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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0 11:10 수정 : 2005.01.20 11:10

1974년 8월15일 오전 10시23분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이 진행중이던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이 총성소리와 함께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23세의 재일교포 문세광이 연단에서 광복절 기념사를 읽어 내려가던 박정희 대통령 저격에 실패한 뒤 곧바로 발사한 권총 탄환에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희생되는 순간이었다.

10시부터 시작된 기념식에는 정부 주요 인사 등 수 백명의 청중들이 참석, 박 대통령의 기념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순간이었다.

위조여권을 이용해 국내에 들어와 기념식장까지 잠입한 문세광은 극장 뒷좌석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앉은 채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38구경(스미스 웨슨)을 꺼내려 했다.

그러나 문세광은 긴장한 탓인지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총탄 1발이 오발돼 자신의 대퇴부를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는다.

문세광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좌석사이의 통로로 나와 권총을 겨누며 다친 다리를 이끌고 연단을 향해 돌진했다.

문세광은 연단을 향해 두번째 총탄을 발사했지만 총탄은 박 대통령이 기념사를 읽던 연설대 왼쪽 편에 맞았고 박 대통령은 연설대 뒤편에 몸을 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 채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 고 연단 귀빈석에 앉았던 대부분의 인사들도 혼비백산해 머리를 숙인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귀빈석에 앉아 있던 박종규 경호실장이 권총을 빼내 어두운 관객석을 향해 겨냥했지만 문세광은 불발탄이 된 3탄에 이어 네번째 총탄을 발사, 귀빈석에 앉아있던 육 여사의 우측 머리를 명중시켰다.

문세광은 이어 한 참석자가 발을 걸어 넘어지면서도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지만 5탄은 연단뒤에 게양된 태극기를 향했다. 1탄이 발사된 후 이 모든 과정이 불과 수 초내에 이뤄졌다.

문세광은 그때서야 좌석 맨 앞쪽에 앉아 있던 경찰관 등이 덮처 체포됐고 머리에 중상을 입은 육 여사는 인근 서울대학병원으로 후송돼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이날 밤 7시 결국 서거했다.

앞서 문세광은 오전 8시께 '거물'로 가장, 검문검색을 수월히 피하기 위해 호텔 도어맨에게 부탁해 빌린 포드 20M 검정색 승용차를 타고 투숙했던 조선호텔을 나섰다.

문세광이 탄 차량은 입장이 허가된 비표도 없었음에도 극장 입구를 무사히 통과했고 문세광은 기념식장에 들어서면서도 검문을 받았지만 일본어를 구사하며 VIP로 행세,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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