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도브 ‘진짜미인’광고에 실린 정치적 함의와 마케팅
바야흐로 ‘얼짱’과 ‘몸짱’이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두의 선망대상이 된 외모지상주의(Lookism) 시대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세태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냉혹하다. 날씬함을 경쟁하던 여성들의 몸매는 이제 건강한 날씬함을 넘어 ‘바비인형’ 이라는, 인간에게 적용되기 어려운 새로운 기준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만 외모지상주의에 젖어 있지 않다. 영국 여성들은 20%만이 자신들이 매력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8~13살까지의 영국 소녀들중 4분의 3은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싶어한다.
세계적 생활용품 회사가 자사의 비누광고에 96살 할머니를 모델로 등장시켜 소비자에게 물으며 세계적 화제거리이자 논쟁거리를 만들었다. “쭈글쭈글한가?” “멋지게 아름다운가?” 획일적 아름다움을 향한 맹목적 추구에 맞서 다양한 가치를 전파하기 위한 도전인가?
베네통처럼 지배적 가치에 대한 전복을 통해 논쟁을 불러일으키려는 상업마케팅의 치밀한 전략인가? 96살 할머니 모델 기용으로 미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도브의 ‘진짜 미인’ 마케팅을 분석해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모든 여성은 아름다울 수 있는가? 그렇다 vs 아니다
“미인은 너무 오랫동안 편협하고 딱딱하게 규정되어 왔다. 이제는 바뀌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짜 미인은 나이대와 크기, 모습에서 다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우리가 ’진짜 미인을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real beauty)’을 시작한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의 참여를 바란다.”( www.campaignforrealbeauty.com )
영국에 사는 96살의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세계적인 생활용품 회사인 도브 비누의 간판 모델로 나섰다. ‘예쁘고, 날씬하고, 세련되어야만’ 화장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깬 화제인물인 까닭에 연초에 전세계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주인공은 런던 북부 스토크 뉴잉튼의 한 양로원에 살고 있는 올해 96살의 아이린 싱클레어 할머니. 최근 도브 비누의 ‘새 얼굴’로 선택된 그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21m짜리 옥외광고물에 어깨를 훤히 드러낸 채 스카프를 쓰고 미소를 지으며, “나이든 것이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회가 받아들일까요?”라고 도발적 질문을 던진다. 소비자는 ‘진짜 미인을 위한 캠페인 사이트’(campaignforrealbeauty.com)에서 싱클레어의 광고를 보고 “쭈글쭈글하다(wrinkles)” 또는 “멋지다(gorgeous)” 가운데 선택을 하도록 요구받는다. 하지만 거부감은 없다. ‘자신과 같은 평범한 진짜(?)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여성들은 ‘환호’한다. ‘도브’로 잘 알려진 다국적기업 유니레버가 노린 것 역시 이러한 ‘동질감’이었다. 이 때문인지 2003년 28만개 매출에 그쳤던 퍼밍크림(Dove Firming)은 2004년 샤워젤과 바디젤까지 라인을 확대하고 상반기에만 무려 230만개라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3년 도브는‘진짜 미인’ 광고 덕에 700%의 판매신장을 기록하면서 서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미용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싱클레어 “젊은 시절 한번도 아름답다는 말 못들었다”
8~13살 영국소녀 97% “늙은 여자는 아름다울 수 없다”
양로원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던 90대 노인 싱클레어가 도버의 마케팅 도구가 되는 것에 동의한 것은 이 회사가 ‘진짜’ 여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모델은 ‘젊고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 타파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도브가 진짜 여성을 소재로 광고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은 모회사인 유니레버가 최근 10개국 소비자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기폭제가 됐다. 여성 10명 중 1명꼴로 기존 광고에서 제시하는 미의 기준이 비현실적이라고 답한 것이 계기였다. 또 56%의 여성들이 화장품 광고를 하는 모델들이 그들 자신과 몸매가 비슷한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 것에 착안했다. 이 조사에서 8~13세 소녀들 가운데 97%가 ‘늙은 여자는 아름다울 수 없다’고 답했고, 73%는 ‘미인은 날씬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도브 광고를 기획한 오길비앤마더(Ogilvy&Mather)는 이런 조사 결과를 고려해 5명의 ‘진짜’ 여성모델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바비인형’ 모형의 금발 미인과는 거리가 먼 ‘진짜 여자’들이었다. 검은 머리에 빈약한 가슴의 에스더(35), 뚱뚱한 몸매의 타바사(34), 주근깨투성이 레아(22), 회색머리의 멀린(45) 등 완벽하지 못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들 ‘진짜 여성’을 두고 광고는 묻는다. 타바사 로맨(34) 뚱뚱한가(oversized)? 탁월한가(outstanding)?
에스더 포이어(35) 반쯤 채워졌는가?(Half Full) 반쯤 비워졌는가?(Half Empty) 이 ’진짜 미인’ 광고에 등장한 모델 여자들은 모두 건강하고 활기에 넘치고 만족해하고 있다. 싱클레어는 도브의 ‘진짜 미인’ 광고시리즈 중 다섯번째 모델이다. 도브는 ‘늙은 여성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런던 인근의 양로원을 헤집고 다닌 끝에 싱클레어 할머니를 ‘발굴’했다. 도브가 내세운 목표는 아름다움의 고정관념 타파다. 싱클레어 할머니는 “나는 젊은 시절 단 한 번도 아름답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며 “노인들도 기여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되려고 광고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신문의 사설에까지 등장한 광고, 세계적 화제로 성공한 마케팅
“우리는 여성들이 원했던 방식으로 그들과 대화했어요.” 도브의 브랜드 매니저는 ‘진짜 미인’의 성공요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도브는 여성의 45%가 뷰티상품 광고에서 ‘현실적인 이미지를 보고 싶다’고 응답한 것에 착안해 소비자 밀착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여성들의 자존심을 높이고 지갑을 열게 하는 성공적인 광고를 만들었다. 90년대 중반 베네통이나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사가 다양한 인종, 큰 사이즈의 여성을 의류모델로 내세웠던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미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는 화장품 분야에서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한 사례는 도브가 이례적인 것이어서 도브의 마케팅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의 <굿 하우스키핑> 편집자 린제이 니컬슨은 “도브사의 광고는 광고 지면으로부터 광고계의 성배(聖盃)라고 하는 신문사설에 언급되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도브의 성공적 마케팅을 극찬한다. 그렇지만 도브의 ‘진짜 미인’ 마케팅은 화장품업계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할까”라는 질문에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대형스타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국내 화장품업계가 관심을 가질 부분임은 분명해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진짜 미를 말했다” vs “노인까지 상품화했다”
‘96살 할머니’를 모델로 기용한 도브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업계는 논쟁중이다. “소비자들조차 감히 말하지 않던, 있는 그대로의 진짜 미를 말했다”는 찬사에서, “노인까지 상품화했다”는 비난까지 반응은 극과 극이다. 한국에서도 박경림, 노사연, 김미화씨 등이 화장품 모델이 된 적이 있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니레버코리아 홍보팀 김희정씨는 “영국에서 진행되는 ‘진짜 미인’광고는 도브 브랜드에 대한 전세계적 캠페인이지만 한국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유니레버코리아는 지금까지 샴푸와 바디샤워 분야에서 20~30대의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소비자모델을 활용해 왔고,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며 ‘진짜 미인’ 캠페인과 별도로 소비자 모델을 적극 활용할 뜻을 내비쳤다. 일반인을 모델로 한 ‘삼성생명’ 이미지 광고를 기획했던 김시래 제일기획 광고5팀 국장은 “‘도브’처럼 브랜드 인지도가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는 빅모델을 활용하는 것보다는 실제 사용하는 일반인들을 활용하는 것이 광고효과가 더 높다”며 “‘real beauty’ 캠페인 역시 ‘도브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며, 96세 할머니를 모델로 활용했다는 것은 신뢰성 외에 ‘충격’ 효과를 줘 효과가 더욱 극대화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외모차별주의자가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은 대접을 받는 그 날이 오길”
도브의 광고는 상품에 대한 광고효과를 넘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자극하고 있다. 지난 9일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리즈 호가드는 “왜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가”라는 글을 실어 도브의 ‘진짜 미인 캠페인’에 대한 의미를 짚었다. 도브의 ‘진짜 미인’ 광고를 제작한 오길비앤마더사의 대릴 필딩은 “상업적 효과로 이어진 광고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번 광고를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고 털어놓았다. 필딩은 “우리는 단지 외모산업이 좀더 현실적이 되기를 바랐을 뿐”이라며 “키크고 날씬한 금발의 젊은 여성만을 유일한 미인 모델로 삼는 세태가 가속화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딸들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 않았을 따름”이라고 광고 제작동기를 밝혔다. <굿 하우스키핑>의 린제이 니컬슨은 “도브의 광고 이미지들은 놀라운 에너지를 주지만, 이것이 나이 차별이나 잘못된 식습관을 고칠 수는 없다”며 이는 “단지 광고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브의 ‘진짜 미인’는 아름다움과 차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자극한다. <가디언>의 호가드가 매리라는 여성의 말로 그 희망을 전달한다. “나는 ‘진짜 미인’ 광고가 실제적인 정치적 운동으로 전환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나는 누군가 ‘외모에 맞서는 그룹’(looks pressure group)을 시작하기를 희망한다. 언젠가는 외모차별주의자(lookist)가 지금 인종차별주의자처럼 비난받는 날이 올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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