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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31 20:03 수정 : 2009.05.31 20:52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참여한 50만 인파가 가슴에 품은 슬픔을 내려놓기도 전인 5월30일 새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 등에선 울분에 찬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대한문 앞에서는 경찰의 시민분향소 철거 과정에서 내팽개쳐진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한 시민이 수습하며 울먹이고 있다,

주말 새벽 곤봉 든 경찰
분향소 때려부수고
시민 72명 무더기 연행

만 하루가 지났는데도 김아무개(52)씨는 31일 여전히 울먹이고 있었다.

5월30일 오전 5시30분. 느닷없는 ‘기습’이었다. 이레 동안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자원봉사를 마친 시민 7명은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텐트에서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다. 김씨는 “갑작스런 함성에 놀라 깨어보니 곤봉을 든 경찰 300여명이 분향소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고 말했다. ‘천막을 철거하라’는 안내방송도,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연행하겠다’는 경고방송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자원봉사자들의 울먹임에도 아랑곳 않고 경찰이 분향소 천막 기둥을 후려쳐 앉히고 제단을 뒤엎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몽둥이질에 제단 위에 놓였던 수박·배 등이 깨졌고, 영정을 모셨던 촛대와 화환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마저 아수라장이 된 분향소 바닥을 뒹굴었다. 김씨는 “영정이 밟히는 것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어 꼭 껴안아 지켰다”며 “사람이 아무리 싫다 해도 이럴 순 없다”고 오열했다.

서울광장을 지키던 사람들이 강제로 연행되고 있다
31일 오후, 김씨는 철거된 분향소 옆에 긴급 복구된 ‘임시 분향소’를 떠나지 않고 있다. 김씨와 함께 현장을 지켰던 김창건(43)씨도 “분향소를 없애면 추모 열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길 건너 서울광장에서는 ‘차단 작전’이 진행됐다. 경찰들은 밤새 광장을 지키던 시민들을 몰아내고, 경찰버스로 ‘차벽’을 쌓았다. 시민 세 사람이 거세게 항의하다 강제연행됐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추모 열기를 잠재우려는 정부의 무리수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장 하루 만에 서울광장은 다시 닫혔고, 분향소는 철거됐다.

지난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5·30 범국민대회’에 참여하려던 시민 3천여명은 경찰의 봉쇄에 막혀 대한문 앞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일부 시민들은 태평로·소공로·무교로 등에서 서울광장으로 향하려다 경찰과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물병을 던지고, 각목 등으로 경찰버스를 두들겼다. 경찰은 강경진압으로 맞서 30일 하루에만 72명을 무더기 연행했다.

31일 오후 차벽에 다시 가로막힌 서울광장은 인적이 끊긴 채 ‘닫힌’ 광장이 돼버렸다
31일 임시분향소에 나온 직장인 김정순(39)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도 아니지만, 정부가 국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막고, 부수기만 해서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미경 사무총장 등 민주당 의원 3명은 이날 서울경찰청을 방문해 분향소 철거 등에 항의했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서울광장 폐쇄 작업 중에 실수가 있었다”며 “분향소를 정동로터리 쪽으로 옮겨주면 추모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노 대통령의 서거가 갖는 메시지는 화해와 통합이었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소통”이라며 “고인의 유지와 시민들의 요구를 저버리는 권위주의적 통치는 장기적으로는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밝혔다.

길윤형 박수진 정유경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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