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연 ‘한국의 페미니즘을 돌(아)보는 사람들’ 주최의 토론회. 전국에서 온 여성운동가들이 모여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제목 그대로 한국 여성운동의 현실에 대한 수많은 의견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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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침공부터 민법개정안까지 토론도 하고 진정도 내고
운동 내부 비판도 꺼리지 않아 운동방식은 이렇다. “이거 정말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모은다. 토론회를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관련 부처에 의견서를 낸다. 주제는 다양하고 포괄적이다. 여성노동, 여성인권, 가족문제, 차별문제 등이다. 관심 있는 사람이 헤쳐 모이길 거듭해 아예 조직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나이도 20~40대까지 아우른다. 위계질서나 서열이 없어 교수나 학생이나 그 안에서 평등하다. 전문분야도 다르다. 법조인, 언론인, 사회학자, 여성학자, 여성운동가들도 있다. 관심 사안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움직일 뿐이다. 이런 게릴라성 여성모임이 생긴지 5년째. 맨 먼저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벌인 이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 와우’(WAW)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평화를 고민하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 50여명이 모여 전투기 구매반대운동, 북한 여성문제, 자료집 발간 등의 활동을 했다. 본격적인 ‘게릴라 페미니스트들’은 2003년 12월에 등장했다. 여성학·사회학자 5명이 ‘차별연구회’를 열었다. 그해 22개 공기업 및 공공기관이 모집·채용을 할 때 학력·연령차별을 둔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그 결과 9개 공기업이 직원 채용시 나이와 학력 제한을 없앴고 13개 공기업은 학력 차별을 없앴다. 그밖에도 근로자연말정산제도, 새마을호 여승무원 노동문제, 공무원임용시험 연령 차별, 은행 채용 학력차별 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소득세법일부개정법률안(이계경의원 등 12명 발의)이 혼인여부와 가족상황에 따라 차별을 둔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최근엔 KTX여승무원의 철도공사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관련 보고서를 냈다. 회원 국미애씨는 “사회 전반적으로 무감각해진 차별 감수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4년 이화여대 여성학과 졸업생들이 모인 ‘가족연구모임’도 성과를 냈다. 건강가정기본법(이하 건가법)이 혼인·혈연·입양의 관계가 없는 가족의 차별행위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는 관련 법률의 내용 정비와 법률명도 중립적으로 수정하라 권고했다. ‘한국의 페미니즘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최근에 모였다. 여성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 법조인, 여성주의 활동가의 모임인 ‘사람들’은 지난달 ‘민법개정안 논의를 통해 생각해본 여성의 이해와 페미니즘’ 토론회를 열었다. 부부가 공동협력해 이룩한 재산의 절반은 여성의 몫이어야 한다는 부부재산권운동은 여성단체의 오랜 주장이었다. 토론회에서 얼핏 성평등적이고 여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재산 형성에 기여가 많은 배우자에게 손해와 희생을 강제하는 규정이라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여성단체의 영향력이 정부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회 뒤엔 단체 명의로 법무부에 의견서를 냈다. 22일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2차 토론회에는 60여명의 여성계 사람들이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비판하면서 왜 여성단체들은 위계적이 되는가”, “왜 여성단체가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려고 상호경쟁자처럼 견제하는가” 등 뼈아픈 얘기까지 속속들이 오갔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여성학자 이박혜경씨는 “지금까지 여성운동계가 굵직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해왔지만 사회운동세력이 위기와 기회에 봉착한 만큼, 소수의 의견을 드러내고 논의하는 마당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게릴라 페미니스트들’ 가운데는 여성운동의 주류인 이화여대 출신들이 많고 그들 중심으로 주로 모이는 까닭에 ‘거기서 거기’라는 지적도 있다. 여성계 한 인사는 “여성계가 대안 없이 서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 무슨 득이 있느냐”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작은 운동’의 중요성을 높이 사야한다는 평가도 있다. 언니네트워크 조지혜 대표는 “덩치가 큰 여성단체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고 여기서 여성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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