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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6 17:23 수정 : 2005.03.16 17:23

새로 옮긴 이층집에서 활짝 웃고 있는 막달레나의 집 식구들. 왼쪽부터 활동가 엄상미씨, 이옥정 대표, 생활간사 김숙현씨.



15년 세들었던 터전 잃고 막막
학생·회사원 등 온정손길 답지
곧 시설등록 정부지원 ‘겹경사’

고운 햇살이 드는 이층집. 마당에 깔린 자갈은 손님을 맞을 때마다 자박자박 정겨운 소리를 낸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매매 여성 쉼터인 ‘막달레나의 집’이 지난달 이사를 하고 제2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은 지난 85년 서울 용산에 처음 문을 열어 지금까지 6600여명의 성매매 여성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일 집은 그다지 편안하지 못했다. 비만 오면 천정으로 물이 줄줄 새 바가지를 받쳐야 될 형편이었고, 전기 누전 걱정을 달고 산 데다 폭설예보가 내리면 천정이 무너질까 가슴부터 졸여야 했던 낡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옛 집에서 15년만에 짐을 뺐다. 이옥정(58) 대표는 “이층집으로 이사한 뒤에 이제 눈이나 비가 와도 걱정 없다고 안심했다”고 비로소 웃었다.

우여곡절을 거친 ‘거사’였다. 지난 9월 이들이 15년 동안 세들어있던 집이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이른바 ‘뉴타운 개발’ 때문에 재계약을 할 수 없게 되자 하루아침에 이들은 갈 곳을 잃게 됐다. 이 대표와 실무자들은 백방으로 지원책을 알아보았지만 전세금 5000여만원으로는 용산 부근에 살 집을 구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부와 기업의 도움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한겨레〉(2004년 9월4일자)보도가 나간 뒤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이 여성부 장관에게 지원책 마련을 권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여성부는 미신고 시설이라 도울 방법이 없다며 제도적 한계를 아쉬워했다. 기업 후원을 바라는 것도 힘들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터부 때문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집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봐서 안다”고 전화를 걸어오던 ‘서민’들이었다. 중·고등학생, 농민, 회사원들이 은행계좌로 후원금을 넣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뜻있는 기업과 사회단체, 그리고 종교인들도 새 삶터 마련에 한몫 거들었다. 태평양재단, 아름다운재단, 봄빛여성재단, 수녀장상연합회, 여성경제인협회 서울지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 도움을 줘 1억4000여만원이 넘는 새집마련 후원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문화관광부 정동채 장관도 기사를 본 뒤 개인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이들을 도왔다. “부서 안에 막달레나의 집을 사랑하는 모임이 있다”던 문화관광부에서는 자활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배려해주었다. 막달레나의 집에 마음을 낸 새 집주인까지 전세금을 6천만원씩이나 깎아주면서 이들을 도와 결국 꿈에 그리던 ‘새 집’에 들어갈 전세금을 무사히 마련했다.

새 집에 들어오자 경사가 겹쳤다. 서울시에서 위탁을 받아 또 다른 막달레나의 집인 ‘너른 쉼터’를 열어 성매매 여성을 10명까지 새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시행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가 제시한 시설 기준에 맞춰 집을 마련했으니 이젠 일반 지원시설로 등록할 일만 남았다. 시설 등록을 갖추게 되면 실무자들의 인건비 지원과 성매매여성들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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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엄상미씨는 “쉼터 여성들의 자부심이 대폭 향상됐다”고 했다. 업주들의 선불금에 쫓기고, 업소를 탈출한 성매매 여성들을 찾으러다니는 포주들의 협박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졌다. 법적·제도적 뒷받침으로 불과 6개월만에 얻은 성과다.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문화부 지원 프로젝트로 자활의 기반도 마련했다. ‘행복한 보따리’로 이름지은 이 프로젝트의 종잣돈으로 쉼터 여성들은 서울대와 배화여대 창업동아리들과 함께 제작한 물품들을 지난주부터 팔기 시작했다. 보석주머니인 주보, 고전매듭이 들어간 주머니인 비방, 그리고 패션서류파일과 한지상자다. 시장조사부터 상품 제작까지의 전과정을 쉼터 여성들이 창업동아리들과 함께 연구해 만들었다. 마켓 매니저 이미정(가명·탈성매매 여성·25)씨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마련한 물건들”이라며 “손이 부르트도록 직접 매듭을 짓고 제작했다”고 상품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들의 상품은 여성부의 후원으로 만든 마켓 홈페이지( www.magdalenahouse.org/bijou/index.php3 )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집의 변모에 누구보다 감회가 남다른 이는 이옥정 대표였다. 그는 “마음을 보태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작은 이들의 정성이 모여 기적을 이루었고 앞으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활동으로 시민들에게 진 빚을 갚겠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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