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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5 15:43 수정 : 2020.01.16 02:42

배민라이더들과 라이더유니온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로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 앞에서 매일 바뀌는 수수료와 불리한 계약 등을 비판하는 ‘우리가 있어 배민도 있습니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자유로운 근무형태’ 표방하지만 사실상 전업 노동자
가사돌봄·화물운송·대리운전 등 40살 이상은 가구 전체가 플랫폼 노동에 의지
일감 거부하면 플랫폼에서 ‘불이익’…무한경쟁으로 노동 단가도 하락
전문가 “최저 보수 규정 만들고 대기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등 법제화 필요”

배민라이더들과 라이더유니온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로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 앞에서 매일 바뀌는 수수료와 불리한 계약 등을 비판하는 ‘우리가 있어 배민도 있습니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플랫폼으로 일을 얻는 것은 진짜 마지막 수단이에요. 인맥도 뭐도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일을 구할 수 있는 데니까.” (프리랜서 ㄱ씨)

“콜이 떴잖아요. 잠깐 다시 보려고 하면 (다른 라이더가 응답해서) 0.5초 사이에 사라져요. 정말 정말 0.5초 사이에 사라져요.”(배달노동자 ㄴ씨)

“(플랫폼을 통한 노동이) 뭐가 문제냐면, 계속 단가가 떨어지는 거예요. 내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액수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걸 잡는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화주들이 계속 단가를 떨어뜨리려서 올리는 거죠. (화물운송 노동자 ㄷ씨)

배달·대리운전·가사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플랫폼’ 노동이 일상화된 가운데, 플랫폼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8.22시간 일하고 월평균 소득은 152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플랫폼 노동자는 특정한 업체에 소속되지 않고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한 뒤, 급여 형태가 아니라 1회성 일감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1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공개한 ‘플랫폼노동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플랫폼 노동자의 64%가 다른 직업 없이 플랫폼노동만을 하고 있으며, 월평균소득은 약 152만원이라고 답했다. 플랫폼 노동이 ‘자유로운 근무형태’를 표방하고 ‘부업’ 정도로 인식되지만 사실상 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전업’ 노동자인 셈이다. 이번 실태조사는 사단법인 참세상이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대리운전·가사노동 등 플랫폼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3개월간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진행했다.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 노동으로 버는 소득이 전체 개인소득의 4분의3 가량을 차지해, 다른 일을 겸업하고 있어도 다른 일에서 소득을 별로 얻지 못하고 플랫폼 노동으로 대부분의 소득을 얻고 있었다. 특히 평균 나이 40살이 넘는 가사돌봄(55.4살), 대리운전(50.3살), 화물운송(45.9살) 분야의 노동자는 가구 총소득 중 플랫폼 노동에 의한 소득이 약 80~90%를 차지하는 걸로 조사됐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생계의 ‘마지막 수단’인 플랫폼 노동이 활성화될수록 전반적인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플랫폼으로 특정 업무를 할 사람을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다면 기업으로선 굳이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할 이유가 없어다. 플랫폼에 의해 노동자간 무한경쟁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호출형 플랫폼에서는 일감이 들어왔음을 표시하는 알림이 앱을 통해 여러 노동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뜨고 그것을 가장 재빨리 낚아채는 사람에게 일이 돌아간다. 실태조사에 응한 배달 노동자 ㄴ씨는 “콜이 떠서 잠깐 다시 보려고 하면 0.5초 사이에 다른 사람이 채어가서 콜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대리운전 기사인 ㄹ씨도 “(앱에) 근처에 있는 사람들(동료 대리기사)이 표시될 수 있게 만들었는데 그러니까 유대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공포를 느낀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콜을 잡아야 하는구나, 하는 공포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의 단가를 낮춘다. 플랫폼 노동이 밀려든 영역에서는 단가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화물운송 노동자 ㄷ씨는 “내가 보기엔 터무니없는 액수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걸 잡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화주들이 계속 단가를 떨어뜨리려서 올린다”고 전했다. 플랫폼을 통해 택배일을 하는 노동자 ㅁ씨도 “처음에는 단가가 높아 할 만했지만 요즘은 너무 떨어져서 돈이 안된다.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태조사에서는 ‘자유로운 근무’라는 플랫폼 노동의 장점마저 허울 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플랫폼 노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2명에 1명 꼴로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지만, 일주일 동안 평균 5.2일, 하루 평균 8.22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풀타임 노동’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일감을 거부하는 일이 잦으면 플랫폼 업체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리운전’의 경우 90%가, ‘플랫폼 택배’의 경우 80%가 ‘그렇다’고 답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플랫폼은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할 수 없지만, 일하는 과정이 데이터로 축적돼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통제는 이용자의 평가에 기반하지만, 일감 수락·거부 등을 포함한 알고리즘에 의해 진행된다. 이같은 평가는 호출 제한, 자리배치 불이익 등 사후적인 제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노동자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플랫폼이 기술적 불이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53.2%의 응답자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가사노동 플랫폼 노동자 ㅂ씨는 “시간당 1만원 꼴이라고 들었는데, 들어오는 돈이 3만9천 얼마 하는 식으로 매번 조금씩 달라지더라”며 “왜 깎였냐고 물어보면 고객의 평가가 안 좋아서라고 한다. 고객이 ‘별’을 주는 건 알지만 얼마나 줬는지는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플랫폼노동종사자 인권상황 정책토론회’에서는 법제화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플랫폼 노동자의 보수에 관해서도 근로기준법상 통화 지급, 직접 지급, 전액 지급, 정기일 지급의 원칙을 수립하고 개별 과업별로 정해지는 플랫폼 노동자의 보수에 최저기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윤 연구위원은 또 “영국 고등법원이 우버 기사의 노동시간을 특정 승객의 운송업무를 수락했을 때가 아니라 우버에 로그인하였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판단한 것처럼, 플랫폼 노동자가 과업 수락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포섭하는 법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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