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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1 16:10 수정 : 2006.07.12 14:55

안산 이주여성상담소 최승희 강사 /

“얼굴 화장의 핵심은? 색깔을 다르게 칠한 뒤에 마구마구 문지르는 거예요~.”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의 한글강의실에서 한 여성이 몽골, 중국, 베트남에서 온 20여명의 여성들을 앞에 두고 열띤 강의를 하고 있다. ‘메이컵으로 배우는 한글’ 강좌 시간이다. 강사는 최승희(45)씨. 센터 부설 안산이주여성상담소 블링크의 상근자다. 현장 방문을 나온 여성가족부 장하진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해령 소장이 그의 이력을 슬쩍 알렸다. “아, 우리 상근자인데요, 못 하시는 게 없어요.”

최씨는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유학파다. 22살에 결혼한 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지난 94년 33살의 나이로 다시 미국으로 가 5년 동안 네브라스카주의 한 대학에서 공부했다. 1년 전 안산 이주여성상담소가 생기면서부터 자원봉사 생활을 하다가 올 3월부터 상근자로 일하고 있으니 ‘창립 멤버’인 셈이다.

이곳에서 그는 결혼이민여성 상담, 이주여성근로자 상담, 가정폭력 등 가해자 상담, 여성쉼터 관리, 한글강의 등을 한다. 미국에서 1년 동안 배운 무대분장 기술, 한국에서 딴 인명구조요원 자격증, 전문가 뺨치는 한국요리 실력 등의 경험을 살려 메이컵과 요리 등 수준급의 ‘특강’까지 도맡아 한다. 서울 도화동 집에서 사무실까지 차가 막힐 땐 3시간까지 걸리는 출퇴근길도 마다않는 열성적인 활동가다.

‘유학파 고급 인력’인 그가 받는 한달 월급은 “극비”라지만 “시민단체 상근자 월급 수준 정도”라고 한다. 10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는 말이다. 그에게는 돈이나 사회적 인정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제결혼여성 상담·교육 등 열성, 못하는 게 없는 미국 유학파
“한국 가부장적 문화 충돌 많아 ‘타인 인권존중’ 꼭 교육시켜야”

“저도 미국에서 대단한 차별을 당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말 안 통해 서럽고, 얼마나 억울한데요.”

뼈가 으스러지도록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공부를 했지만 차별 받긴 마찬가지였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고 무시하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그는 도무지 우리말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모욕 당하는 외국인 며느리들에게서 미국에서의 자신을 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나를 전인적인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차별”을 그도 겪은 적이 있다.

저항도 했다. 유학시절, 한 한국인 학생이 수영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때 학교쪽에서 미국에 시신을 매장하라고 지시하자 그는 한인학생회를 만들어 학생의 부모를 미국으로 오게 하고, 시신을 한국에 옮기도록 맞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색적으로 차별을 하는데, 그들은 겉으론 외국인을 포용하는 것처럼 하면서 속을 뒤집어놓더라구요.”

배낭여행이 흔치 않던 80년대 말, 그는 일본과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며 두루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 타인의 삶에 대한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을 하면서 특히 남에 대한 이해가 아쉬울 때가 많다. 가정 폭력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상황을 살펴보면 며느리를 ‘가족’이 아니라 흡사 피고용인처럼 대하는 모습을 자주 만나게 된다고 했다. 그의 경험상 국제결혼중개업체가 1500만원을 받는다면 신부 집안에게 주는 지참금은 기껏 20~40만원정도인데도 한국 남성의 집안에서는 1000여만원의 목돈을 신부쪽에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이주여성에게 부당한 대우를 할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안산은 결혼이민자 가구가 많고 이혼율도 그만큼 높다. 특히 가정폭력은 하루 평균 서너건씩 접수되어 센터 상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남편들은 대부분 알콜 의존증이 많고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가부장적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요즘 결혼이주여성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 베트남, 몽골이 모두 오랜 사회주의의 경험으로 양성평등에 대한 사상적 학습을 확실히 받아온 사람들이라 그들이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일이다. 이해와 소통이란 단어를 곱씹게 되는 이유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죠. 어렵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고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야지요. 적어도 타인에 대한 인권의식만큼은 확실하게 교육 시켰으면 합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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