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전날 단행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
[한겨레21] 보수 언론과 야당 법석에도 실제 ‘검란’ 일어나지 않은 이유
‘윤석열 사단’ 독식한 주요 보직 원상회복 등 긍정적 평가도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전날 단행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
‘윤석열 사단 대학살’ ‘검사들 부글부글’ 보수 언론과 야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이번 검찰 인사(1월8일 발표)를 비난하며 쓴 표현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을 대거 좌천시킨 이번 인사가 매우 부당해서 검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검란’(檢亂)이라 부를 정도로 흔했던 검사들의 집단행동은 이번에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대가로 선배들이 좌천당했다는데 후배 검사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걸까?
중간간부마저 ‘물갈이’ 땐 역풍 우려도
법조계에서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우선 ‘검찰총장의 리더십 붕괴’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지난해 7, 8월에 있었던 검찰 고위·중견간부 인사에서 윤석열 총장이 측근만 챙기는 바람에 일선 검사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는데, 이번 인사는 ‘윤 사단’이 독식한 주요 보직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에는 권력형 비리와 기업 범죄를 수사하는 ‘특수’와 노동·선거·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전담하는 ‘공안’, 그리고 수사 외적인 업무를 전담하는 ‘기획’ 등 크게 세 직역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고위간부 인사에서는 각각 기획과 공안 출신이 임명되어야 할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공공수사부장에 ‘특수통’인 이원석, 박찬호 검사장이 임명됐다. 모두 윤 총장 측근이다. 8월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공안 출신 자리인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 역시 윤 총장 측근인 신봉수 차장이 임명됐다. 신 차장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특수1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추 장관은 윤 총장 측근인 대검 간부들을 일선 고검과 지검으로 내보내고 원래 직역을 살려 인사를 했다. 새로 임명된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대검 공안3과장을 지낸 ‘공안통’이고, 이정수 기조부장은 법무부 형사사법공통시스템운영단 단장을 지내는 등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법무부는 조만간 할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킨다는 방침이다.
이런 이유로 일선 검사들 중에는 이번 인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다는 게 검찰 사정을 잘 아는 법조인들의 말이다. 바꿔 말하면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약점’을 정확하게 치고 들어간 것이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내부 사정을 잘 모를 것 같았던 추 장관이 이번에 인사를 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이가 많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수사 우선주의’가 초래한 결과라는 설명도 나온다. 윤 총장이 ‘조국 수사’로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느라 정작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6월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 공개됐을 때 검찰이 반발하자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입법 과정에서 검찰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 처리 과정에서 검찰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검찰 안에서는 여권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를 탓하는 목소리와 함께 ‘윤 사단’을 향한 원망도 들린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인사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추 장관의 승리로 끝날지는 아직 모른다. 추 장관이 검찰 후속 인사에서 ‘윤 사단’으로 분류되는 중간간부까지 대거 물갈이할 경우 역풍이 불 수도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이 해오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수사와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 재판의 공소유지를 전담하던 간부들까지 물갈이되면 검사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여기에 법무부가 밀어붙이는 검찰 직제개편안도 폭발력을 안고 있다. 법무부는 현재 4개 부서로 나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를 2개로 줄이고 나머지 2개 부서는 각각 형사부와 공판부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 경우 수사 인력이 다른 부서로 분산되고 사건이 재배당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삼성 관련 사건 등 복잡한 수사를 해온 베테랑 검사들이 뿔뿔이 흩어질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후속 인사를 앞두고 수사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삼성 쪽도 이런 분위기를 간파했는지 사건 관련자들이 검찰 출석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월14일 성명을 내어 “경제범죄 등 부패범죄 수사의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일선 검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더 불만
일선 검사들은 검찰 인사가 아닌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형사사법제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월13일 국회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법안) 절차에 따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검사들이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가 이튿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정부 비판 글에 동료 검사들이 450개 넘는 댓글을 달았다. 김 검사는 “수사권 조정은 거대한 사기극이고 민주화 이후 가장 혐오스러운 음모”라며 정부와 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을 준 것은 수사기관의 권력만 커지는 결과를 낳아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이 검사들의 주장이다.
여기엔 반론도 있다.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재수사를 요구할 권한을 검찰에 줬기 때문에 경찰 수사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경찰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영장청구권은 허용하지 않아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 유지되기 때문에 경찰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는 단계에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땐 검찰이 ‘경찰 1차 수사 종결권’ 검토
참여정부 때는 검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것을 적극 검토한 적도 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2005년 검경 수사권 조정 협상 때 경찰이 일부 수사에서 영장청구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검찰로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1차 수사 종결권을 넘기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검찰에 송치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정·관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법조 브로커 사건’이 터져 검찰과 경찰이 수사 주체를 놓고 강하게 충돌하는 바람에 수사권 조정 협상은 흐지부지됐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일선 검사들의 지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 못지않게 경찰개혁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일선 검사들이 지적하는 경찰 통제의 필요성은 외부 전문가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하다. 양홍석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소장직을 그만뒀다. 양 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전반적인 권력 기관 개혁에 대한 문제인데, 지금 통과된 법안들은 경찰의 자율성은 높여놓았지만 이에 대한 통제나 견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지 않다. 수사 절차에서 검찰의 관여 시점과 범위, 방법을 제한한 것은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검찰개혁의 성공 여부는 정권이 검찰이 휘두르는 칼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17년 전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검찰개혁이 실패로 끝난 과정은 문재인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2003년 2월 청와대에 입성한 노무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법무부 장관(강금실)’ 카드로 검찰개혁의 물꼬를 트려고 했다. 그는 검찰 내 기득권 집단을 해체해 ‘검찰을 위한 검찰’이 아닌 ‘국민의 검찰’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꿈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검찰 내 기득권 집단의 반발은 정교하면서도 집요했다. 검찰 고위간부들은 강 장관 길들이기부터 시작했다. 2003년 9월5일 아침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수줍은 듯 환하게 웃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겸연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짓는 송광수 검찰총장과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이다.
|
2003년 9월4일 강금실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저녁을 함께한 뒤 기자들 앞에서 팔짱을 끼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강금실-송광수 갈등’은 반면교사
당시 강 장관과 송 총장은 검찰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해 8월 검찰 간부 인사에서 강 장관은 송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자 검찰은 ‘검찰 인사는 장관과 총장이 상의해서 하는 게 관례’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강 장관은 이에 맞서 “검찰청법 어디에도 검찰이 인사에 관여하는 권한이 없다”고 반박했다. 당시에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검찰청법 조항(제34조)이 없었다. (두 달 뒤 송 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의지도 중요하지만 인사의 객관화와 공정성도 중요하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간 검찰 인사 문제 협의를 법률상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총장은 법무부에 법 개정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검찰청법 제34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강 장관과 송 총장의 ‘팔짱 회동’은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송 총장은 기자들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다”며 “이견이 있다는 것은 언론의 추측 보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도 “우리 사이에 오해는 없다. 에브리타임(언제나) 문제없다”고 말해 기자들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두 사람의 갈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둘의 갈등은 단순히 장관과 총장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리전 성격이 강했다.
검찰은 참여정부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특히 참여정부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건에서 검찰은 몽니를 부렸다. 2003년 10월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송 교수는 23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독재 정권에 ‘친북인사’ ‘반정부 인사’로 찍혀 입국을 금지당했다. 송 교수는 2003년 9월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제안한 고국 방문을 받아들여 37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검찰은 그의 조선노동당 가입을 문제 삼아 간첩 혐의로 수사하겠다고 별렀다. 야당과 보수 언론도 그를 ‘해방 후 최대 거물 간첩’으로 몰아가며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는 송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은 그를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송 교수는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돼 석방된 뒤 독일로 돌아갔다.
2003년 말에 시작된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개혁을 무산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송 총장의 직할 부대인 대검 중앙수사부는 노 대통령의 대선 참모였던 안희정씨와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했다. 대검 중수부는 한나라당이 삼성에서 100억원, 엘지에서 150억원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지만 참여정부가 입은 도덕적, 정치적 타격은 컸다. 반면 검찰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송 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은 ‘송짱’ ‘안짱’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대검 중수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검찰개혁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웠다. 송 총장은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중수부 폐지에 대해 “내 목을 먼저 쳐라”라며 정권과 맞짱을 뜨기도 했다. 검찰개혁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칫 ‘대선자금 수사 보복’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검찰개혁 하려면 청·여권 검찰에 떳떳해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탄식했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자서전에 썼다.
노 전 대통령 곁에서 검찰개혁이 좌초된 과정을 지켜본 문 대통령은 1월14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이 과거보다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검찰 스스로 개혁에 앞장서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의 주문은 그 역도 성립한다. 청와대와 여권이 검찰에 떳떳해야 개혁이 성공한다. 문재인 정부는 17년 전의 아픈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7년3개월째 찾는 ‘새정치’ | 한겨레21 기사 더보기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