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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5 17:41 수정 : 2005.01.05 17:41

오전 10시, 제주도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의 탈의실에 하나둘 여자들이 모여든다. 온평리 부녀회장 이재복 여사도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다. 파도는 잔잔하고 날씨는 쾌청하다. 바다는 오늘 이들의 방문을 기꺼이 허락할 모양이다. 올해 쉰이 되는 재복여사. 그이가 물에 들어간 세월을 따지자면 40년도 넘었다. 사실 언제부터 물에 들어갔는지 정확한 기억도 없다. 아무도 그이에게 해녀가 되라고 한 적은 없지만 해녀였던 어머니를 따라 아주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놀고, 조금 자라 소녀 시절에는 동무들이랑 잠수놀이를 하며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동네 언니들은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는지, 깊은 숨을 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다에서 조심할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바다는 직장이자 놀이터이자 인생을 알게 해준 배움터였다. 그렇지만 바다에 들어가는 일이 늘 즐거운 일은 아니다. 재복 여사는 한 번은 바다에서 올라오지 못했다. 철결핍성빈혈로 바다 깊은 곳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때 깊은 바닷속에서 그를 구하고 병원에 데려가고 깨어날 때까지 그 곁을 지킨 이들은 함께 잠수를 하던 바다 친구들이었다. 목숨을 함께 하는 우정과 연대. 이것이 해녀들의 우애다. 친동기간보다 진하다는.

재복 여사를 비롯한 온평리 해녀들은 태풍이 불거나 심한 비바람이 치지 않는 한 바다에서 일을 하지만 태풍이 분다고 해서 쉬지는 않는다. 귤, 당근, 양배추 등 밭농사를 짓고,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이자 식당인 ‘소라의 성’도 직접 운영한다. 제주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겸 숙소인 이 곳에서 그들은 조를 이루어 집에서 식구들을 먹이듯 정성을 다해 손님들을 대접한다. 뿐이랴, 지난 12월에는 온평생활개선회도 열었다.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감귤즙과 귤잼, 유채기름, 혼인지 바당의 미역, 유채나물, 고사리 등을 판매하는 온평생활개선회 개업식을 앞두고 나는 감귤즙과 귤잼을 만드는 과정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그이들은 손으로 직접 귤을 까서 분쇄하고 일일이 체에 받쳐 맑은 쥬스가 되면 100도가 되도록 끓여 진공포장을 한다. 이 전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한다. 귤잼도 마찬가지다. 비타민이 가장 덜 파괴되게 하기 위해 저농약 감귤을 골라 정성을 다해 만든다. 특히 귤잼은 덩어리가 그대로 씹히도록 만들어 마말레이드를 먹는 기분이다. 개업을 하루 앞두고 마을 사람들과 내빈들을 위해 두부를 만들고 김치를 담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그이들은 신명이 나서 떠들썩하게 일을 했다. “이것만 하는 줄 알아. 노래방도 가야지. 1년에 한 번은 춤 추러도 가야지.” 재복여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온평리는 벽랑국의 세 공주가 다섯가지 곡식과 마, 소를 데리고 상륙한 곳이다. 탐라국의 왕이 배필이 없어 나라를 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제주도를 함께 일구기 위해 찾아온 벽랑국의 세 공주, 그들의 후예들이 바로 혼인지 바다의 여성들, 제주 해녀들이다. (온평생활개선회 전화번호 064-782-8689)

글·김현아 ‘나와 우리’ 운영위원 khagong@empal.com/사진·류순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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