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4 18:52 수정 : 2020.01.04 21:43

4일 열린 ‘마사회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결의대회’에 나온 고 문중원 경마기수 유가족들 모습.

4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앞 결의대회
“한국 경마 무한경쟁 체제가 기수와 말관리사 7명 죽음 내몰아”
“친분 있는 조교사에게만 마방 배정” 김낙순 마사회장 사과 요구

4일 열린 ‘마사회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결의대회’에 나온 고 문중원 경마기수 유가족들 모습.

4일 낮 12시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앞. 지난해 11월29일 한국마사회의 승부조작 등 비리 행태를 고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렛츠런파크 부산경남’(부산경마공원) 기수 문중원(40)씨가 생전 말을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손팻말이 유가족에게 전해졌다. 손팻말에는 ‘정부가 책임져라’,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문중원을 살려내라’ 등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문씨의 아내 오은주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손팻말 위 글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날로 문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지 37일째가 됐고, 서울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지 9일째가 됐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이날 서울경마공원 앞에서 ‘마사회 문중원 열사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결의대회’를 열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한국마사회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제도 개선 등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노조 설명과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무소불위 마사회 권한은 어떻게 활용되는가?’라는 제목의 국회토론회 내용을 종합하면, 문씨가 일했던 부산경마공원에서만 2004년 개장 이후 기수 4명과 말 관리사 3명 등 모두 7명이 목숨을 끊었다. 이 죽음들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한국 경마 시스템부터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마는 마사회가 마주와 경주마 출주 계약을 맺은 뒤 마주가 조교사와 경주마 위탁계약을 맺고, 마사회는 조교사에게 면허를 교부한 뒤 마방(말을 훈련하고 관리하는 공간)을 임대한다. 이후 조교사가 기수, 말관리사와 각각 기승계약과 고용계약을 맺고 마방에서 말을 관리하면서 말을 경주에 출전시키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에서 도입된 무한경쟁체제가 기수와 말관리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국회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서울경마공원의 기수와 말관리사는 기본급을 보장받지만, 부산경마공원은 순전히 순위상금으로만 임금을 주는 방식을 택해 경쟁을 부추겼다”며 “그 결과 부산경마공원은 순위에서 밀려나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계유지가 안 되며, 조교사들의 권위가 더 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수와 말관리사들은 조교사들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기수들과 말관리사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금과 고용이 불안정하니 ‘승부조작’ 등 부당한 요구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달 11일 공공운수노조가 발표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에 참여한 기수 60.3%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숨진 문씨 역시 유서에서 조교사(감독) 등으로부터 “말들의 주행 습성에 맞지 않는 작전을 지시”받거나 “아예 대충 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썼다.

마방의 배정 역시 마사회의 자의적인 기준대로 이뤄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수로 일하다 2015년 조교사 자격증을 딴 문씨는 그러나 4년 넘게 마방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발언에 나선 문씨의 아버지 문군옥씨는 “마사회는 면접 명목을 내세워 면접관과 친목이 있거나 뒷거래한 사람에게만 말을 관리할 수 있는 마방을 내줬다. 5개국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 대신 자격증을 취득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사람을 먼저 채용했다”고 말했다. 실제 문씨의 유서에도 “하루빨리 조교사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준비해서 조교사 면허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도 매번 경매 때마다 내려가서 공부도 하고 여러 마주님들과 친분도 쌓고 그 덕에 마방만 받으면 바로 입사시켜 준다는 약속도 많이 받았다. 그럼 뭐하나…마방을 못 받으면 다 헛일인데.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 주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들한테 먼저 주는 이런 더러운 경우만 생기는데, 그저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으면 안 되니…”라고 썼다.

이 때문에 유가족은 문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김낙순 마사회장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발언에 나선 석병수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장은 “2017년 마필관리사였던 고 박경근 열사가 숨졌을 때는 더불어민주당과 을지로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당시 마사회 사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어서 움직였고, 지금은 민주당 출신 의원이 회장이라서 이렇게 비호하고 가만히 있느냐”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 퇴진을 요구하며 경기도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입구에 건 대형 현수막. ‘근조 마사회 퇴진 김낙순’이라 쓰여있다.

한편, 결의대회 도중 김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노조가 경마공원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이 빚어져 조합원 5명이 경기 과천경찰서로 연행됐다. 이후 노조는 서울경마공원 입구에 ‘근조 마사회 퇴진 김낙순’이 쓰인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민주노총도 오는 8일 비상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고 문중원 열사대책위 결성을 확정할 예정이다.

글·사진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