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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6 17:28 수정 : 2005.03.16 17:28

여성들 아픔도 헤아려다오

덩치는 산만하고 얼굴은 애기곰 같은 그가 순하게 웃으며 “누나” 하고 부를 때면 나는 늘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미얀마(버마) 사람 마웅저.

그는 버마의 수도 양곤에서 서너 시간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7남매 막내인 그가 3살 무렵, 아버지는 가재도구까지 다 챙겨 집을 나갔다.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마을 사람들이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많이 틀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이 없는 여자’는 마을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되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의 경우 남성의 부재는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물론 어린 마웅저가 가부장제의 모순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성격이 좋고 착한 엄마를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는 건 엄마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웅저의 꿈은 그래서 부자가 되는 거였다.

그런데 미얀마의 상황이 마웅저를 부자가 되는 길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1988년 고등학생이던 마웅저는 네윈 군사독재에 항거해 친구들과 함께 시위대열에 동참한다. 네윈 군사정부는 총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지속되는 탄압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다. 마웅저와 친구들 역시 삶의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마웅저는 한국행을 택했다. 아슬아슬한 삶을 사는 막내의 모습을 보던 누나들이 외국으로 보내놓으면 안심도 되고 돈도 벌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돈을 모아 보낸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 생활이 만 10년을 넘었다. 인천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친구들과 함께 국민민주동맹(NLD) 한국 지부를 만들어 미얀마대사관앞 시위,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는 거리 캠페인, 난민운동 등을 꾸준히 했다. 최근에 그가 하는 일은 미얀마-타이 국경 근처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이다. 어른들 때문에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교육이 미래를 만드는 힘이라 생각하는 그는 그곳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언젠가 미얀마로 돌아가게 되면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그 역시 성공회대학교 엔지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남자’였기 때문에 받은 누나들의 지원 때문에 가끔 마웅저는 마음이 아프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가 어느정도 이룩되면 마웅저는 자신의 공부 속에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는 엄마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 가난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한국사회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버마 사람 마웅저, 순하고 따스한 그의 눈에 가부장제의 모순들이 잘 포착되었으면 하는 게 해주는 거 하나 없는 ‘누나’의 바람이다.

글/김현아 ‘나와 우리’ 운영위원 khago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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