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12 09:17 수정 : 2020.01.12 10:05

[토요판] 뉴스분석 왜
알면 쓸 데 있는 ‘업무방해죄의 세계’

업무방해죄, 조국 교수 혐의까지
최근 각종 사건에 광범위하게 적용
‘노동운동 탄압’ 프랑스 형법 모법
‘농상공업→일반 업무’로 영역 확대

채용 비리, 외부청탁자 처벌 어려워
권성동 의원, 청탁 입증 안 돼 무죄
토익 대리시험 등 업무방해 처벌
부교수 승진 심사 때 허위 서류 유죄

▶ 최근 채용 비리와 입시·학사 비리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에서 형법의 업무방해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농상공업에서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법으로 프랑스에서 생겨난 업무방해죄는 일본으로 건너오며 적용 범위가 일반 사회생활로까지 확대됐다. 우리 형법은 이를 모법으로 하고 있다. 업무방해죄의 연혁과 성립 범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판례의 태도를 살펴봤다.

지난달 31일 검찰이 업무방해 등 11가지 죄명을 적용해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가장 눈길을 끈 혐의는 조 교수와 부인 정경심 교수가 201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다니던 아들의 온라인시험 문제를 두차례 대신 풀어줬다는 내용이다. 당시 시험문제로 각각 나온 10개 문항은 모두 객관식이었다. 검찰은 조 교수에게 조지워싱턴대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적용했다.

이를 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온라인 오픈북 시험에 부모가 개입됐다는 의심만으로도 기소한 것은 깜찍하다”고,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조국 전 장관 기소가 전체적으로 희화화됐다”고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재판에 넘겼다는 태도였다.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5호’로 입당한 소방관 출신 오영환씨는 “학부모들의 관행적인 행위들이 지나치게 부풀려 보도됐다”며 ‘관행’으로 묘사했다.

조 교수 아들 사건으로 형법의 업무방해죄가 새삼 입길에 오르고 있다. 최근 검찰의 주요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죄명이다. 조 교수 아들 사건부터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딸의 케이티(KT) 부정 채용 의혹, 그리고 최서원(개명 전 이름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 사건까지 공통되게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그동안 주로 노조 파업 사건에서 ‘회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노조원의 형사처벌 죄명으로 쓰이던 업무방해죄가 사회생활 전반에서 발생하는 공정성 훼손 사건에서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알쏭달쏭한 ‘업무’의 세계

우리 형법의 업무방해죄는 일본 형법을 모법으로 삼고 있다. 이 죄는 1800년대 노동운동을 탄압하려고 고안된 프랑스 형법을 일본의 옛 형법이 이어받았고, 일본이 처벌 영역을 노동운동 바깥으로 확대한 개정안을 우리 형법이 다시 이어받아 제정된 것이다. 실제 일본 형법 제233·234조 내용이 우리 업무방해죄와 거의 같다. 연원은, 농상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임금 인상 등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사용자의 업무를 위계·위력으로 방해할 때 처벌하려고 만든 규정이다. 일본이 형법을 개정할 때 ‘농상공업’을 ‘업무’로 바꾸면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현재 업무방해죄는 우리와 일본 두 나라에만 있다.

형법 제314조(업무방해)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업무방해죄는 위계에 의한 것과 위력에 의한 것으로 나뉜다. 위계란 ‘행위자가 행위 목적을 달성하려고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유·무형의 모든 세력’이다. 폭행·협박, 사회적 지위에 의한 압박도 전부 포함된다.

대법원 판례를 종합해보면, 업무방해죄의 보호법익은 사람이 업무를 하며 벌이는 사회적·경제적 활동이다. 여기서 사람은 자연인뿐만 아니라 회사 등 법인도 해당한다. ‘업무’는 ‘직업 등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근거해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 또는 사업’을 의미한다. 영리 목적이 없는 사무라도 업무성이 인정된다. 업무 집행 자체를 방해하지 않더라도 업무의 공정성, 적정성을 침해하면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아도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으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보면, 허위 인턴활동 증명서 제출 행위가 입시에서 합격자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그 제출 행위만으로 범죄가 성립한다. 또 서류배달업체가 고객으로부터 배달을 의뢰받은 서류의 포장 안에 어떤 사람이 특정 종교를 비방하는 내용의 전단을 집어넣어 함께 배달되게 했다면 서류배달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인정된다.

업무방해죄의 쟁점 중 하나는 과연 업무의 개념을 어디까지로 볼 수 있느냐다. 개인의 권리의식, 평등의식이 커지면서 업무라는 말 자체가 무한정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이 업무방해죄의 업무로 인정된다면 시어머니가 지위를 이용해 소리를 지르거나 집안 분위기를 해쳐 며느리의 집안일을 방해할 경우 위력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학교 수업 중 학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소란을 피워 수업에 지장을 줬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까? 대법원은 “학생이 수업을 듣는 일은 초등교육을 받을 학생의 권리 행사에 불과해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주주총회에서 회사 직원들이 개인 주주의 발언권과 의결권을 제한했다면? 대법원은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의결권 행사는 주식 보유자로서 자격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역시 업무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매매 알선 등 법이 금지하는 행위 역시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폭력조직 간부가 성매매업소 앞에서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해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회생활상 용인될 수 없는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 업무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업무방해죄는 보호법익인 업무와, 위계, 위력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측면이 있어 범죄 대상의 범위와 범죄 성립 여부가 다른 범죄에 비해 다소 불명확한 지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각 개념의 구체성은 대법원 판례로 형성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역시 1998년에 이어 2010년에도 형법 업무방해 조항의 합헌성을 재차 확인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법무부 장관 때인 지난해 10월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조 교수를 기소했다. 과천/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트리거는 처벌받지 않는다?

시중은행, 공기업 등의 채용 비리는 최근 업무방해죄가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사건이다. 채용 비리에 연루된 기업들은 “채용은 기업의 자율적 권한”이라고 항변하지만 사기업이라도 업무의 공정성, 적정성을 침해한 행위가 발생하면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 하지만 ‘외부 청탁자→조직 최고위층→임원→인사 담당자’로 연결되는 채용 비리의 복잡한 구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업무방해죄로 전부 처벌하기 힘든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2017년 9월13일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류승우 판사 심리로 열린 금융감독원의 변호사 특혜 채용 사건 선고공판 법정. 앞서 검찰은 금감원 변호사 채용에서 임아무개 변호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채점 기준을 변경하고 점수를 고친 혐의로 금감원 김수일 전 부원장과 이상구 전 부원장보를 기소했다. 혐의는 업무방해였다. 임 변호사는 최수현 전 금감원장과 행정고시 동기인 전직 국회의원 임영호 의원의 아들이었다. 채용 청탁의 시작점으로 의심되는 임 전 의원과 청탁을 받아 김 부원장 등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최 전 원장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김 부원장과 이 부원장보에게는 각각 징역 1년,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류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판결문에는 담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사실 끝까지 찝찝한 부분이 있다. 피고인들은 범행에 의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사건의 트리거(방아쇠)는 따로 있고 그 트리거가 있었기에 촉발됐다. 그런데도 트리거는 처벌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다른 채용 비리 사건에서도 최초 방아쇠를 당긴 채용 청탁자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다. 검찰이 2018년 6월 시중은행 6곳의 채용 비리를 수사한 결과 전체 695건 중 367건(53%)이 외부 청탁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해당 은행장과 인사 담당자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지만 정작 외부 청탁자는 여기에 포함하지 못했다. 외부 청탁자의 청탁은 은행 최고위층과 사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데다 특정인을 뽑으라는 명시적 표현을 직접 입증하기 어려운 탓이다. “신경 써달라” “챙겨달라”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건넸다고 하면 채용 청탁을 한 것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업무방해 혐의를 1심 재판부가 무죄 선고한 이유도 “권 의원이 직접 청탁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였다.

2017년 시중은행 채용 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한 검사는 “채용 비리 사건에서 놓치는 핵심이 하나 있다. 바로 외부 청탁자는 처벌받지 않고 대체로 조직의 인사 담당자만 구속되고 기소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입시·학사 비리로 최서원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2017년 6월 선고공판에서 “노력과 능력에 따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사회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리게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계단에 앉아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른 수강생의 배신감

입시·학사 비리도 업무방해죄로 처벌되는 단골 사건이다. 대학생 아들의 온라인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줬다는 혐의로 기소된 조국 서울대 교수 부부의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여서 과거 판례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검색되지 않는다. 다만 검찰의 기소대로 기본 뼈대를, 점수를 매기는 평가자를 속여 평가업무의 공정성, 적정성을 방해했다고 본다면 참고할 만한 판례가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공인영어시험 토익(TOEIC) 대리시험 행위다. 신분증을 위조해 시험장에 대신 나가거나, 휴대전화 ‘문자-음성 변환’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답을 전송해주는 방식으로 토익을 대리로 치른 사건에서 법원은 “공인영어시험의 공정한 절차 진행과 평가가 훼손됐고 신뢰가 저하됐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시험을 준비하는 대다수 수험생에게 좌절감과 박탈감을 줬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조 교수의 업무방해 혐의 내용은 아들 대리시험 외에도 많다. 아들이 고3 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허위로 발급받은 ‘활동 예정 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해 이 증명서가 진짜인 줄 안 담임교사가 출석 처리를 함으로써 학생 출결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 허위로 발급받은 인턴십 활동증명서와 장학증명서를 아들의 대학원 입시에 제출해 이에 속은 대학원 입학담당자들의 입학사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이상 검찰 공소장 내용) 등이다.

거짓 증명서 제출 사례와는 다르지만 ‘허위 연구실적’으로 학교의 일반 업무를 방해한 판례를 보면, 2009년 다른 사람이 작성한 논문을 본인 논문인 것처럼 학술지에 제출해 발표된 논문연구 실적을 부교수 승진심사 서류로 학교에 제출했다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부교수 승진심사 업무의 적정성이나 공정성을 해할 위험성이 인정된다”며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사회 유명인사가 자녀의 교육 비리에 연루된 대표적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촉매제로 작용했던 최서원씨 딸 정유라씨의 이대 입시·학사 비리 사건이다. 조 교수 부부 사건과 최씨 사건은 당연히 구체적 혐의 내용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2017년 최씨 사건을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는 최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정씨는 두차례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뒤 재판에는 넘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심리한 1·2심 재판부는 최서원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각각 이렇게 밝혔다.

“자녀가 체육특기자로 성공하기 위해선 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배려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엿보인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마음으로 보기엔 너무나 많은 불법행위를 보여줬다. 이 사건 범행은 노력과 능력에 따라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사회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리게 했다.”(1심 재판부)

“부모로서 자녀에게 원칙과 규칙 대신 강자의 논리와 승자의 수사부터 배우게 했다.”(2심 재판부)

대학생 자녀의 시험을 대신 봐주거나 입시에 영향을 끼치려는 부모의 욕심이 보는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는 일’ 또는 ‘당시 누구나 했던 관행’일 수도 있지만, 우리 형법은 관행이라고 부르는 행위도 사실로 입증되고 범죄구성 요건을 갖추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 관행이라도 불법은 불법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은 법적 허용 한계를 판례로 따져보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다수의 피해자를 생각하면 윤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최서원씨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최선을 다해 교과목을 수강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한 수강생들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뉴스분석, 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