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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2 18:23 수정 : 2005.01.02 18:23

타이 피피섬에서 숨진 주검들이 모아지고 있는 끄라비 전통장례식장 들머리에 마련된 게시판 앞에서 1일 각 나라에서 몰려든 실종자 가족들이 사망자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다. 끄라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남아시아 대재앙 ‥타이 끄라비 주검안치소

주검의 얼굴들은 마지막 순간의 공포를 말해 준다. 바닷물 속에서 숨이 멎기까지 4~5분 동안 그들이 느꼈을 절박함이 선연했다. 끝까지 삶을 놓을 수 없었던 그들의 팔들은 여전히 허공을 부여잡고 있었다.

새해 첫날, 타이 끄라비 사체안치소에도 어김없이 해가 떴다. 죽음의 냄새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코를 아프게 찔렀다.

딸과 손주를 잃은 이아무개씨의 하루도 시작됐다. 안치소에 도착한 이씨의 발걸음은 밤새 들어온 주검 앞으로 향했다. 딸과 손자를 찾아 헤맨 지 엿새, 발가벗고 부패한 주검들 앞에서 그 어떤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어 보였다.

“우리 딸 머리카락 길이가 이 정도인데….” 그는 한 주검의 옷가지를 유심히 살펴봤다. 심하게 상한 이 주검은 얼굴이 없었다. 익사한 사람은 얼굴과 목부터 부패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6일 아름답던 피피섬의 파도에 사라진 그의 어여쁜 딸은 이날로 39살이 됐다. 작은 손자는 이제 12살이다.

“52번 좀 꺼내주세요 ” 통곡의 사체순례

500구 대부분 부패 심해 얼굴없는 주검

“아직 아까운 나이지, 한창때인데.” 딸의 ‘마지막 효도’는 아버지에게 빨리 발견되는 것인 것 같았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위와 큰 손자는 푸껫 시내 병원에 입원중이다.

1일까지 이곳에 도착한 주검만 500여구. 현지 수색팀이 섬에서 실어온 주검들은 모두 안치소에서 4단계의 검사를 거쳤다.

먼저 검시팀이 주검의 옷가지와 유류품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으면 법치팀이 주검의 신체 특징과 치열을 기록한다. 다음에 조직채취팀이 흉부를 절개해 늑골 조직을 채취하면, 마지막으로 지문팀이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채취한다.

사태 초기인 27일과 28일께 도착한 200여구의 주검들은 안치소 한쪽에 있는 4개의 냉동 컨테이너에 보관됐지만 나머지 300여구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지만, 가족들은 쉬지 않고 주검이 놓인 곳과 근처에 놓인 20대의 컴퓨터를 오갔다. 컴퓨터 속에는 이곳에 도착한 모든 주검의 사진이 담겨 있다.

“52번 좀 꺼내 주세요….” 오후 5시께 컴퓨터를 보던 임아무개씨가 이렇게 말했다. 피피섬에서 사라진 아내 김아무개(44)씨와 비슷한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52번은 초기에 도착해 가족들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주검 중 하나였다.

냉장고에 있는 주검이 든 망자낭을 열자 허연 구더기가 한 말이나 쏟아졌다. 비닐을 헤쳐본 뒤 확인한 주검은 애타게 찾던 바로 그의 아내였다. 얼굴을 확인한 임씨는 그만 시체 물이 흥건한 바닥에 쪼그려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낙은 법의관이 “당장 부인을 데려가겠다”는 임씨를 위로하며 가까스로 달랬다. 대구 지하철, 삼풍백화점 사건 등에서 신원확인 작업을 지휘한 베테랑인 그는 지난달 31일부터 이곳에서 신원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일단 타이 감식팀이 남편분께서 갖고 오신 치과 사진하고 동일인임을 확인한 다음 전에 찍어놓은 지문을 한국에서 갖고 온 주민등록 자료랑 맞춰봐야 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파견된 법의관 2명은 타이 감식팀과 함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살펴보고 있다. 경찰청 지문감식반에서 파견된 수사관 2명은 타이 쪽이 확보한 지문정보 접근에 애를 먹고 있다. 타이 정부는 한국, 스웨덴, 독일 등 각국에서 쇄도하는 신체정보 접근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태다.

“시체 감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남아 계신 가족들의 두려움을 달래드리는 것입니다. 기자님도 좀 도와주세요.” 정 법의관은 말했다. “끝까지 시체를 확인하지 못하신 유가족에게는 대구지하철 사건 때처럼 사망인정서를 발급해 드리려 합니다.”

1일 끄라비에서는 김씨말고도 친구와 함께 왔다가 바다에 쓸려간 지아무개(24)씨의 주검이 확인됐다. 이제 남은 한국인 실종자는 8명. 타이 정부는 주검들의 유전자 확인에 최소 한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주검이 날마다 수백구씩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그 시간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밤이 깊어지면서 망자들을 위로하듯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은 가족들도 터벅터벅 지친 발길을 돌렸다.

“어이구 우리 딸, 우리 손주 어디서 이 비를 맞고 있을까….” 아버지 이씨는 딸과 손주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한가닥 희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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