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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5 17:48 수정 : 2005.01.05 17:48

새해 들어 ‘화목한 가족’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부쩍 늘고 있다. 노령화, 이혼 등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보수적인 경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 강창광 기자

가계 주름살 깊어지자
보건복지부 ‘고미사 운동’
일부 언론 ‘건강 가족’ 강조
‘다른’ 가족형태에 박탈감
가족문제의 사회적 책임 외면

새해 들어 특히 ‘가족’의 가치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우선 <조선일보>가 깃발을 들었다. 이 신문은 ‘신년특집’으로 ‘가족이 희망입니다’라는 기획을 시작하면서 지난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크게 실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화목한 가정’이 희망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신문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는 가족에 대한 제보를 당부하며 기획기사의 무게를 강조했다. 1월2일자 국민일보의 가족면도 ‘가족관계’를 들고 나섰다. ‘희망의 가정 우리 함께 만들어요’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 신문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운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며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족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독자들을 설득했다. 또 가족과 교회의 연관성을 염두에 둔 듯 ‘사회의 이혼율은 교회에 영향을 끼친다’고 높아지는 이혼율을 사회·공동체의 위기로 보았다.

보건복지부도 덩달아 보조를 맞추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새로 ‘가족 화합’ 대국민 홍보에 나서 (사)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만든다는 뜻으로 ‘고미사 운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가족 사이에서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는 고백을 하면 갈등이 해결된다는 취지다. 이 운동을 알리려고 보건복지부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공익광고를 제작·방송하고 있다. 인터넷용으로도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음악으로 제작된 카드를 제작·배포하고 있다. 부모와 아들, 딸로 이뤄진 귀여운 가족 캐릭터들이 등장해 서로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를 외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 형태를 강조하는 움직임은 자칫 한부모 가정, 독신가정, 동성가정 등에 거리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새해 들어 가족정책과 건강가정기본법의 여성부 이관을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가운데 나온 보건복지부의 캠페인은 이런 의구심을 더하게 했다.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교수는 “행복한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인 안전망 확충에 힘써야 할 정부와 사회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가족은 사랑으로 맺어졌다기보다는 서로 부담을 지우고 이용하는 “도구적 관계”이기 때문에 가족의 부양과 간병 등 가족의 짐을 덜어주는 사회정책으로 뒷받침돼야 할 가족문제가 오히려 가족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 해야 할 문제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관계의 다양성을 내버려두고 ‘화목한 관계’를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은 미국 복음주의 세력이 중심이 된 ‘포커스 온더 패밀리’나 ‘스마트 메리지’ 같은 기독교계 보수집단이 벌이는 운동과 흡사한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여성개발원의 변화순 선임연구위원은 “가족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개별 가족의 화목한 관계가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화목한 가족관계만 강조하는 목소리는 자칫 갈등을 덮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경향을 나타내기 쉽다”고 덧붙였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란 아름다운 이념 속에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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