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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14 17:54 수정 : 2006.02.15 14:07

기지촌 두레방 유영님 원장은 “군사주의 폐해의 직접적인 피해자를 돕는 인권운동을 사회적 합의 하에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지촌여성 지원단체 ‘두레방’ 유영님 원장

미식축구 영웅으로 거듭난 하인즈 워드. 한국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그의 ‘영웅담’ 뒤엔 언제나 미국 안의 인종 차별에도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낸 ‘한국인 어머니’에 대한 찬사가 뒤따른다. 하지만 ‘모성 영웅’으로 떠오른 워드의 어머니는 정작 자신에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마뜩찮아했다고 한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한 지금, 뒤늦게 영웅 대접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하인즈 워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요즘 혼혈인의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워드의 어머니처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그 어머니들에 대해서는 아직 눈길이 닿지 않고 있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더욱이 워드의 어머니처럼 갖은 고생으로 아이를 키운 소외된 한국 여성을 아름답게만 보는 눈길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기지촌 주변 여성들을 지원하는 ‘두레방’의 유영님(53) 원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 40회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최우수선수 하인스 워드가 11일(현지시간) 낮 조지아주 애틀랜타 맥도너의 어머니 자택에서 어머니 김영희씨를 만나 포옹하고 있다.

“‘워드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99.99% 가능성이 없는 얘기예요. ‘만의 하나’인 경우죠. 한국에는 없어요.”

유 원장이 일하고 있는 두레방은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의정부에 자리잡은 이 단체는 지난 86년 문동환 목사의 아내 문혜림씨가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도우려고 미국 선교 자금을 받아 만든 뒤 줄곧 이곳에 머무르면서 한국인 여성뿐만 아니라 필리핀, 러시아 여성 등 기지촌 주변에서 일하는 다양한 여성들에게까지 관심을 쏟았다. 특히 지난 97년부터 이 단체에서 일해온 유 원장은 지금까지 미군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한국인 여성들의 어려움을 수도 없이 봐왔다. 미군 자녀를 낳았거나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도 100여명 가량 찾아냈다. 처지가 드러나는 걸 꺼려 찾는 일도 쉽지 않았고, 눈시울을 적실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수가 절대 빈곤층입니다. 미군 아이를 낳은 뒤 혼자 사는 여성들은 대체로 기초생활수급권자이지만, 자식과 함께 사는 여성들은 노동 능력이 있는 젊은 자녀가 있다고 해서 그것도 안돼요. 혼혈인은 취직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거의가 절대 빈곤 상태인 거죠.”

아들 하나 키우려… 왜 직장 3곳서 일했겠나
‘어머니 희생’ 윤색에만 열성… 인종차별·군사주의는 모른척

그는 워드의 영웅담 속에서도 “한미 양국이 사안의 핵심을 비켜가면서 한국인 어머니의 희생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지촌 주변에서 태어난 주한 미군의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차별하는 양국이 다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 미국 모두 한국인 모성의 희생을 아름답게만 윤색하죠. 워드의 어머니가 왜 아들 한명을 키우면서 하루 3곳의 직장에서 일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워드 모자의 성공신화를 다룬 지상파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동양인 이주 여성에 대한 미국의 처우에 대해 여러가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과연 적절한 임금을 제대로 받았을까, 아버지에게 양육비 지원은 제대로 받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국 순혈주의, 군사주의와 연관된 다양한 차별 속에 살아간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유 원장은 “미국에서는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가 18살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가 양육비를 지원하도록 돼있지만 한국 여성들에게는 양육비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두레방에서는 미군과 국제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여성 가운데 90% 정도가 이혼을 한 채 살고 있는 것으로 미뤄 짐작하고 있다. 물론 한·미 양국에서 이에 대한 정확한 실태 조사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미 양국에서 미군 아이를 낳은 한국인 여성들이 적절한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도, 미국 사회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국에서 먼저 혼혈인들을 보듬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이미 한차례 배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지요.”

그는 한국 정부의 분리정책이 미군 자녀들과 어머니들의 고달픈 처지를 부추겼다고 여긴다. 우리 정부는 한국전쟁 뒤부터 80년대까지 입양, 해외취업 알선 등으로 혼혈인을 해외에 보내는 정책을 폈다.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한 지 60년입니다. 워드를 영웅시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미군 자녀와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돌아보고 이들의 명예회복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지촌 주변 여성들 대부분은 아직 사회구조적으로 군사주의의 희생자로 머물러 있어요. 이 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의정부/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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