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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그뒤 20년] 386세대 500명 설문조사
<한겨레>는 1987년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당시 청년기를 보낸 만 35~45살의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61~71년생인 이들은 대학을 다녔다면 80~90학번에 해당해 386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22~23일 이틀동안 전화면접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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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혼란과 갈등의 내용은 달라 보인다. 87년의 한국사회에 대해선 ‘독재’가 두번째로 많이 떠오른 열쇳말인 반면, 현재는 ‘불평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유는 신장됐으되 평등은 후퇴했다는 인식인 것이다. 달리 말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질적인 민주주의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로 풀이할 수도 있다.
한편, 87년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33.8%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을 꼽았고, 이어 6·10 민주항쟁(18.4%), 6·29 선언(16.2%), 대통령선거(13.4%), 이한열씨 사망(9.6%), 노동조합운동(2.8%) 차례였다. 도도했던 민주화 운동의 추억은 다수의 기억 속에 아직도 여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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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재의 관심사(복수응답)로는 압도적 다수인 72.0%가 직장, 노후, 부동산, 재테크 등 경제문제를, 43.8%가 자녀교육, 건강 등 개인문제를 꼽았다. 정치 안정, 대통령 선거 등 정치문제를 관심사로 든 이는 15.4%에 그쳤다.
이는 87년 당시의 20대 청년들이 어느덧 경제활동의 주축이자 한 가족의 가장인 40대로 성장한 상황을 반영하기도 한다. 회사원 김상수(41)씨는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진 대신 경쟁이 치열해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며 “가정에 돌아가도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교육, 내집 마련 등 신경 쓸 일이 많아 민주화나 정치 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 하락은 투표율 하락과도 맥을 같이 한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89.2%였던 투표율은 2002년 70.8%로 급격히 떨어졌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이를 두고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무능과 무책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87년 민주화운동 헛되지 않다’ 80% 이상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1987년 6월 항쟁과 이를 주도한 민주화 세력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87년 6월 항쟁이 한국사회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28.6%가 ‘매우 그렇다’, 53.4%가 ‘그렇다’고 답했다. 80%를 넘는 압도적 비율로 긍정적인 답이 나온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당시 6월 항쟁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를 통해 얻은 성과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87년 민주화 세력이 이후 한국사회 변화에 기여했느냐는 질문에도 84.6%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매우 기여했다’ 12.0%, ‘기여했다’ 72.6%). 지지정당별로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의 87.3%, 한나라당 지지자의 83.0%, 민주노동당 지지자의 92.5%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선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고른 평가가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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