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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2020년 정세분석 집담회’가 열려 정치, 경제, 노동, 복지 분야에서 올 한해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주요 과제들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서혜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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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분야별 정세분석 집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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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2020년 정세분석 집담회’가 열려 정치, 경제, 노동, 복지 분야에서 올 한해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주요 과제들을 점검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서혜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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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00년대 두 번째 십년인 2010년대가 저물었다. 영화에서 휘황찬란한 미래를 상징하는 숫자로나 제시됐던 2020년이 밝아왔건만, 한국사회를 둘러싼 상황들은 녹록지 않다. 내부적으로는 급격한 고령화 속에 일자리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데 경제·여론·정치의 양극화까지 심화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이 본격화하며 파열음이 커지고, 인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뒤숭숭함 속에서 새로운 10년의 첫 발걸음을 떼는 한국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올 한해 주요 분야별 이슈들을 짚어보는 정세분석 집담회가 열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정치)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교수(경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노동), 최영준 연세대 교수(복지)가 머리를 맞대고 올 한해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분야별 과제들을 짚고, 어디서 어떻게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인 만큼 구조적 해법 마련이 중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주재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포퓰리즘과 비토크라시를 넘어 한국사회 공론의 장을 재건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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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뉴노멀의 지속,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박종현 교수는 성장과 인플레이션, 고용과 물가의 상관관계가 깨지고 대신에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이 ‘새로운 정상’(뉴노멀)으로 고착화한 최근 10년간 흐름을 소개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올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불황의 지속, 유례없는 경제불황의 고리가 심화할 것이라는 걱정 속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예정”이라며 “전통적 관점에서는 조세수입 범위 안에서 정부지출이 이뤄지는 균형재정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현대화폐이론(MMT)에서는 민간에서의 차입(국채 발행) 없이도 통화를 늘려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가 지출할) 자금조달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 본연의 기능 수행에 부합하는 항목들을 현명하게 찾아내고,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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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경남과기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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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국가재정 위기론’을 조장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좀 더 당당한 재정확대 정책을 펴야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박 교수는 “세계경제의 부진, 미·중 무역갈등, 경기순환기상 하강국면 진입 등으로 인한 저성장에 대응하되, 공공정책의 성격을 띠도록 재정확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입안 과정에서 시민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등 민관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민간주도 주민참여형 경제를 만들어가는 한 해가 돼야 한다는 얘기였다. △플랫폼·시민자산·사회주택 등 다양한 공유경제 △친환경과 지속가능 생태 문명과 일자리를 접목한 그린 뉴딜 △생애주기별 서비스 제공 등이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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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총선 결과 따라 노동정책 향방 결정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첫 행보로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 시간제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분위기는 적잖이 바뀌었다. 16.4%(2018년), 10.9%(2019년)였던 최저임금 인상률은 여러 우려 속에 올해 2.9%로 떨어졌고, 20만명에 이른다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자회사 설립 방식을 둘러싼 노동계와 갈등 속에 그 빛이 바랬다. 여기에 불황에 따른 경제위기론이 힘을 얻어가면서 기업경쟁력 강화, 규제 완화 같은 성장 담론들이 넘쳐나고 있다.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개혁 과제들이 멈춰섰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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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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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후반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떻게 될까. 노광표 소장은 “분기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이나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정부 뒤에 숨어서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정부를 밀어붙여 법과 제도를 바꾸도록 하는 게 한국사회의 특성인데, 2020년에도 노사가 어떤 전략을 쓰느냐가 아니라 정부 방향이나 스탠스에 따라 기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정책 방향은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연말 (노동 관련) 정책들을 챙기는 관료들의 (적극적인) 태도를 보면 비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도 희망 섞인 기대감도 나타냈다.
노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계 일부에서 ‘반노동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한 비판도 나오는데 이는 이른바 촛불로 태어난 정부에의 과잉 기대 때문”이라며 “이제는 발상을 바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1억원을 받고 누구는 4천만원을 받는 현실을 고치기 위한 직무급제 임금구조 논의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운동의 진화도 전망됐다. 노 소장은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노동존중 사회의 3가지 요건으로 △적절한 경제적 보상 △노동자에의 인격적 대우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 등 세가지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노조의 운동은 첫번째에 집중돼 왔고 그 결과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며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급여보다 삶의 질을 더 우선시하고, 인격적 대우와 참여를 중요시한다. 두 번째, 세 번째 요건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작업장 안에서 존중과 권력관계 변화 등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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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임박해오는 위기, 이대로 넘기나
국민의 문재인 정부 분야별 정책지지도를 보면 인사나 경제정책 분야는 바닥인데, 상대적으로 복지는 후한 평가를 받는다. 정부부처 평가에서도 보건복지부는 최근 6개월 연속 1등을 달렸다. 무상보육·무상교육 확산과 아동수당 도입, 노인빈곤 해결을 위한 노인 일자리 확대,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제 완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와 치매국가책임제, 장애인등급제 폐지 등 체감할 수 있는 복지확대 정책들이 여럿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해도 기초연금 인상(30만원)과 고교 무상교육 등이 시행된다.
이런 흐름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일까. 최영준 교수는 “앞으로 2~3년은 이런 점진적 변화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받겠지만, 구조조정 없는 복지확대는 내부 상처를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며 “이대로라면 2020년대 중반쯤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내부 상처’란 고령화 등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와 새로운 경제구조의 출현을 일컫는다. 현재 70%대 초반인 생산가능인구(15~64살) 비중은 2020년대 중반 60%대 중반으로 크게 떨어지고, 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일자리 양극화 또한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비 지출 급증과 제조업 고용 감소 등 흐름도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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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연세대 교수(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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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에서 △기초생활보장-기초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 조정을 통한 노후소득보장제도 정비 △공공보건제도 강화와 요양시설 운영개편 △정규직 중심 출산휴가·육아휴직 확대 △다양한 소득보장제도 실험과 숙의 등을 논의할 ‘개혁의 골든타임’이 올해라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하지만 실제 정부가 움직임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모두가 적당히 만족해하는 상태에서는 중장기적 구조조정을 논의하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없이 중요한 과제인데 행정은 이를 불필요한 가외 업무로 바라볼 뿐이고 정치는 이해관계 조정 과정에서 나올 비난을 우려해 논의 자체를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사회는 대화를 통해 정책 난제를 풀어간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정보를 공개하면 문제가 되고 대화를 하면 오히려 분란이 일어난다는 확신이 정치와 행정영역에 자리하고 있다”며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통해 중장기 방향을 찾아가지 못한다면, 증가하는 사회적 위험과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추수주의)적이고 단기적 처방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포퓰리즘적인 정책 접근에 대한 비관론은 정치 분야에서 더욱 깊게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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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퓰리즘과 비토크라시 사이 길 찾기
박성민 대표는 현재 한국 정치를 “초현실적인 상황”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주말마다 여의도에서 정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회들이 열린다. 부는 1%나 0.1%에 매우 빠른 속도로 집중되고 있지만, 대신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휴대전화와 온라인으로 최고위층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한국사회를 뒤에서 조종한다고 생각되는 재벌, 검찰, 언론 등이 실제로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의정치가 불신받는 속에서, 국민주권이나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광장의 정치’가 일상화하는 현실을 짚은 셈이다.
그는 “촛불보다 투표가,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사람, 제도의 권위를 무너뜨린 뒤 어떤 세상을 만날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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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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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시스템에 대한 불신 속에서 포퓰리즘 바람이 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물론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에서 몇년 전부터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주요국에서 스트롱맨들의 장기 집권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박 대표는 “한국사회 포퓰리즘엔 기술혁신과 세계화, 플랫폼 경제의 출현, 노동조건 악화 등 일반적인 요인들 말고도 김영삼 정부 이후 계속돼온 ‘군부독재 청산’, ‘기득권 청산’, ‘좌파 청산’ 등 ‘청산의 정치문화’라는 한국적 특색이 있다”고 짚었다.
이에 노광표 소장은 “(제때 풀거나 털어내지 못한) 한국사회에 ‘밀린 숙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권위는 무너지고, 의사결정은 못하는 상황이다. 모든 게 뒤엉켜 있고, 기존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최영준 교수도 “‘밀린 숙제’를 미래 의제 속에서 풀어가는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정치권이) 그러지 못하고 과거 관점에서 숙제를 풀려고 하는 순간 그들만의 싸움이 됐다”고 짚었다.
한국 정치의 또다른 위기 요인으로는 상대 정파의 정책이나 주장은 무조건 거부하는 비토크라시가 지목됐다. 박 대표는 “정치개혁 과제가 뭐냐고 물으면 다들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없애는 것’이라고 답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국회와 사법부를 지배하고 언론을 통제했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이후 대통령의 힘은 지속해서 약해져 왔다”며 “대통령 대신 국회와 사법부의 영향력이 커졌지만, 포퓰리즘과 비토크라시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갈등 관리가 중요한데, 만성적인 여소야대 국회에서 아무것도 결정을 못 내리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듯 비관적이기만 한 현실에서 희망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박 대표는 희미하나마 4월 총선 뒤 새로 만들어지게 될 정치 상황과 개헌 논의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지금은 공천 때문에 여당 국회의원들이 납작 엎드려 있지만, 총선이라는 봉인이 해제된 뒤엔 각자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며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개헌을 얘기했지만, 처삼촌 벌초하듯 (진정성 없는 말들을) 던지기만 했다. 광장에서는 문제들을 풀지는 못하니 ‘개헌으로 풀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언젠가 한번 일어날 것 같기는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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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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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 원장은 “사회, 경제 분야에서 미래 관점에서의 정책 재구조화가 요구되고 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데 재구조화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중의 확증편향이 강해지고 이게 정치적으로도 반영되는 현실 속에서 공론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관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글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 사진 서혜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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