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04 18:12
수정 : 2006.04.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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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종로구 명륜동 도서출판 이프 사무실에서 열린 잡지 완간 기자간담회에서 이프 제작진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도는 방향으로 제미란, 조박선영, 정박미경, 김신명숙, 엄을순 사장, 유숙렬, 김재희, 권혁란씨. 도서출판 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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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9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프> 완간호 편집위원회는 3일 종로구 명륜동 이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마지막 잡지를 공개하고 잡지의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도서출판 이프의 엄을순 사장은 “경영 악화 때문에 문을 닫지만 재도약 하겠다는 뜻으로 ‘폐간’이 아닌 ‘완간’이라고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프>란 제호는 ‘만약’(if)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페미니즘’(infinite feminism)이란 뜻을 함께 담았다. 아이엠에프 외환 위기로 종이값이 폭등해 문을 닫는 잡지사들이 속출하던 97년 5월, 남들과는 거꾸로 첫 발을 내딛었다. 산파는 ‘남성’ 작가 이문열이었다. 그의 소설 <선택>은 발간과 동시에 페미니즘 논쟁을 촉발했다. 유숙렬 편집위원은 <이프>의 창간이 “예술과 권력의 힘으로 여자들을 매도하는 데 대한 공동 대응이었다”며 “경제적·정서적 후원이 없는 페미니스트들이 가진 것 없이 남성 중심 사회와 맞장을 뜨려고 10년 동안 공동체적인 실험을 한 것”이라고 지난날을 평가했다.
패미니스트저널 ‘이프’ 퇴장· 간통죄 철폐 등 9년간 앞장
미스코리아 방송폐지 이끌어· “경영난 문닫지만 재도약할 것”
창간호에서 창공을 품은 임산부의 나신(박영숙 작)을 표지로 내건 이 잡지는 마지막호 표지로 쿠바 출신의 미국 여성사진가 아나 멘디에타의 자사상(사진)을 선택했다. 제미란 완간호 편집장은 “석관에 누워있는 나신의 여성과 하얀 들꽃들은 죽음과 환생을 뜻한다”고 말했다. 멘디에타는 36살의 나이에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이프>의 마지막호 역시 통권 36호다.
창간호부터 <이프>는 도발적이었다. 첫 잡지 화보에서부터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동상 대신 ‘지모신’(한애규 작)을 세워 ‘가부장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99부터 2004년까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상품화에 반기를 들고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해 훗날 미스코리아 대회의 수영복 심사 폐지와 지상파 중계 방송 포기 선언(2002년)을 이끌기도 했다.
지면에서는 유림, 종교, 군대, 간통죄 등을 페미니즘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가부장제와의 전면전’(2000년 15호)에선 신성한 종묘에서 치마와 자궁 등을 형상화했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프로젝트가 폭력적으로 저지 당한 사건을 실었다. ‘종교계의 성차별’(2003년 25호)을 다루면서는 ‘언론의 성역’인 교단의 성차별 문제를 짚어냈다. 특히 ‘여자, 군대를 말한다’(2003년 24호)는 특집은 남성우월주의자들의 거센 비난과 동시에 페미니즘 진영 내에까지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2000년 간통죄 합헌 결정에 맞서서는 외롭게 간통죄 폐지의 깃발을 들었다. 다른 여성단체와 뜻을 모으려했지만 사안이 예민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과 섹스를 둘러싸고 ‘쾌락적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도 국내에서는 <이프>가 처음이었다. 연말에 열렸던 여성주의 파티나 ‘이프체’로도 볼 수 있는 쾌락적 글쓰기는 색다른 시도로 받아들여졌지만 ‘인텔리 중산층 여성들의 자기 만족적인 파티와 글쓰기’라는 비난에 맞딱뜨리기도 했다.
엄을순 사장은 “잡지는 못 내더라도 오는 6월2일에는 남녀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는 안티페스티벌 ‘성, 벽을 넘어서’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는 여성 치유와 관련한 교육활동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사진 도서출판 이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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