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인 이옥금, 황금주, 지돌이, 배춘희, 이옥선 할머니가 12일 고 김분선 할머니 영정을 들고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 제640차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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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40%가 이미 작고… 나머지도 대부분 80대
“일 국왕 환영” 소식에 발동동… “사과도 안하는데”
“지난해에는 한두 달에 한 사람씩 세상을 뜨더니, 올해는 해 바뀐지 열흘만에 두 할매가 세상을 떴어. 배상은 커녕 사죄도 못받고 남은 위안부 피해자들 마저 다 죽게 생겼는데, 우리 정부는 한일 우호에만 정신을 팔고 있으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3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일본 천황이 방한하면 최고의 예우로 환영하고, 처리할 문제는 처리할 문제대로 병행해 가겠다”는 뜻을 밝히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주(86) 할머니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2일과 10일 연이어 위안부 피해자 김상희(84) 할머니와 김분선(83) 할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조급해진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황 할머니는 “해방 60년이 되도록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죄 한 마디 않는 일본 국왕을 어떻게 ‘최고의 예우’로 맞이할 수가 있느냐”며 허탈해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배상 한번 제대로 요구하지 않는 한국 정부도 혹시 우리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 죽어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사라지길 바라고 있는 게 아니냐”며 ‘마음에 없는’ 쓴 소리를 쏟아냈다. 올해 아흔두살이 된 위안부 피해자 이옥금 할머니도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우리정부가 나서 나 귀신 되기 전에 일본 정부한테 사죄라도 받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 등록한 215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이미 88명의 할머니가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또 남아있는 127명의 피해 할머니들 대부분은 여든을 넘어섰고, 아흔살이 넘은 할머니도 3명이나 된다. 병원 치료에 의존해 목숨을 이어가는 할머니들도 10여명이다.
아무도 이들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개인적’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혔을 뿐 일본 정부는 ‘공식적인’ 사죄를 하지 않았다. 배상문제 역시 민간 차원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으로 일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 뒤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인 어느 누구도 일본 정부를 향해 강력히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과거사가 양국 우호협력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심지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이 지난해부터 국제기구의 권고에 따라 일본 정부가 사죄와 법적 배상을 하도록 촉구하는 ‘국제연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며 한국 국회의원 전원에게 서명을 부탁했지만, 현재까지 서명한 국회의원은 15명에 지나지 않는다. 윤미향 정대협 사무총장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과거사 정리 문제에 대해서는 새 역사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할 문제라고 언급하면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왜 이토록 자세를 낮춰야 하느냐”며 “일본군 만행의 피해자이자 증언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 정부는 일본정부와 일본 국왕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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