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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8:32 수정 : 2005.01.17 18:32

2003년 측정때 기준치 넘어
노동부는 보고받고도 11개월 뒤에야 감독관 보내

[4판] 타이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말헥산에 중독된 엘시디 등 부품 제조업체 ㄷ사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에서 2003년 12월과 2004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검사실 노말헥산의 노출농도가 기준치를 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 사실을 안 뒤에도 거의 9개월 동안 노말헥산을 계속 세척제로 사용했으며, 2004년 8월에야 검사실 세척제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꿔 노동자들을 노말헥산 중독 위험에 방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17일 “ㄷ사의 작업장에 대해 2003년 12월1일과 지난해 4월9일 두 차례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 노말헥산 노출농도가 각각 54.26ppm과 59.70ppm으로 모두 기준치(50ppm)를 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당시 작업환경 측정은 ㄷ사가 선정한 오산의 ㅅ병원에서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유해물질인 노말헥산 노출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6개월 안에 측정을 다시 받아야 하며, 해당 작업 노동자의 경우 특수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ㄷ사에서는 이런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해명 과정에서 이런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지난해 8월 노말헥산이 정전기로 인한 화재 위험이 커 친환경 세척제로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세척제를 바꾼 뒤인 지난 11월18일 오산 ㅅ병원이 벌인 하반기 노말헥산 노출 농도 측정에서는 노말헥산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말헥산 중독으로 안산중앙병원에 입원 중인 타이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 12월 일을 그만둘 때까지 검사실에서 세척작업을 위한 보호장비를 전혀 받지 못했고, 흰 가운만 하나 입고 일했다”고 말했다.

노동부 역시 2003년 12월과 2004년 4월 작업환경 측정에서 ㄷ사의 노말헥산 노출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거의 1년이 지난 11월22일에야 노동부 감독관을 ㄷ사에 보내 작업환경과 시설을 개선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2003년 12월의 경우 기준치를 넘었으나, 오차범위를 감안해 기준치 안쪽으로 판단했다”며 “지난해 11월 작업환경과 시설 개선을 지시했을 때는 해당 업체가 중독된 타이 노동자들을 숨겼기 때문에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말헥산 노출정도는 해당 사업장에서 유리로 된 활성탄관을 작업자의 가슴 부분에 달아 주고 8시간 일하게 한 뒤 활성탄관에 붙어있는 오염 인자를 분석해 조사된다. 이 측정 결과는 회사 쪽과 노동부에 함께 통보된다.

한편, 경기 화성경찰서는 이날 ㄷ사 공장장 등 업체 관계자 2명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또 잠적한 ㄷ사 대표 송아무개(53)씨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받아 검거에 나섰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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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는 꿈도 못꾼채 빚더미에 시달려
타이로 돌아갔던 씨리난 등 3명 재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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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치료를 받게 해줘 고맙습니다.”

노말헥산에 중독된 뒤 타이로 돌아갔던 씨리난(37) 로차나(31) 싸라피(31·일명 까따이) 등 여성 노동자 3명은 17일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자신들을 데리러 온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사진)와 한국 정부에 감사의 뜻을 내보였다.

씨리난 등은 수도 방콕에서 짧게는 1시간30분, 길게는 8시간 걸리는 시골에 흩어져 있다가 주타이 한국대사관과 박 목사 일행의 노력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3명 가운데 증세가 가장 심한 사람은 씨리난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현재 여동생 집에서 6살배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씨리난은 용변은 물론 식사까지도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있다. 혼자서는 숟가락 하나도 들기 어려운 상태라고 박 목사 일행은 전했다.

한편 미혼인 싸라피와 로차나는 각각 부모의 집에서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이들 3명은 타이로 귀국한 뒤 모두 한차례씩 병원에 가봤지만, 자신들의 병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몸에 있는 독을 제거하는 민간요법으로 나무를 달여서 먹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 3명은 모두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들에게 큰돈을 주고 입국했지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채 귀국해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빚은 씨리난 510만원, 싸라피 700만원에 이르렀다. 이들이 한국에서 받은 기본급은 8시간 기준으로 46만원 가량이었다.

특히 씨리난의 경우 한국에 들어올 때 여동생에게 돈을 빌렸는데, 이를 갚기는커녕 다시 신세를 지게 됐다고 박 목사는 전했다.

박 목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들에게 사죄했다”며 “이는 한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차별적인 한국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에 더욱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박 목사 일행과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 시골 마을을 나서는 엄마를 쫓아 나오던 씨리난의 딸 깐야납(6)은 타이어로 적은 편지를 박 목사에게 건넸다.

박 목사는 “그 편지에는 ‘우리 엄마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며 “그 글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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