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11 16:00
수정 : 2006.07.12 14:55
‘독일 여성운동사’ 160년 발자취 들여다보기
“여성들이 국가에 관한 일에 참여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1843년, 루이제 오토-페터스)
독일 여성운동의 주창자 루이제 오토-페터스가 이 말을 한 뒤 160여년이 지난 지금, 독일의 총리는 여성이다. 페미니스트 잡지인 <엠마>의 발행인인 알리스 슈바르처는 이 총리에게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총리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남성 정치인들에게 인정받는 방식으로 총리직을 맡았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다양한 목소리와 논쟁은 독일 페미니즘의 전통이기도 하다.
<독일여성운동사>(로제 마리 나베-헤르츠 지음, 이광숙 옮김, 지혜로)는 오토-페터스 이후 지금까지 여러 갈래로 변화하고 발전한 독일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을 시대별로 요약한 책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이 어떻게 같고 달랐는지, 미국의 여성운동과 독일 여성운동이 어떻게 영향력을 주고받았는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역사서다. 독일 여성운동은 여성의 자립과 경제에 관심을 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클라라 체트킨, 엠마 이러 등 초기 무산계급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의 직업은 여성을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하는 기본 조건”이라며 여성노동력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려는 ‘무산계급 안티페미니즘’의 반발에 맞섰다.
비교적 뒤늦은 여성운동 역사에 비해 여성언론의 성장만큼은 최고 수준이었다. 1849년 <여성신문>(프라우엔 짜이퉁)을 시작으로 지금의 <엠마>까지 독일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이 세계를 구원하는 데 기여해야 하고, 여성 몫을 요구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다양한 논쟁을 벌여왔다. 가족, 직업, 교육기회, 도시, 국가, 정치, 교회가 남성의 욕구와 열망에 따라 조직되었음을 알리는 이론적 체계를 만들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직업협회 등 실질적인 여성조직을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72년 이들이 처음으로 연 ‘여성 자의식 축제’는 남성들의 관심을 끄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 행사’의 기원을 만들었다. 교육으로 자립심을 기르고, 이런 자립의 정신으로 경제·정치·문화적인 몫을 확보해 홀로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라는 초기 독일 페미니스트들의 뜻을 이어간 셈이다.
히틀러 체제 아래 나치스가 ‘한 가정, 네 아이’ 식의 출산 장려운동을 벌였던 점, 경제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여성에게 가정과 출산을 강조하며 일하는 여성을 집으로 돌려보낸 사실 등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상황과 견줘보면 실감난다. 더욱이 통일 과정에서 뒤로 밀려난 여성문제를 두고 논쟁한 일화 등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던져질 숙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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