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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16 19:05 수정 : 2007.01.16 19:07

여성의전화연합 이두옥 새 공동대표

여성의전화연합 이두옥 새 공동대표 /

20~30대 때 그는 ‘잘나가는’ 직장 여성이었다. 남편은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목사였다. 덕분에 생계는 줄곧 아내의 몫이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해 8개월이 됐을 때,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한달 출산휴가를 쓴 뒤 무조건 회사에 돌아갔더니 업무를 주지 않았다. 대기업을 상대로 혼자 ‘출근 투쟁’을 하고, 노동위원회에 제소해 원직복직을 합의하고,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각서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지금은 지난 삶을 웃으면서 얘기할 여유가 생겼다. “금융권 임시직 여사원으로 입사해 다시 공채 시험을 봐서 정규직이 됐고, 회사를 옮겨서는 출산휴가로 인한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던 거죠. 제 삶 자체가 여성학 교과서 같죠? 하하.” 그렇게 낳은 둘째 아이가 이제 17살이다.

대구여성의전화 이두옥(54) 대표다. 그는 최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새 공동대표가 됐다. 1991년부터 대구여성의전화 회원으로 활동한 ‘풀뿌리 운동가’였다. 만학도이기도 했다.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를 졸업했고 40살에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편입·졸업한 뒤 43살에 다시 여성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논문은 〈정리해고 과정에 나타난 주부사원의 노동경험세계〉(1998)였다. ‘경영 합리화’의 명분으로 해고당한 옛 기혼 여성 동료들을 일일이 만나 썼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경상도 남자’인 남편도 밥상 차리기며 집안일을 함께 해가면서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동안 여성인권 지원활동, 폭력없는 마을 만들기 등 다양한 생활문화운동을 병행해 왔다. 보람과 고통이 동시에 오기도 했다. 2000년엔 가해자 실명을 인터넷에 실었다는 이유로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에 휘말려 5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결국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재판 등기서류만 오면 분노심이 올라와서 가족들에게도 예민하게 굴고…. 스트레스로 피부에 발진까지 생기더라고요. 피해자도 같은 증상이었죠.”

해고당해 투쟁으로 복직경험 바탕
16년간 대구서 활동한 ‘풀뿌리 운동가’
가정폭력 위험수준 “최대 관심사”


이제까지 그는 여성폭력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늘어나는 가정폭력은 위험 수준이다.

2004년부터 대구여성의전화에 들어오는 연평균 2000여건의 상담 가운데 가정폭력 사건은 평균 33%대에 이른다. 최근엔 동거인 폭력 상담도 종종 들어와 활동가들을 긴장시킨다. “동거인 폭력은 경찰 대응과 피해자 본인도 미온적인 대처를 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드센 여자들’이란 얘기도 종종 들어요. 공직사회 성추문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는 힘에 부치기도 하죠.”

요즘은 ‘통합적인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다. 인권을 지원하고 권익을 높인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을 넘어서서 비혼 여성들의 주거 문제, 성형·다이어트 문제 등을 다양하게 포함한 ‘생활 속 여성운동’을 해보고 싶어한다. 지역을 소외시키는 ‘중앙 중심’ 운동이 아니라 지역이 중심이 되는 새 공동체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으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운동을 긍정적인 쪽으로 전환해보려고 합니다. 남성과 함께 하는 운동도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대구여성의전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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