연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 부재에
갈등과 방황 끝에 비행 저질러
후회하고 반성하며 새 삶 다짐

교보재단, 3년째 독서편지 사업
학교 밖 청소년 등 참여 유도
소외되지 않도록 도서도 기증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서 열린 교보교육재단 독서편지 공모전 입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소년원 청소년들의 얼굴을 공개할 수 없어 일반 중고생만 나온 사진을 골랐다. 맨 왼쪽은 천종호 판사, 맨 오른쪽은 선종학 교보교육재단 이사장. 교보교육재단 제공

“저는 늘 불행했습니다. 제가 지은 죄도 생각하지 않고 항상 제가 불행하다고 느꼈습니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아직 망가지지 않았단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처럼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보면 가정의 보호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해주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많이 억울했습니다. ‘나도 좋은 부모, 좋은 가정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터무니없이 이런 생각입니다. 아무리 가정환경이 안 좋았더라도 비행을 저지른 건 모두 저의 잘못이었고, 철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후회하고 내가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이미 저지른 일이니 재범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일단 지켜야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아직 20살이지만 동갑내기 아내가 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저도 많이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근데 그런 아내를 혼자 두고 수용소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지금의 저는 온통 아내 걱정에, 어머니, 할머니 걱정으로 날마다 힘들게 지내고 있는 도중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내의 임신 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냥 너무 미안했습니다. 평범하게 지내는 여자들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복도 받고 같이 기뻐해 주는 남편도 있지만 저는 그저 수화기 너머로 ‘미안하다’ 이 말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며 저는 그저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교보교육재단(이사장 선종학)의 ‘책갈피 독서편지 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춘천소년원 강아무개 학생 편지다. 그는 재단 추천 도서인 천종호 판사의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를 읽으며 느낀 생각을 적어 나갔다. 한 번의 선처를 받고도 재범을 저지른 자신의 환경과 주변의 비행 청소년들의 문제점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후회와 반성을 거듭하면서 “자랑스럽고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담았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사옥에서 열린 전국 청소년 독서편지 공모사업 ‘책갈피: 책 속에서 나를 찾다’ 시상식에서는 강군 등 44명이 상을 받았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책갈피 공모전은 일반 독후감과 달리 독서편지로 진행되는 것이 특색이다. 책을 읽은 뒤 떠올랐던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고픈 친구나 가족, 저자, 책 속의 인물 등에게 편지 형태로 작성하는 방식이다.

이번 독서편지에는 일반 중고생은 물론 학교 밖과 소년원의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했다. 수상자 44명 중 26명이 소년원 재소자인데, 아픈 사연이 더 많기에 감동도 더 크게 울렸다. 교보재단은 참여 기회가 소외되는 청소년이 없도록 전국 10개 소년원에 약 720여권 규모의 주제 도서를 기증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항상 아버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셨나요? 우리 가족이 다 힘들었을 때 아버지 혼자 고민하시고 판단하셔서 내린 결론이 폭력이었나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왜 그러셨는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제가 이야기하면 핑계라고 더 때리시며 혼내셨던 아버지가 솔직히 저는 아직도 정말 밉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대구소년원 박아무개, ‘아버지, 한 번쯤은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셨으면 안 되었나요?’)

소년원 청소년들 편지의 주제는 아버지가 많았다. 아이들이 흔들릴 때 붙잡을 기둥이 약했다는 판단이 나온다. 이들도 결국은 부모와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간절한, 깊은 마음속을 드러냈다.

“이 책에는 저처럼 소년재판을 받는 아이들의 얘기가 많이 나와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 내의 폭력이나 무관심, 부모님의 방치 때문에 거리에서 방황하다 재판을 받으러 온다고 적혀 있는 걸 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엇나갔던 걸까, 아무도 나를 밖으로 내몰지 않았고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셨는데 나는 뭘 그렇게 힘들게 여긴 걸까. 생각하고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답을 찾은 것 같아요. 늘 아니라고,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버지가 안 계셨던 게 저한테도 어머니께도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걸요. 저는 엄마가 제게 주신 기대나 바람이 그저 너무 크고 답답한 거라고만 생각했었지 한 번도 엄마 입장에선 그만큼 절 믿고 의지하셨던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이 책을 읽을 때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머니’로 읽혔어요. 그만큼 엄마는 저에겐 어머니인 동시에 아버지 같은 분이셨고 늘 엇나가는 저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안고 가는 강한 분이어서요.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는 그 사명 하나로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도 못 하고, 아파도 아프다 말씀도 못 하시고,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뭔가를 시도해보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글을 읽고, 얼마 전에 엄마는 사회복지사가 꿈이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떠올랐어요.”(청주소년원 최아무개, ‘나의 아버지인 어머니께’)

이날 공모전 주제 도서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의 저자 천종호 판사의 초청강연도 열렸다. 비행 청소년의 대부이자 ‘호통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부산지방법원)는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려운 시기를 견디어줘서 고맙다”며 “주변에 청소년의 성장을 지지하는 좋은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는 따뜻한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2012년 소년부 판사가 된 이후 열악한 비행 청소년들의 처지에 눈감을 수 없어 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천 판사는 법정에서 비행 청소년들에게 애정을 갖고 지도하거나 호통을 쳐 ‘비행 청소년의 대부’, ‘호통판사’로 잘 알려졌다.

행사를 주최한 교보재단 선종학 이사장은 “독후감은 책을 통해 얻은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 글이기에 그 방향성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독서편지는 다르다”며 “편지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여 쓰는 글이기에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하나의 ‘나눔’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재단은 청소년들이 좋은 책을 통해 성장하고 깨달음을 나눌 수 있도록 플랫폼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