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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1:37 수정 : 2005.01.17 11:37

서울 법대가 고위층을 상대로 한 고가의 공개강좌를 개설해 '간판' 장사에 나섰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정문모습. \



거액 수강료 받는 서울 법대 최고지도자과정 논란
고위층으로 자격 제한, 그들만의 사교모임인가

서울 법대가 국회의원과 대기업 임원, 군 장성 등 고위층을 상대로 한 공개강좌를 개설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법대는 지난해 9월 최고지도자과정(ALP·Advanced Law Program)을 개설해 최근 1기 과정을 마쳤는데, 이 강좌에 대해 “학연을 미끼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서울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리더들을 위한 교과과정?

이 강좌가 이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특전으로 내세운 조항 때문이다. 서울 법대가 ALP 2기 수강생 모집을 위해 배포한 안내문을 보면 이 과정의 특전으로 ‘서울 법대 총동창회 및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동문 자격 부여’가 제시돼 있다. 대학 정규과정이 아닌 공개강좌를 수료한 수강생에게 정규대학 동창회 동문 자격을 주는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대 총동창회 관계자는 “총장이나 학장이 추천할 경우 이사회 결의를 거쳐 동창회 준회원 자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비서울대 출신 인사들을 겨냥한 유인책으로 보이는데, 가뜩이나 인맥을 중시하는 고위층 사회에 ‘학연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교수노조 관계자는 “서울대 동문 자격을 특전이라고 버젓이 내세운 발상이 의심스럽다”며 “국내 최고의 국립대학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ALP 주임을 맡고 있는 정종섭 교수는 지난 1월5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대학들은 각종 공개강좌를 수료한 수강생들에게도 동문 자격을 준다”며 “동창회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 자체가 학연주의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각 대학이 동창회를 개방적으로 운영하면 동문의 폭이 넓어져 더 이상 어느 특정 대학 동문이라는 게 ‘특전’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라며 “ALP도 시간이 지나 수료생들이 많아지면 서울대 동문 자격이 더 이상 특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렇다면 왜 수강생 모집 안내문에 특전이라고 소개했는가”라는 질문에 “서울대 동창회 모임에 참가해서 소속감도 느끼고 정보도 교환하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그러나 ALP가 요구하는 입학 자격은 이런 설명과는 안 맞는 측면이 있다. ALP는 입학 자격을 국회의원과 정부기관의 3급 이상 공무원, 군 장성, 상장기업·정부투자기관 임원, 언론사 고위 간부, 15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의사·회계사·변리사, 사회단체의 지도자급 인사 등으로 한정했다. 서울대 동창회를 이른바 ‘힘있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만 개방한 것이다. 서울 법대쪽은 “강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강좌 자체가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ALP 교과과정은 △세계화 시대의 국가전략 △국가경영과 현대사법 △한국 경제와 법의 지배 △21세기 한국 사회의 비전과 법 등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다.



수강료 350만원에 자치회비 200만원

ALP에 대한 비난은 거액의 수강료에도 쏟아진다. ALP는 68시간 과정(1주 이틀 강의, 총 6개월)에 수강료만 350만원이다. 한 시간당 수업료가 5만원꼴인 셈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수강생들은 200만원 정도의 자치회비를 내야 하는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 내기도 한다. 서울 법대쪽은 입학 문의를 하는 사람들에게 “(학비로) 약 1천만원 정도 내야 한다고 보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정원이 40명이니까 수강료만 따져도 서울 법대는 6개월 만에 1억4천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자치회비까지 합하면 무려 2억4천만원에 이른다. 서울 법대쪽은 “수강료 중 일부는 국고로 들어가고 일부는 대학 본부에 낸다”며 “나머지는 전액 강좌 진행비용으로 쓰인다”고 밝혔다. 강좌 진행비용은 강사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입학 조건에다 거액의 학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1기 수강생을 보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1명씩 포함됐고, 군 장성과 고위 공무원, 방송사 고위 간부, 병원 원장, 회계사 등이 수강했다. 삼성, 현대, 대우, KT, 두산 등 대기업 임원들도 포함됐다. 수강생의 절반은 부장판·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이었다.

서울 법대쪽은 ALP에 대한 비난에 억울해한다. 정종섭 주임 교수는 “수강료로 따진다면 다른 사립대는 물론 서울대의 다른 공개강좌 중에도 ALP보다 비싼 게 많다”며 “ALP는 외부 초청 강사들이 모두 유명인사여서 강의 만족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기 과정 동안 ALP에서 강의한 외부 강사 중에는 이수성 전 총리,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 황우석 서울대 교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윤증현 금감위원장 등 정·관·학·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강좌운영비, 단과대학 재량껏

서울대 경영대가 마련한 최고경영자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과 공대가 마련한 최고산업전략과정(AIP·Advanced Industrial strategy Program)은 ALP보다 학비가 더 비싸고 역사도 오래됐다. AMP의 경우 한 기당 학비가 수강료 800만원·자치회비 400만∼500만원으로 서울대의 20여개 공개강좌 중 가장 비싸고, AIP도 각각 614만원과 200만∼300만원으로 ALP보다 많다. 경영대와 공대쪽은 “전문가들을 상대로 전문성 있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명했지만, 두 강좌 모두 입학 자격은 기업체 임원과 군 장성, 고위 공무원 등으로 똑같다. 특히 AIP는 다른 강좌에 비해 전문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강좌를 수료한 수강생들을 보면 여·야당 대표 등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판·검사는 물론 경찰서장과 대통령 경호실 고위 간부도 있다.

AMP나 AIP는 물론 다른 유명 사립대의 공개강좌는 그동안 ‘고위층의 사교모임’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수강생들의 자치활동이 골프 모임이나 부부동반 만찬 등 사교모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자치회는 골프와 등산 모임의 회장과 간사를 따로 뽑고 있다.

국립대인 서울대가 이처럼 비난의 대상인 공개강좌를 개설한 것에 대해 대학사회의 시선은 따갑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 각종 선거의 후보자 학력을 ‘정규학력과 이에 준하는 외국의 교육과정 이수’로 제한한 뒤 많은 사립대가 수강생 부족으로 공개강좌를 폐지해야 했다. 사립대들은 서울대가 ‘간판’을 미끼로 공개강좌를 독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서울대는 지난 2003년 국회 국정감사 결과 2000∼2002년 3년 동안 공개강좌로 78억95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장남 홍일씨가 학적을 둔 데 힘입은 경희대(95억3800여만원)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에는 이 순위가 뒤집힌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 2001년 일부 공개강좌에서 수강료를 학교에 신고한 것보다 6배나 더 받는 등 편법으로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대는 지금도 공개강좌의 운영에 대해서는 대학본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공개강좌 수입 중 일부만 떼고 나머지는 강좌 운영비로 되돌려준다”며 “각 단과대학이 강좌 운영비를 어떻게 썼는지 본부에 보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001년 국립대학들이 공개강좌 수입을 임의로 사용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되자 공개강좌 수입의 30%를 국고에 반납하도록 했다. 하지만 서울대 관계자들은 이 규정과 관련해 해당 부서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서울대 재무과는 “공개강좌 수입 중 30%를 국고에 내고 63%는 강좌 운영비로 돌려준다”고 밝혔지만, 공개강좌를 담당하는 학사과 관계자는 “10%를 국고에, 10%는 기성회비에 들어가고 나머지 80%를 공개강좌에 돌려준다”고 밝혀 의문을 자아냈다.



불황에도 2대 1의 경쟁률

서울 법대 최고지도자과정의 ‘서울대 동문 자격’ 특전은 일단 수강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서울 법대 관계자는 “1기 때 경쟁률이 2 대 1쯤 됐었다. 경기불황으로 다른 강좌가 미달 사태가 나는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경쟁률”이라며 “서울대 출신이 아닌 수강생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 동문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서울 법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서울대 동문 자격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까봐 걱정된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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