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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1 13:42 수정 : 2019.12.31 13:54

2019년의 마지막 날, 칼바람이 붑니다.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여전히 길 위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강남역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 광화문 세종로소공원에서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 외치고 있는 고 문중원 기수의 가족들, 영남대 의료원 옥상에서 투쟁 중인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까지. 지금 이 시각에도 그들은 투쟁 중입니다. 대부분 처절하지만 가끔 웃음꽃이 피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도 있지요. 올 한해 ‘함께’라서 가능했던 그들의 투쟁 현장을 소개합니다. 2020년에도 당신의 투쟁을 응원하며 함께하겠습니다.

2019년11월19일 제주도 학생문화원, 산업재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_2019.11.19 제주도 학생문화원, 민호 떠난 지 2년 되는 날

일하러 출근한 아들이, 혹은 딸이 혹은 동생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것이 노동자가 아닌 기업의 잘못이었으며, 사회의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은 가족들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에게 더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유가족들은 ‘다시는’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다. 비슷한 사고 소식을 들으면 누구보다 먼저 장례식장을 찾아가 유가족을 도왔다.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난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를 당한 고 김용균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듯이 그들은 ‘다시는’ 산업재해로 떠나는 청춘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연대하며 싸울 것이다.

2019년1월7일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농성장 앞. 노동자 차광호와 노동자 김정욱

_2019.01.07 서울 양천구 목동 스타플렉스 농성장 앞

시린 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는 날이었다. 2019년 1월 7일 스타플렉스(파인텍) 노동자 박준호와 홍기탁은 422일째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서 투쟁중이었다. 29일째 곡기를 끊은 차광호 지회장은 75미터 굴뚝 위 두 동료의 단식 선언에 눈물을 흘렸다. 마이크를 잡은 차 지회장의 눈에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씨가 조용히 다가와 그의 등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등 뒤에서 그를 감쌌다. 그가 전했던 것은 비단 온기만이 아니었으리라. 그것은 함께 하겠다는 목소리였으며, 힘내라는 응원이었으며, 그 또한 싸워왔기에 건넬 수 있는 위로였다.

2019년1월27일 서울 광화문광장 여섯번째 고 김용균 추모제, 어머니 김미숙과 어머니 김시녀

_2019.01.27 서울 광화문광장 여섯번째 고 김용균 추모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49일이 되면 그 영혼까지 온전히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차디찬 공장에서 홀로 스러져간 아들을 어머니는 아직 떠나 보낼수가 없다. 아들이 떠난지 49일째. 슬픔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주체하지 못할 한이 되었다. 차가운 광장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김미숙씨 옆으로 김시녀씨가 다가와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았다. 삼성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건강을 잃은 한혜경씨의 어머니. 길고 긴 시간을 싸워 거대한 대기업의 사과를 받아낸 여린 승리자. 김미숙씨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서럽게 울었다.

2019년5월17일 광주 망월동 5.18묘역, 오월의 어머니들

_2019.05.17 광주 망월동 묘역

하얀 소복의 곡선이 굽어진 그들의 등허리를 타고 굴곡진 곡선을 내보인다. 어쩌면, 29년 전 먼저 보낸 그들의 가족보다 더 많은 세월을 함께 한 오월의 어머니들은 만나면 서로 안아주고, 손을 잡으며 인사한다. 아니 위로한다. 금남로에서 5.18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라며 망언을 쏟아내던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봤다면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 또다시 찾아올 5월, 망월묘역 앞 나무들 위로 하얀 꽃잎들이 봄바람에 쏟아질 무렵이면 이들은 또 하얀 소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 이곳을 찾을 것이다.

2019년8월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세계위안부기림일 행사

_2019.08.14 노란나비들이 모인 일본대사관 앞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세계위안부기림일 행사를 위해 모인 시민들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는 가득 찼다. 김복동 할머니가 떠난 뒤 맞은 첫 기림일, 하늘에서 할머니가 보시기에도 흡족하실 만큼 “일본은 공식사죄하라”는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좋으련만 야속한 태양은 제 일에 충실하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씨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손부채질을 해준다. 마치 살아생전 김복동 할머니가 수요시위를 찾은 학생들에게 해주시던 자상한 모습과 꼭 닮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며 시민들은 또 한 번 과거를 잊지 않았음을 증명해낸다.

2019년11월5일 서울 을지로5가 길거리, 노동자 이연주와 노동자 반효정

_2019.11.05 차들이 쌩쌩 달리는 을지로 5가 언저리

그들 생애 첫 오체투지였다. 어찌 하는 줄 몰라 출발 전 삼삼오오 모여 연습을 했다. 기독교회관을 출발해 30여분을 걷다 바닥에 엎드렸다 하니 찬바람이 무색하게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이연주씨(왼쪽)가 자신의 옆자리 반효정씨(오른쪽)의 무릎보호대를 살펴본다. 그들 주변에서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떠다닌다. “꼭 이기실 거에요”라는 기자의 말에 “우리는 이미 이겼어요”라고 답했다.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368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이 확정됐지만 도로공사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들만 직접 고용하고 원래 하던 요금수납 업무가 아닌 현장 조무 직무를 맡기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강래 사장은 사장직에서 퇴임한 뒤 총선 출마를 발표했다. 매연 가득한 고속도로 위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날 처음으로 회색빛 아스팔트에 온몸을 엎드렸다. 그 옆에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동료가 있기에, 땅을 짚고 일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동료의 뒷모습이 있기에 그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9년11월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 전교조 천막농성 앞, 교사 이민숙과 동료교사.

_2019.11.18 세종로소공원 전교조 천막농성 앞

거리에 낙엽이 나뒹군다. 그 낙엽 위로 까만 머리카락, 하얀 머리카락이 툭툭 떨어진다. 해직교사 20여 명은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촉구하며 삭발에 나섰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삭발이 벌써 3번째라 했다. 그들 중 눈에 띄던 조그마한 체구의 이민숙 선생님은 지난 90년도에 역사 선생님으로 발령받아 교단에 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다. 이씨의 머리를 깍아준 동료가 눈물을 흘리며 이씨를 꼭 안았다.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에 내린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정당했는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가려지게 됐다. 지난 19일 첫 기일이 열려 심리가 시작됐다. 그들의 꿈은 단 하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 그 꿈을 위해 해직교사들은 오늘도 길 위에서 싸우고 있다.

2019년12월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어머니

_2019.12.02 태극기 부대의 소음이 가득한 청와대 분수대 앞

“내가 여기서 죽어야 세상이 바뀔까요?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가 죽으면 누가 바꿔요. 우리도 그 생각 안 해봤겠어요”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1주기를 맞아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추모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어머니 김미숙씨는 용균씨 동료들과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청와대 앞에서 용균씨 동료가 말했다. “용균이가 떠난 뒤 공장에는 바뀐 게 없다. 안전장비를 요구했지만 지금 있는 장비들을 다 써야 교체해준다고 했다.” 옆에서 시위를 하고 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가 다가와 김 씨의 손을 잡았다. 임 군은 세월호참사 당시 헬기 이송 지연이 확인되면서 세월호 재수사에 다시 불을 지폈다. 헬기 이송 지연이 확인된 것은 어머니 전씨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온 결과다. 어머니들은 여전히 거리 위에서 아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넘어 서로의 아픔까지 보듬으며 연대의 동지가 되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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