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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7 16:56 수정 : 2020.01.08 02:13

아리 푸르보요(Ari Purboyo) 인도네시아선원노조 한국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빌딩에서 열린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집담회’에서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선원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어선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아리 푸르보요(Ari Purboyo) 인도네시아선원노조 한국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빌딩에서 열린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집담회’에서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베트남에서 온 이주 어선원 수리토(가명)는 배 위에서 한국인 어선원에게 삽으로 폭행을 당했다. 널빤지에 누워 3시간 쪽잠을 자고 어둑한 새벽부터 일어나 정신없이 그물을 내렸다가 잠깐 휴식을 취하려던 참이었다. “일하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었는데, 못 먹게 하면서 삽으로 등을 때렸어요.”

어업에 종사하기 위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폭행과 욕설 피해, 고질적인 임금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선원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는 7일 서울 종로구 걸스카우트빌딩에서 한국 국적 어선에 타는 이주노동자 81명을 대상으로 한 ‘어선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이주 어선원들은 주로 ‘새X야,’ ‘X발놈’ 등과 같은 욕설로 호명되고 있었다. 특히 3명 가운데 2명이 하루 16시간에 달하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고, 92%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부산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타는 베트남 출신의 이주 어선원 ㄱ은 “많이 먹어도 욕하고 적게 먹어도 욕하고 빨리 먹어도 욕하고 천천히 먹어도 욕한다”고 말했다. 경남에서 갈치잡이 배를 탄다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 어선원 ㄴ은 “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욕을 마음에 담아 뒀다면 방을 몇 개는 채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임금 착취도 여전했다. 2012년 한국어선 ‘오양75호’에서 일하던 이주 어선원들이 폭행과 임금 착취 등을 견디지 못하고 집단 탈출한 사건이 국제적 논란이 된 이후 이주 어선원들의 열악한 노동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임금 관련 조사에 응한 노동자 63명 가운데 43명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ㄱ은 “6~70대 한국 어선원들은 일도 많이 안 하고 다 우리한테 시키는데도 월급이 350만원이고, 한국 조리장은 밥만 하는데도 300만원을 넘는 월급을 받는 반면 나는 조리장 일을 하면서 30만원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한국어선에 취업하기 위해 취업 알선 업체에 막대한 ‘송출 비용’을 지불하는 불법 관행도 여전했다.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 어선원들은 평균 500만원, 베트남 출신은 약 1000만원의 송출 비용으로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땅문서와 학위증 등을 담보로 잡히고 배를 탄 이주 어선원도 있었다. 현행 선원법은 ‘구직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명목으로든 일체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적발이 되더라도 “현지에서 작성한 계약서에 근거한 것”이란 이유로 제대로 된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막대한 송출 비용을 지불하고 한국어선에 취업했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이탈 보증금’을 내야 하고, ‘관리비’를 뜯긴다. ‘이탈 보증금’은 고된 노동과 인권 침해를 견디지 못하고 배를 떠날 것을 미리 우려해 배에서 일하다가 떠날 경우 받지 못하게 되는 돈이다. 조사 결과,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 어선원들은 평균 약 200만원, 베트남 출신은 약 480만원의 이탈 보증금을 납부했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관리비’ 명목으로 갈취를 당한다. 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 어선원은 “매달 4만5000원의 관리비를 계산해 송출 회사에 지불한다.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다시 한국에 갈 수 없고 땅문서를 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숙소가 바지선이나 무인도에 있어 사실상 구금 상태에 처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주 어선원들 가운데는 숙소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바지선이거나 아예 무인도에 배정된 사례도 있었다. 전라도 지역 이주 어선원들의 숙소 실태를 조사한 마리 솔리나 수녀는 “단열과 보온이 안 되고 사회 제반 시설과 완전히 격리된 열악한 숙소를 제공하면서도 ‘너희 나라 호텔보다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공익법센터 어필 정신영 변호사는 “사실상 합법적 인신매매 과정”이라며 “국제적으로 인신매매는 노동 착취를 목적으로 사기, 기망, 취약한 지위 등을 이용해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한국인들은 더 이상 한국 배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을 하게 될 텐데 지금이라도 어선 이주노동자 노동권 향상을 위한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모집과 고용 알선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화하고 국적에 따른 임금 및 재해 보상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사실상 감금 상태를 금지하는 법 개정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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