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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3 15:27 수정 : 2020.01.13 21:28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박 열사 1주기에 쓴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 원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32년 전 박종철군 1주기 때 아버지 박정기씨 쓴 일기 원문 최초 공개
애통한 심정 담아 아들에게 “죽어간 친구들 영혼 열심히 달래다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박 열사 1주기에 쓴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 원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사람 사는 새상 만드러다오, 라고 왜치면서 죽어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들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운동 자신있다고 하는대 걱정 말라고.”

1987년 1월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고 박정기씨의 자필 일기 중 일부다. 박씨는 부산대에서 열린 아들의 1주기 추모제를 위해 1988년 1월14일 새벽 5시에 이 글을 쓴 뒤 추후 자신의 일기장에 글을 옮겼다. 박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해인 1987년 12월20일부터 2006년 8월11일까지 꼬박 일기를 썼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박 열사 33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가족으로부터 기증받은 박씨의 일기 원문 가운데 일부인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을 공개했다. 박씨의 일기 원문이 대중에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박 열사 1주기에 쓴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 원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박 열사 1주기에 쓴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 원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글에는 고문치사 사건으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슬픔이 가득 담겨 있다. 박씨는 글에서 “아들아 막내야 너가 이 세상에 올 때 무엇을 남겨놓코 갈려고 왔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국교에서 고졸까지 받아 두었든 상장 내지 표창장을 아버지가 부질없이 새보니 64개였드라”라고 돌아봤다. 그는 이어 “이것도 저것도 부질없는 소리 같구나. 지금 아버지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열사와 같이 민주화운동을 위해 힘쓰다 세상을 떠난 영혼을 달래주라는 당부도 있었다. 박씨는 “지금도 차듸찬 간방에서 동지들이 무서운 용기로 투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사람 사는 새상 만드러다오, 라고 왜치면서 죽어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들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대 걱정 말라고. 그 영혼들에게 열심히 달래다오. 너는 친구 사기는 데는 일가견 있짜아. 앞장서서 그런 일 잘하지 않은냐”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 글처럼 이후에도 오랜 기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으로 일하며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건 때는 법정소란죄로 석달간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글을 마치며 “어머니 누나는 서울 형님 형수 집에 있고 아버지 혼자 한없는 감홰 톳보기(안경) 속으로 눈물을 딱고 딱겄으나 그대로 지면이 다 젖었구나. 잘가라. 잘 있그라. 철아”라고 아들에게 인사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18년 7월28일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이 일기장을 사업회에 기증했다”며 “손글씨를 일반 문서로 전환하는 음표기 작업을 통해 일기 내용을 문서화했는데, 그중 아버님이 1주기 추모제에서 말씀한 추도사가 있어 공개한다. 일기장은 유가협과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민주화운동 활동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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